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 21일 미국의 한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던 한 남자가 뇌출혈로 사망한다. 열흘 전 술에 만취된 채 클럽 관리인에게 무방비 상태로 폭행당한 채 의식을 잃고 실려 왔던 남자였다. 그가 바로 이른바 퓨전 재즈의 전성기였던 1970~8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가장 뛰어난 실력의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자라 칭송받으며 베이시스트계의 지미 핸드릭스라 불리는 자코 파스트리우스(Jaco Pastorius)다.

Bass iconoclast Jaco Pastorius (seen here in 1986) is the subject of a new documentary produced by Metallica’s Robert Trujillo.

재즈의 악기 구성면으로 볼 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베이스의 솔로 악기로서의 존재감을 어커스틱 시대에 빌 에반스 트리오의 초기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가 드러냈다면 70년대 이후 일렉트릭 베이스로는 자코 파스트리우스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자코 파스트리우스는 1951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다. 12살이던 1963년부터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구성해 연주할 만큼 음악적 자질이 뛰어났다. 애초에는 드러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드럼 연주로 시작했으나 미식축구를 하던 중에 당한 손목 골절상으로 드럼을 포기하고 기타와 키보드로 연주했다. 베이스로는 17세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전향한다. 이후 워낙 천재적인 감각의 음악성을 인정받았기에 여러 밴드에서 세션으로 공연하며 폴 블레이와 팻 메스니 등과 같은 당대의 걸출한 뮤지션들과도 음반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75년 마침내 당시 최고의 퓨전 재즈 밴드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리더인 조 자비눌에 발탁되어 정식 멤버가 된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앨범 <헤비 웨더>(Heavy Weather, 1977년)는 비단 웨더 리포트의 앨범으로서 뿐만 아니라 자코 파스트리우스에게도 자신의 존재감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 역사적인 앨범이 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1976년에는 재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데뷔앨범이라 칭송받는 <Jaco Pastorius>(Jaco Pastorius, Epic, 1976)를 발표하는데 이는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하지 못할 재즈 일렉 베이스의 전설 같은 앨범이 되었다.

재즈계에선 유독 천재와 비극이 쌍생아처럼 붙어 다닌다. 자코 파스트리우스 역시 결코 이 굴레에서 예외일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전형적인 케이스다. 여러 이유로 1984년부터 마약과 알코올에 의존하는 생활을 시작해 결국 1987년 9월 11일 한 클럽에서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클럽 밴드의 공연을 보던 중 베이스 연주자를 조롱하며 자신이 대신 연주하겠다고 행패를 부렸고 이는 밴드와의 패싸움으로 번져 만취상태에서 클럽 관리인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다. 결국 의식 불명인 상태로 병원에 실려가 열흘을 버티었으나 1987년 9월 21일 두개골 파손 등의 심각한 부상으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하고 만다.

자코 파스트리우스 이전의 베이스가 주로 전체적인 리듬의 균질감을 담당하는 역할에 충실했다면 자코 파스트리우스의 베이스는 베이스 자체만으로 멜로디의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과 인식을 심어 준 계기가 되었다. 그의 사후 수많은 베이시스트들이 등장했지만 거의 모든 연주자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독보적인 전설이 되었다. 주법과 테크닉은 말할 것도 없고 펑키 혹은 그루브로 표현되는 리듬감은 재즈 일렉 베이스의 교범이라 해도 전혀 이의가 없다.

앨범 Jaco Pastorius의 자켓 이미지는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한 옅은 미소만을 띤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자코 파스트리우스의 흑백 사진이다. 그의 미소는 자신의 운명과 미래에 이룩할 자신의 음악적 지위를 미리 예견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이기도 하고, 운명 따위 또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세인의 평가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일종의 냉소가 보이기도 한다.

양극성 장애와 같은 정신적 문제, 피폐했던 두 번의 결혼과 사생활,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찌든 삶. 예술가가 반드시 예술적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나 어쨌든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삶이다. 아무리 예술이 훌륭하다 한들(설혹 그의 예술에 흠이 될지언정), 예술과는 완전히 정반대편에 있는 그의 삶을 모조건 이해하고 추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한없이 끌리며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것은 비단 자코 파스트리우스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삶과 예술의 밝음과 어둠의 문제라든지 선, 악과 도덕성의 문제도 아니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아프락사스의 세계가 아닌 하녀 ‘리나’가 들려주는 어둡고 음침한 디오니소스적인 ‘다른 세계’가 주는 마법 같은 매력이랄까.

어쨌든 위험하면서도 달콤한 상반된 유혹의 다면성을 알아채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자코 파스트리우스의 음악에는 매번 허물어진다. 솔직히 나는 그의 음악에 대항할 방어기제를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