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38도선(三八度線)!

피와 눈물로 못 지우면

‘나’ 없는 자제(自制)와 정념(情念)으로라도

그 미운 금 지우련만……

나라를 건지려길래

겨레를 건지려길래

너, 나 없을 이때 이 무렵

서로 노리고 서로 흘겨봄

이 무슨 가엾은 모습이냐?

-‘마음의 38도선(三八度線) ‘ 중-

 

곁눈질 할 것 없이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말을 삼키고 피를 마시며

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한 목표에만 두 눈을 팔고서

묵묵히 뚜벅뚜벅 나갈 것을

-‘외곬과 한쪽으로’ 중-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투항함으로써 미함참본부의 작전계획이 대폭 수정되고 당초 한반도와 일본을 4분할시켜 점령하려던 전략은 한반도의 분단으로 마무리되었다. 일본이 항복의 시점을 절묘하게 택함으로써 분단을 모면하고 엉뚱하게 한반도가 두 동강나게 되는 운명을 겪게 된 것이다. [오마이 뉴스.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토사’ 기사 중.]

변영로 시인은 작금(昨今)의 현실을 제대로 본 지식인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해방의 기쁨은 곧 민족 간의 분열로 이어진다.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의 날이기도 했지만 민족분열의 날이기도 했다. 

국내에서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대립이 첨예해갈 때에 미·소 양군이 각기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삼아 남북으로 갈라서 1945년 9월 한반도에 진출했다. 남북한을 분할한 미·소 양군은 점령 지역에 군정을 실시하였다. 소련은 처음 조만식을 내세워 인민위원회를 조직게 하고 군정 하의 행정을 담당케 하였으나, 이어 김일성(金日成)을 위원장으로 하는 소위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 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한편 남한에 진주한 미군도 군정청을 설치하고 남한의 모든 행정을 담당하였다. 미 군정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허용하여 모든 한국인 정당에 대한 절대 중립 태도를 언명했다. 그리하여 송진우 등은 ‘한국민주당’,안재홍 등의 ‘국민당’, 여운형 등의 ‘조선인민당’, 박헌영(朴憲永) 등의 ‘조선공산당’을 위시한 50여 개의 정당이 난립하였다. 미국 본토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인 이승만(李承晩)이 귀국하고, 중국과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구를 비롯한 임정 요인들도 귀국하였으나 혼란은 여전하였다. -위키백과 

‘사욕에 눈 어둔 정치이족수(政治二足獸)들

가로 달리고 세로 뜀박질하며

서로 물고 닿는 대로 받는 바람’

– ‘외곬과 한쪽’ 중 –

논개의 절개를 노래하던 시인의 눈에 비친 그 당시 국내의 상황은 그저 두 다리 달린 짐승들의 정치 싸움으로 보일 것이다. 나라 잃은 설움에 견디고 이겨냈더니 해방되자마자 겪는 만신창이 조국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깝고 아팠을지 시에서 절절히 보여준다.시인은 조국에 대한 사랑만을 읊진 않았다. 

변영로 시인은 시를 통해. 조국에 대한 사랑은 물론, 앞으로 겨레가 취해야 할 마음도 당부하기를 잊지 않는다.그리고 불행히도 그 지독한 분열은 이미 동강난 허리 아래 대한민국에서 계속 벌어지는 현실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라는  울타리 안에서 원인은 일본에 있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본 총리에게 사과하라’는 주옥순 같은 어이없는 발언을 하는 시민대표라는 사람이 있고 일제강점기를 통해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현재의  시절을, 암흑의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되어 하나 되는 겨레에 대한 순수함만을 노래했던 변영로 시인이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시인에 제목으로 지었듯. 대한민국엔 잘못 채워진 역사의 단추로 인하여 각자의 마음엔 38 도선이 이미 그어져서 깊이 새겨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인은 희망을 노래한다.

‘고우나 미우나 한 형제인 바에

서로 안고 끼어 헤어지지 말자

가던 불행 되오기 전에!’

마음의 38도선(三八度線) 중 –

‘재 털고 일어서리 불사조(不死鳥)

우리 겨레!

우리 조국(祖國)!’

외곬과 한쪽으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