적과의 동거, 무굴제국의 수도 델리와 힌두교 왕국 자이푸르

여행은 끝없는 ‘환타지(fantasy)’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타지를 쫓기 위해 끝없이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인도 여행은 그 환타지를 내려 놓아야한다. 여행의 환상 너머 또 다른 여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 여행에서 힐링(healing)을 찾으려면 먼저 자신부터 킬링(killing)해야 한다.

이번 여행은 인도의 골든 트라이 앵글(델리, 자이푸르, 아그라)과 카주라호, 바라나시 등 북인도의 주요 도시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인구 12억의 인도 관문 델리공항에서 입국 비자를 발급 받는데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IT 강국이라는 나라답지 않게 여권 검사와 지문 입력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검사가 끝나면 수납처로 가서 비자 발급비 30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은 후 출구 쪽으로 가서 영수증을 보여주어야 짐 찾는 곳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입국 비자를 받는데 총 1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지루한 입국 수속에 다소 지쳤는데 근처에 있던 인도 모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 포즈를 취해준다. 여행 내내 인도 사람들의 미소는 늘 한결같았다.

인천에서 8시간 걸려 도착한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델리는 까마득한 신화시대로부터 존재했던 유서 깊은 올드 델리와 인도의 수도이기도 한 뉴 델리를 합친 인구 1,800만의 대도시다. 이슬람 무굴 제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린 이래 날마다 새로워지는 인도의 중심점이기도 하며, 긴 역사만큼 다양한 유적과 문화, 역사가 이질감이 없이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제일 먼저 들린 곳은 12세기경 이슬람교 술탄 쿠툽 웃딘이 힌두왕국을 패배시킨 후 힌두사원 자리에 건설한 인도에서 가장 크고 높은 미나르(minar)인 쿠툽탑이다. 힌두사원 석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만든 승리의 석조탑 하단에는 코란이 조각되어 있다. 인도 최초의 쿠아트 알 이슬람 모스크 부속 건물로 72.5m라는 놀랄 만한 높이의 세계 최고(最高) 벽돌탑은 예배시간을 알리는 탑인데, 델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이자 랜드마크다. 모스크와 쿠톱탑은 이슬람최초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탑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1981년 탑 꼭대기 전망대로 오르던 학생들이 한 학생의 짓궃은 장난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계단에서 구르는 바람에 45명이 압사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후부터 탑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모스크 중앙에 있는 7.3m 쇠기둥 오파츠는 4세기경에 건립된 고대 건축물이다. 인도 최초의 왕국인 마우리아왕조의 창건자인 찬드라굽타를 찬양하는 글이 새겨져있다. 이 기둥은 철 함량이 99.99%로 현대기술로는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야외에서 비까지 맞아가며 1,500년 동안을 버티어오면서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행정관청이 모여 있는 뉴 델리 시내로 들어서면 여의도처럼 넓은 공원 가운데로 커다란 문이 솟아있다. 바로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다. 영국 식민지 시절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사망한 인도인들을 추모하는 거대한 위령탑으로, 42m에 달하는 탑 전체에 약 85,000명의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델리에 있는 황금사원은 원래 시크교가 탄생한 인도 서북부의 펀잡주 암리차르시 사원을 본떠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힌두교에 뿌리를 두고 이슬람을 받아들인 시크교는 개혁종교로 꼽힌다.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시크교도 순례객과 관광객 등 엄청난 인파로 늘 붐비고 있는데, 입장료는 없지만 단 이곳을 입장하려면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려야하고, 양말을 벗고 흐르는 물에 발을 씻은 후 맨발로 입장해야 된다.

델리와 자이푸르 일정에서 우리를 태워준 버스 기사도 구레나룻이 단정한 잘생긴 시크교도였는데, 머리에 쓴 터번 색깔이 매일 바뀌는 멋쟁이였다.

시크교도들은 호수 물에 영적인 치유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황금사원은 축구장 서너 배의 넓이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의 중앙에 있으며 크기는 사방 10m 정도이고, 지붕은 순금이며 나머지 부분은 금으로 도금으로 되어 있다.

사원 내에서는 종교나 국적 등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짜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황금사원은 순례객들에게는 성지지만 관광객에게는 문화유산이면서 무료 식당과 무료 숙박시설이 되기도 한다.

다음날 델리공항에서 인도영화 ‘조디 악바르’의 배경 도시 자이푸르로 이동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암베르 성의 무희들과 병사들이 나와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인구 2,300만의 자이푸르는 라자스탄 주의 주도이자 허브시티(hub city)로 잘 알려져 있는 도시다. 힌두교 왕국인 자이푸르 왕조는 이슬람 왕조인 무굴 제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무굴 제국 이후 인도의 지배자가 된 영국에 대해서도 굉장히 협조적이어서 왕조의 운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게 된다.

자이푸르의 일몰을 보기 위해 짚차를 타고 나하가르 성을 올라간다. 도로가에는 성으로 올라가는 이동수단으로 이용되는 코끼리와 낙타가 보인다. ‘호랑이의 거처’라는 뜻을 가진 나하가르 성은 왕실 가족의 휴양지로 사용하기 위해 자이싱 2세가 지었는데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전망대에서 서니 사가르 호수에 떠 있는 물의 궁전 잘 마할이 보인다. 18세기경 5층으로 만들어진 건물인데 완공된 후에 호수에 잠기면서 물의 궁전으로 불리게 된다. 벽이 없는 정자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왕족들이 오리 사냥 파티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수에 잠기는 바람에 유명해진 성이다.

성안으로 들어가면 꼭대기에 전망대 겸 카페가 나온다. 전망대 뒤로는 산 사이의 험한 능선을 잇는 성벽과 작은 성들, 앞으로는 넓게 펼쳐진 자이푸르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벤치에 앉아 킹피셔 맥주 한잔으로 저물어가는 자이푸르의 일몰을 즐긴다. 주위의 낯선 외국인들과도 어울려 사진을 같이 찍기도 한다. 뜻밖의 만남 속에서 경험하는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서로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되는 순간이다.

다음날 일찍 자이푸르 시내로 나간다. 자이푸르는 구시가지의 모든 건축물들이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어 ‘핑크 시티(pink city)’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곳이다. 이 도시가 온통 분홍빛이 된 이유는 영국 식민지 통치 시절 영국 왕세자 에드워드 7세의 방문 당시 그의 눈에 들기 위해서 도시 전체를 분홍색으로 도색했는데, 결국 이 작전은 성공하여 자이푸르 왕국은 영국령 인도제국의 번국으로 독립을 보장받게 된다. 지금도 자이푸르 구시가의 주택은 분홍색 이외의 다른 색으로 색칠하는 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하와마할(바람의 궁전)은 자이푸르의 번잡한 시가지 한복판에 홀로 서 있다. 핑크시티 자이푸르의 시각적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붉은 사암을 사용하여 핑크빛으로 반짝이게 했다. 그 이름이 암시하듯 953개나 되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 덕분에 사막의 열기로부터 실내를 서늘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15m 높이의 이 건물은 원래 주거용이 아닌 전망용 스크린으로 지은 것인데, 창마다 아치형 돌출 발코니 시설이 되어 있다. 왕실과 하렘의 여인들은 수많은 창을 통해 시장과 그 활기 넘치는 광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자이푸르에서 북쪽으로 11km 떨어진 암베르 성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로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와의 혼인동맹을 통해 왕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만 싱(Man Singh)이 건설했다. 차를 타고 성을 오르내릴 때 탑승자들은 생명을 위협을 느끼게 된다. 수십 대의 짚차들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좁은 산길을 경쟁적으로 질주하는 장면은 마치 자동차 경주를 연상시킨다. 코끼리를 타고 성을 오르내리기도 하는데 가격이 비싸고 최근 잦은 안전사고 때문에 주로 짚차를 이용한다.

1592년에 즉위한 만 싱은 중정을 중심으로 암베르 궁을 건축하였다. 성 입구의 왼쪽은 서민, 오른쪽은 왕과 귀족이 출입하는 문이 따로 있고 문을 들어서면 이슬람 양식으로 조경이 된 중앙 정원 주위에 화려한 궁전 건물들이 마주보고 서 있다. 중앙정원의 화단 속에는 기하학적 형태의 석조로 만든 보도가 형성되어 있으며 중앙의 연못 중심 부분에는 옥좌(玉座)가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악바르가 건설한 파테푸르 시크리의 정원을 연상하게 만든다.

카츠츠와하 왕조는 국가 예산을 아낌없이 성 건설에 투자했고, 성이 너무 화려했던 나머지 무굴의 4대 황제 제항기르가 암베르 성을 방문했을 때 그의 질투심을 자극하지 않게 위해 디와니암의 장식에 덧칠을 해야만 했을 정도라고 전해지고 있다. 성 내부 중 이슬람 양식의 영향을 받은 거울의 방과 환희의 방이 최고 볼거리다.

정원을 지나면 광장 자렙촙이 나오고 왕의 접견실인 디와니암이 있다. 맞은편에는 가네쉬 폴은 입구 가운데에 라자스탄의 상징인 코끼리가 조각되어 있다. 문을 지나면 왕의 개인 접견실과 거울의 방이 나온다. 광장 한쪽으로 힌두교 여신자가 티벳 불교신자처럼 오체투지하는 모습도 보인다.

암베르 성의 정원에서 매우 특이한 것은 성 앞의 마오다 호수 속에 떠 있는 것같이 만들어진 3단으로 구성된 사분정원이다. 이 정원에는 건물이 전혀 없으며 3단으로 구성된 정원에는 각 단마다 사분정원이 아름다운 수법으로 조경이 되어 있다.

자이푸르 시가지의 시티 팰리스 옆에 있는 잔타르만타르는 당시의 전제군주로서는 보기 드물게도 건축, 천문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자이싱 2세가 건설한 천문대다. 자이푸르 외에도 델리, 웃자인, 바라나시, 마투라에도 건설했는데 자이푸르의 잔타르만타르는 인도 내에 있는 중세식 천문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20세기 초까지 실제 관측을 했을 정도로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30m 해시계 삼랏 얀트라와 별자리 계측기 등의 관측 장비로 유명하다.

잔타르만타르를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길가 소녀가 코끼리 헤나를 그려준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이 되었다는 16세 소녀의 가냘픈 목덜미를 보니 마음이 시려온다.

델리, 자이푸르 일정이 끝나고 내일은 버스를 타고 아그라 성으로 간다.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도는 무엇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한다. 세상을, 사람을, 태양의 열기로 견디기 힘든 날씨를, 거리에 널린 쓰레기들과 신성한 소똥들을.

그것들은 인도 여행자에게는 감수해야 할 숙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도 여행자가 지녀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불과 며칠 만에 동행한 여행자들은 벌써부터 두 부류로 나뉜다. 한쪽은 불편한 일상에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늘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이다.

어떤 부류에 속하고 싶은가는 스스로가 선택할 일이다.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