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17세기 유럽의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었고 18세기 계몽주의는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이성을 신의 존재와는 별개로 최고의 존엄으로 높여 놓았다. 예술적인 면으로는 여전히 보편적인 미의 관념, 귀족 문화, 규칙과 우아함, 전통의 숭상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고전주의’ 시대였다. 그러나 18세기 중반부터 그때까지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이성의 비합리적인 면이 부각되고 급기야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구체제라 부르는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이 절대 왕정 체제와 함께 붕괴된다. 상대적으로 경시되던 인간의 감각과 감성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찾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새로운 사조 ‘낭만주의’다.

19세기 중반까지 절정이었던 유럽 낭만주의는 세기말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다. 개성 없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던 전통과의 단절을 통해 이전의 풍조와는 달리 잊고 있던 신화에 모티브를 얻었고 미술과 문학 등 타 예술 장르를 포괄하는 웅장한 스케일을 지향했다. 이를 두고 후기 낭만주의라 한다. 대표적인 음악가로 바그너와 말러를 꼽는다.

바그너

말러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바로 이 후기 낭만주의 시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세기 말부터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파리의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었던 이른바 ‘벨 에포크(Belle Époqu)’라 일컫는 시대가 배경이다.

이미지 출처 : 민음사 블러그

당시 파리의 부르주아들은 지적 허영의 과시와 고양을 위해 거의 매일 밤 모임을 가졌다. 사랑과 욕망, 예술을 희구하는 그들의 모습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거의 대부분 이런 종류의 사교 모임 공간을 통해 나타난다.

「피아니스트가 발퀴레 기행곡이나 트리스탄 이졸데 서곡을 연주하려고 하면 베르뒤랭 부인은 반대하곤 했는데, 음악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그녀를 지나치게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마르셀 프루스트, 민음사 11p)

소설 속에 언급된 발퀴레 기행곡과 트리스탄 이졸데 서곡은 바그너의 악극들이다. 당시 바그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교 모임의 주최자인 베르뒤앵 부인이 그녀를 지나치게 감동시켰기 때문에 오히려 그토록 좋아하는 곡의 연주를 반대한다는 이유가 조금은 어이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동적이라는 표현 속에 바그너를 대표로 한 후기 낭만주의 작품 특징이 너무나도 잘 설명되어 있다. 베르뒤앵 부인의 말대로 지나치리만큼 고양된 감정과 과잉된 주이상스(Jouissance)가 특징이기 때문이다.

벨 에포크와 후기 낭만주의 시대는 세계 제1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완전히 막을 내린다. 공교롭게도 후기 낭만주의의 퇴조와 재즈의 탄생 시기가 정확히 일치한다. 게다가 재즈는 마치 후기 낭만주의의 반대급부로 탄생한 것처럼 바그너, 말러의 음악 같은 심장을 울리는 웅장한 음향적 도움과 스케일 없이도 충분히 인간의 감정을 고조 시킨다.

재즈에는 국가, 민족, 신화, 전통, 규율, 운명, 미래 따위의 거대한 담론이 들어올 틈이 별로 없다. 그것보다는 살랑 살랑 유쾌한 스윙과 함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충실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즉흥성이 있다. 재즈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인 싱코페이션은 진지한 기교라기보다 다분히 발랄한 생기로서의 존재감이 더욱 크다. ‘음’을 미리 당겨온다는 의미 속에는 미래에 대한 즐거운 기대가 들어있기도 하다.

재즈는 탄생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런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헤겔을 빌어 재즈 시대 이전과 이후를 테제(These)와 안티테제(Antithese)라고 설명할 수 있다면, 끊임없이 융합과 분열을 반복하는 재즈 자체 또한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테제(Synthese) 즉, 재즈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음악의 등장 역시 필연적이다. 과연 언제쯤일까? 내 욕심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당분간은 힘들 것이다. 그만큼 재즈는 지금 현재 이 순간 가장 강력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