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로(卞榮魯, 1898.6.27~ 1961.3.14) 시인이다. 호는 부천의 옛지명인 수주(樹州)다. 

시인 변영로는  시인이자, 영문학자, 대학교수, 수필가, 번역문학가이다. 

 

그는 경성 중앙학교(지금의 서울 중앙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중앙학교 이화여전 등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건너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주립대학교( San Jose State University)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하였다가 끝내 중퇴하였다. 

15세에 17세의 아내 이흥순과 결혼을 해서 3남2녀를 낳았으나. 1934년 첫째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듬 해에 학교 제자이기도 했던  양창희와 재혼을 하여 3남 1녀를 낳는다.

수주 변영로의 가족사진들. 그냥 가족사진이라고 나왔지만, 첫째 아내와의 사진인 것 같다. 변영로는 첫째 부인과 사이에서 아들 셋과  딸 두명을 낳았고 후에 둘째부인 양창희사이에서 아들 셋과 딸 하나를 얻는다. 그 중 둘째 딸은 병으로 잃는다. 

변영로의 아들 천수(天壽·작년 11월 작고)씨가 쓴 저서(《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허드슨 강으로 흘렀네》)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195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펜클럽 대회에 변영로는 한국대표 자격으로 참여했다. 출국에 앞서 변영로와 시인 모윤숙, 김광섭이 인사하고 있다.

수주가 《동아일보》 자매지인 《신가정》 주간으로 있을 때다.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가 폐간당하자, 수주는 손기정(孫基禎) 선수가 모교인 양정고등보통학교 운동복을 입고 달리는 사진을 구했다고 한다. 그는 손기정의 상반신을 잘라 두 다리만을 확대해 ‘세계를 제압한 두 다리’란 제목을 붙여 잡지 표지에 게재했다. 이를 본 일본 형사들이 수주를 찾아왔다. 그는 태연히 이렇게 말했다.

“손 선수가 무엇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했소. 머리를 가지고 했겠소, 팔로 했겠소? 그의 무쇠 같은 두 다리로 세계를 제패한 것 아니겠소? 그러니 화보의 효과를 100% 내려고 그의 두 다리만을 확대하여 게재한 것이오.”

일경(日警)들은 잘려나간 사진에 일장기가 있다며 사진 윗부분을 내놓으라고 호통쳤다.

사원이며 사환 할 것 없이 사내의 모든 사람이 동원돼 쓰레기통을 뒤졌으나 사진이 없었다. 일경들은 저러다가 틈을 봐서 도망치지나 않을까 생각했는지 수주의 양옆을 바싹 따라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상반신 운동복 사진에 다행히도 일장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일로 변영로는 결국 《동아일보》를 떠나게 됐다.

문인의 유산, 가족이야기 월간조선 변영만, 영태 , 영로의 후손들 중에서.

 “선대에 꽤 재산이 많았다고 해요. 그런데 이 세 분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 재산을 다 없앴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후손을 위해 뭘 해 준 게 없어요. 자녀들 취직 하나 안 시켰어요. 그래서 지금 사는 것들이 다 지질해요.” 

〈… 아버지 삼형제는 하나같이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바람에 식구들의 고생이 갑절로 늘어났다. 당시 총독부는 가난한 가정에 구호미를 배급했지만 창씨개명을 안 한 조선인에게는 그마저도 제외했다. 나(변천수)도 학교에서 벤첸수(일본식 발음)로, 개명을 거부한 집안의 자식으로 낙인 찍혀 알량한 급식 배급의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 …

–문인의 유산, 가족이야기 월간조선 변영만, 영태 , 영로의 후손들.중에서

후손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렇게나 청렴결백한 사람들이 있나 싶을 정도다.

명정 40년의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지만. 수주 변영로의 형제와 시인 변영로의 업적은 다시 조명 받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