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19 수주문학제 수주콜리키움 (대담한 대담)  ‘수주의 삶과 문학속으로’ 기조 강연 글입니다.

  1. 머리말

한 작가의 삶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역사의 흐름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은 실로 지난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한 문학인 삶이 문학 갈래 전반 그리고 문학 외적인 부분까지 넓혀진다면 한 마디로 명료하게 규정하기는 더욱 힘든 일이 된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삶이 그렇다. 수주는 1920년대 초 <폐허> 동인으로 한국의 초기 현대시를 완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명정 40년>과 <수주수상록> 등의 수필집을 통해 현대수필을 발전시킨 작가이기도 하다. 또한, 1918년 <청춘>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하여 훗날 대한공론사 이사장에 취임, 영문 일간지 <Korean Republic>을 주재, 발간하며 영시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평론과 번역 분야 그리고 학자이자 언론인으로서 남다른 족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조발제에서는 2019년 수주문학제를 맞아, 기존의 여러 연구물에서 밝힌 그의 문학적 삶을 몇 가지 소주제로 정리하여 그의 문학사적 위상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부천의 선양인물로 기리기 위한 사업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수주의 생애

수주(樹州)는 1898년 5월 9일(음) 서울 맹현(孟峴, 지금의 종로구 가회동)에서 아버지 변정상(卞鼎相)과 어머니 진주 강(姜)씨 사이의 셋째아들로 태어난다. 한학자이자 법률가인 변영만(卞榮晩)은 장형이고,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변영태(卞榮泰)가 그의 중형이다.

1904년 서울 재동보통학교에 입학, 1910년에는 사립 중앙학교(중앙고보의 전신)에 입학하지만 자퇴하고 만주 안동현을 유랑한다.

1912년에 평창 이(李)씨 흥순(興順)과 결혼, 이후 1915년에 중앙기독교 청년회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 개월 만에 졸업하고 곧바로 중앙기독교 청년회학교 영어반 교사로 취임한다.

1918년에 중앙고보 영어 교사로 부임, 이때 <청춘(靑春)>에 영시 <Cosmos>를 발표하여 천재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YMCA에서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1920년 <폐허(廢墟)> 동인, 1921년에 <장미촌(薔薇村)> 동인으로 참여하여 이후 <폐허>, <신천지(新天地)>, <조선일보>, <개벽>, <동아일보> 등에 많은 시와 평론을 발표하고, 1923년에 이화여전(梨花女專) 강사로 부임한다.

1924년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을 발행했고, 1931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산 호세대학에서 유학했으며, 귀국하여 1933년 동아일보에 입사, 월간 <신가정(新家庭)>의 주간을 맡는다.

1934년 부인과 사별 후 이듬해에 양창희(梁昌姬)와 재혼하였고, 1936년 <신가정> 표지에 손기정의 다리만 게재한 사건이 빌미가 되어 신문사를 떠나게 된다.

1939년에는 독립운동 단체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한다.

해방 후 1946년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부임하였고, 1948년에는 영문시집 <Grove of Azelea(진달래 동산)>, 그리고 이하윤과 함께 <영시선집>을 출간한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에는 해군사관학교 영어 교관으로 부임했으며 휴전 후에는 대한공론사 이사장에 취임, 영문 일간지 <Korean Republic>을 주재, 발간하면서 이때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조직에 참여 초대위원장을 맡는다. 이 해에 수필집 <명정 40년>을 출간했으며 중학 국어교과서에 그의 시 <논개>가 수록된다. 이어 1954년에 수필집 <수주 수상록(樹州 隨想錄)>을 출간한다.

1955년 ‘선성모욕’ 사건으로 성균관대학교 교수직에서 물러나지만, 비엔나 국제펜클럽 제27차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며 이 해에 두 번째 영시집 <Korean Odyssey>를 출간한다.

1959년에 <수주시문선(樹州詩文選)>을 출간했으며, 1961년 3월 14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51의 2 자택에서 세상을 뜨게 된다.

  1. 수주는 누구인가

. 민족혼을 노래한 지조의 시인

흔히 수주의 시세계를 크게 3기로 구분한다. 1기는 시집 <조선의 마음>이 발간되기까지, 민족 시인으로서의 의식이 표출된 시기로 이 무렵의 대표작이 바로 <논개>이며, 2기는 그 뒤부터 광복까지의 시기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인식에서 오는 절망감 속에서도 선비적 절개와 지조를 고수하려는 태도가 잘 드러난다. 3기는 광복부터 죽기 전까지의 시기로, 대한공론사 이사장을 지내던 때에 <돐은 되었건만>과 같이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적 시를 주로 썼다.

이러한 세 시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시인의 모습이다. 위에서 살핀 생애에서 보듯이, 수주는 기미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외국에 독립선언의 취지와 겨레의 울분을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신가정>의 주간을 맡고 있던 1936년 그 잡지의 표지에 손기정의 다리만 게재하여 신문사를 떠나야 했고,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의해 1939년 체포되어 107일간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조선인으로서 민족적 울분을 그렇게라도 표현하려 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수주의 시를 논함에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것이 1922년 4월 <신생활(新生活)>에 발표된 시 <논개>와 1924년에 출간한 그의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이다.

논개(論介)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情熱)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江)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가 촉석루 술자리에서 왜장을 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사실을 소재로 다룬 이 시는 그 제목에서 이미 얼마나 명백한 민족의식의 시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민족적 의분을 밖으로 내풍기는 정열보다는 그 의에 대한 강렬한 찬탄을 내향적으로 응결시키려 했고 그 긴장이 소박하나 적확한 직유에 의해 조직적인 시미(詩味)를 이루고 있다.

일종의 후렴으로 되어 있는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라는 구절은, 단순하게 강조된 비유로 주제의 진폭이 확대 파급되는 것을 오히려 제한, 한정시키는 동시에, 그만큼 그 희생의 정신적 가치를 매우 선명하고 순미(純美)한 시형상(詩形象)의 질로 상징화시키는 상승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가 발표되던 때의 시대상이다. 조선의 독립이라는 3.1운동이 좌절된 지 5년째 되던 때, 그야말로 온 나라가 눈물의 시기였다. 그렇기에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사회현실에서 퇴폐주의적 문학이 나타났지만 바로 그때에 생성(生成)된 낭만주의에 편승하여 수주는 <논개>를 통해 거룩한 분노와 불붙는 애국정열을 쏟아냈던 것이다.

변영로의 민족정신과 시의 성격을 좀 더 포괄적으로 또 간명, 적절하게 표현한 시는 그의 또 하나의 수작인 <조선의 마음>이다. 1924년에 발간된 수주의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의 주제이기도 한 이 시는 <논개>와는 다른 의미에서 수주 시의 전형적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수필과 관련하여 그의 생애를 가리켜 술과 풍자,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방만(放漫)하면서도 지성적이고 고고하다고 하지만, 그의 시에는 그러한 풍자와 기지 해학이 드러나는 것이 거의 없다. 오히려 시대적 감상과 인간적인 애수를 극복하려는 단단한 성격, 순수한 시의 높이로 이끌어 다듬어 올리려는 시적인 정통, 시인으로서의 천품에 충실하려는 노력과 안간힘을 볼 수가 있을 뿐이다.

이 시는 거의 직서(直敍)에 가까운 수법으로 민족의 설운 마음을 정면으로 단순하게 다루어 단 일곱 줄의 시에 아주 포괄적인 시적 주제를 표출했다.

 

‘조선마음’을 어디가 찾을까?

‘조선마음’을 어디가 찾을까?

이 두 줄 서두만으로도 이 시는 다시 더 수식 중언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그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절실하고 간절하다. 사실 이 시의 주제는 ‘조선의 마음’이란 시어에 일체가 포함되어 있고 상징화되어 있다. 그 조선의 마음을 시인은 아주 단적으로 ‘지향할 수 없는 마음’, ‘설운 마음’이라 직설한다. 다른 일체의 복잡한 관념과 고답적인 해설이 무엇이 더 필요할 것인가 하는 수주의 깔끔하고 날렵한 시적 기법은 매우 개성적이다.

이와 같이 수주의 시는 그의 투철한 민족의식이 매우 세련된 시적 기법에 의해 성공적으로 주제화 되어 있는 동시에, 그의 시적 기법과 시적 영위(營爲)의 일체의 목표는 오직 민족의식을 위해서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수주의 시집 <조선의 마음>에는 <버러지도 싫다하올 이몸이>를 비롯한 28편의 시와 수상 8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시집은 내용이 불온하다 하여 발행과 동시에 곧 총독부에 의하여 압수되어 폐기처분된다.

그렇기에 친일문학 연구의 대가인 임종국 선생이 수주를 가리켜 윤동주와 더불어 ‘단 한편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작가’라 일컬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두주불사의 호방한 수필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주는 술과 풍자,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방만(放漫)하면서도 지성적이고 고고한 수필가였다. 그의 풍자와 해학은 수필집 <명정 40년(酩酊四十年)>에 잘 나타나 있다. 명정(酩酊)이란, 술에 몹시 취함. 대취, 만취의 의미다. 즉 술에 취해 지낸 40년이란 뜻이다.

이 수필집은 1953년 3월 서울신문사에서 간행되었는데, <신천지> 1949년 9월호부터 연재된 <명정사십년무류실태기(酩酊四十年無謬失態記)>를 중심으로 엮은 것으로 월탄 박종화의 <서(序)>와 함께 전체 4부로 편성되어 있다. 이 수필집을 통해 우리는 수주의 인간적인 면을 잘 알 수 있다.

<명정 40년(酩酊四十年)>의 첫머리에 있는 수주의 <서설>에는 ‘끝끝내 한결같이 마시고 마시고 꽃 꺾어 산(算)놓고 또 마시다가 마지막 날 도래할 때 장렬한 의부(義夫)나 용사처럼 흔연취사(欣然就死)할 뿐’이라는 그의 기개, 바로 술과 관련한 수주의 철학이 잘 담겨 있다. 그렇기에 술은 곧 그의 삶이요, 철학이 되고 문학으로 표현된다.

게다가 수주는 자신의 삶을 위트와 해학으로 풀어낸다. 그 유명한 <백주에 소를 타고>를 보면 여실하게 드러난다. 이 수필은 공초(空超 吳相淳), 성재(誠齋 李寬求), 횡보(橫步 廉想涉)와 수주가 당시 동아일보사의 편집국장은 고하(古下 宋鎭禹)에게 원고료를 가불하여 술을 마신 이야기로, 문장도 재치와 기지가 번득이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술 또한 수필을 읽는 맛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어느덧 언덕 아래 소나무 그루에 소 몇 필이 매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번에는 누구의 발언이거나 제의였던지 이제 와서 기억이 미상하나 우리는 소를 잡아타자는 데 일치하였다. 옛날에 영척(寗戚)이가 소를 탔다고 하지만 그까진 영척이란 놈이 다 무엇이냐. 그 따윗 것도 소를 탔는데 우린들 못 탈 배 어디 있느냐는 것이 곧 논리이자 동시에 성세(聲勢)이었다.

하여간 우리는 몸에 일사 불착한 상태로 그 소들을 잡아타고 유유히 비탈길을 내리고 똘물(소나기로 해서 갑자기 생겼던)을 건너고 공자(孔子) 모신 성균관을 지나서 큰 거리까지 진출하였다가 큰 봉변 끝에 장도(壯圖 ─ 시중까지 오려던)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벌건 대낮에 4인의 문인이 옷을 다 벗은 채로 소를 타고 내려오는 풍경 – 게다가 큰 길까지 내려오려던 객기를 수주는 ‘장도(壯圖)’라 표현하고 있다. 책 전편에 걸쳐 실명을 밝히며 술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수주의 글은 늘 기지, 해학, 유머가 넘쳐난다. 이러한 기법들은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에서 파면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불혹(不惑)과 부동심(不動心)>이란 글이 바로 그것이다.

‘위대한 위선자’인 공자의 40 불혹(不惑)과 ‘절세의 데마고기’인 맹자의 40 부동심(不動心)은 치둔(癡鈍), 열약(劣弱)한 우리 후생(後生)에게는 수행할 수 없는 과업이요, 극복할 수 없는 난행(難行)이며, 반등(攀登)할 수 없는 (도덕적) 고봉이다.

1955년 한국일보의 <천자춘추>에 발표한 이 글에서 수주는 공자를 ‘위대한 위선자’로 맹자를 ‘절세의 데마고기’로 지칭한다. 이에 성균관 대학교에서는 수주의 표현이 성현을 모욕한 것이라 판단, 유교정신을 건학이념으로 하는 학교의 교수로는 적합지 않다 하여 교수직에서 파면한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이 있는 칼럼의 전체 의미와 평소 수주의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특한 표현기법을 감안하지 않은 결과였다.

공자를 위대한 ‘위선자’로 맹자를 절세의 ‘데마고기’라 일컬은 것은 독자에게 강한 호기심을 발동케 하려는, 풍자와 해학으로서 수주의 독특한 표현 기법이다. 게다가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불혹과 부동심의 경지를 공맹(孔孟) 두 분은 아주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말한 것에 대하여 범인(凡人)인 수주의 입장에서 마치 ‘공자님은 위선자요, 맹자님은 데마고기’라 말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오히려 극상(極上)의 경외를 작은따옴표로 강조하여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풍자와 해학, 그리고 유머와 위트는 수주의 수필에 일관되게 흐르는 기법들이다. 술과 함께 한 삶, 그리고 술로 달래야 했던 울분들이 글에서까지 낭만적이고 호방한 성격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 영시의 개척자

앞에서 소개하였듯이, 수주는 중앙 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반 교사를 시작으로 중앙고보 영어 교사, 이화여전 영문학부 교수, 성균관 대학교 영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3·1운동 때에는 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한 시인으로 유명하며, 한국전쟁 때에는 해군사관학교 영어 교관으로 복무했고 종전 후 1953년에는 대한공론사 사장을 맡아 영문 일간지 <Korean Republic>을 주재 발간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주는 평생 영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한 사람이다.

더구나 그는 1918년 <청춘>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하였고, 영미문학의 소개와 영미시의 번역은 물론 우리 시편들을 영역하여 외국에 소개하기도 할 만큼 영시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특히 17세에 썼다는 영시 <Cosmos>는 당시 수작으로 꼽히면서 ‘천재시인’의 등장이라 칭송될 만큼 그는 영시 창작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남긴 영시 작품, 영역시 그리고 번역시가 증명해 준다.

그가 남긴 영시는 <Grove Of Azalea>와 <Korean Odyssey> 두 권의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중 <Grove Of Azalea>는 1947년 수주가 엮은 영시집으로, <애국가> 영역을 첫머리에 두고 서문에 이어 일곱 시인의 영시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시집 서문(Preface)에서 플로렐(Enda M. Frorell)은 영어로 번역한 시와 영어로 창작된 시(translations and original poems)를 수록한 이 시집을 통해 수주(Mr. Pyun)가 한국의 문화를 서구에 소개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음은 물론, 그가 엮은 시편들이 한국의 전통적인 리듬과 사상을 현대의 것과 대조하여 잘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Korean Odyssey>는 1955년에 발행한 수주 영문 시문집인데, <Gleanings Since The War>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서문과 함께 <애국가> 영역이 앞에 놓이고 이어 수주의 수필(Essays)과 시(Poems) 그리고 산문(Verbal Scraps)을 차례대로 묶은 것이다. 책 서문(Foreword)에 이 책의 성격을 밝힌 글렌(William A. Glenn)은 수주를 일컬어 ‘인생, 국가 그리고 인간 자아의 변치 않는 법칙을 통찰’하고 있다며 극찬한다. 또한 그는 수주의 글을 위대한 민족, 위대한 국가 대한민국의 멋진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글들이라 소개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당시 대통령 생일을 맞아 영문으로 쓴 몇 편의 축시 때문에 자유당 정권에 빌붙은 것으로 보고 수주의 문학을 폄훼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통령 생일 축시는 당시 국가홍보를 대행한 준 정부기관인 대한공론사 사장으로서의 역할이었을 뿐, 수주 문학의 본령이라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가 남긴 시 전편에 흐르는 민족주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맡은 일 충실했던 역할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평가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주는 영시의 형식과 구성을 완벽하게 체득하여 실제 활용한 시인으로, 그가 영역한 한국의 고시가들은 원문을 뛰어 넘어 새로운 형식으로 탈바꿈하면서 온전한 영시가 되어 있다. 그렇기에 단순한 영역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재창조 영역에까지 나아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직역, 번역이 아니라 창작으로서의 그의 영시는 특히 Stanza라는 영시의 기본 형식, 그리고 그 변형을 통해 시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였다고 할 수 있다.

  1. 제언 三卞祭典으로 확대를 기대하며

지금까지 수주 변영로의 생애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기존의 연구를 바탕으로 시인과 수필가로서 그의 삶을 살펴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알아보았다. 수주는 분명 시인이자 수필가요, 평론가이자 언론인이며 동시에 교육자였다. 따라서 그의 삶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러 방면의 활동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이를 종합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총체적 연구이다. 잘 알고 있듯이,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후 각 지방정부에서는 그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발굴 조사 연구하여 여러 형태의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수주문학제도 그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란 예술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지역을 빛낸 인물들에 대한 기념사업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수주 변영로’라 하면 연관되는 인물이 바로 그의 장형과 중형이다. 수주의 생애에서 간략하게 밝혔듯이 대법관이자 변호사 그리고 한학자이자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지낸 변영만(卞榮晩)은 수주의 장형이고,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한때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선 변영태(卞榮泰)가 그의 중형이다. 우리는 이들 삼형제를 ‘부천의 삼변’이라 일컫는다. 2015년에는 부천향토문화연구소에서 거창하게 <한국삼변>이란 이름으로 연구서까지 발간하여 그 기초를 놓았다.

따라서 문학으로는 수주이지만, 법률가 혹은 외교 분야에서는 변영만과 변영태 역시 부천의 선양인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우리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따라서 수주만이 아니라 그의 삼형제를 묶어 연구할 때에 보다 종합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결코 수주의 문학사적 위상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삼형제 – 부천의 삼변을 함께 기리며 기념사업을 진행할 때에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수주 역시 한층 드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수주 사후 벌써 60년이 지났다. 수주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내었고, 그 의미까지 밝혀졌다. 이에 연구 혹은 기념의 범위를 넓혀 ‘부천 삼변’ 기념사업으로 나아갈 때, 수주는 물론 삼변의 업적이 보다 총체적으로 드러나며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살폈듯이 그의 시 <논개>와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을 관통하는 민족혼을 노래한 시인, 즉 ‘민족시인’이란 한 마디 말로 수주 변영로의 문학사적 위상을 설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필을 통해 보여준 낭만주의적 호방한 기질, 그리고 위트와 유머 그리고 해학이 넘치는 자유분방한 그의 필력 또한 그의 문학을 규정하는 한 의미가 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영시로 출발하여 말년에 우국충정을 표현한 여러 영시들은 물론 번역시와 평론들 나아가 수주란 아호를 형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까지 합쳐 삼변을 함께 면밀히 검토한다면 보다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 그리고 후학들이 보다 미래지향적인 추모 혹은 기념사업을 통해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한다. ♣

다음의 연구물들을 참고하였으나 글의 목적상 일일이 인용표기를 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참고문헌

◇ 구자룡 엮음,《변영로 연구》, 산과들, 2011)

◇ 김영민, <좌절과 절망 속의 기다림>(《연세어문학》,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1982)

◇ 김용성, <수주 변영로>(《한국현대문학사탐방》, 국민서관, 1973

◇ 김윤식, <변영로의 문학사적 위치>(《한국근대문학의 이해》, 일지사, 1973)

◇ 민충환, <변영로의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2)>(《부천작가》, 부천작가회의, 2008)

◇ 민충환, <변영로의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3)>(《소설과 비평》, 부천소설가협회, 2008)

◇ 민충환, <변영로의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4)>(《수주문학》, 수주문학상운영위원회, 2009)

◇ 민충환, <변영로의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자료(1)>(《부천예폼》, 2007)

◇ 박두진, <변영로의 시>(《한국현대시론》, 일조각, 1970)

◇ 박항식, <수주 변영로와 ‘논개’>(《한국현대시인과 그 대표작에 대한 연구》, 원광대 논문집, 1967)

◇ 유영자, <고독한 로맨티스트 수주 변영로>(《수주문학》, 산과들, 2004)

◇ 이상혁, 이병렬, 간호윤, <한국삼변>(부천향토문화연구소, 산과들, 2015)

◇ 이병렬, <수주 변영로 영시 소고>(《수주문학》, 산과들, 2009)

◇ 이선희, <수주 변영로의 시세계>(《수주 변영로 연구》, 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1984)

◇ 이어령, <변영로>(《한국작가전기연구》, 동화출판사, 1975)

2019년 수주문학제 수주 콜로키움 대담집 ‘수주의 삶과 문학속으로’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