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W. 사이드(Edward Wadie Said)는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 (마티)에서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가 늘 독특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세상은 이미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따라서 우리만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바흐는 신의 세상에 의지했고 베토벤은 인간(에로이카)에게 의지했지만 바그너는 우리가 우리만의 힘으로 온전히 서야 한다는 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것이 나아가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특정한 가치와 관념과의 투쟁을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너무 앞서 나간 걸까?

바그너의 음악에서는 세기말의 음울함뿐만 아니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게 만드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그래서 온갖 악마들이 창궐하는 비극의 시대임에도 그냥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각오를 새기게 만든다.

<Wagner E Venezia> (Uri Caine Ensemble, W&W)는 바그너의 장대한 관현악 작품들을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유리 케인(Uri Caine)이 단 6인조의 앙상블로 편곡한 작품이다.

어렸을 때부터 재즈를 들으며 성장한 유리 케인은 재즈뿐만 아니라 정통 클래식은 물론 일렉트릭 음악까지 아우르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 겸 편곡자다. 특히 1997년 레이블 Winter & Winter를 통해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을 편곡한 앨범으로 굳건한 지위를 인정받았다. 말러의 앨범 이후 바그너, 바흐, 슈만 등과 같은 클래식 작곡가의 작품들을 편곡하며 이른바 유리 케인 스타일 앨범들을 발표 한다.

그가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은 단지 클래식과 재즈의 융합 내지는 크로스 오버의 개념을 뛰어 넘는 매우 독창적인 결과물이다. 기존의 음악적 틀을 완전히 깬 후 해체, 분리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융합이 가능한 것처럼 그의 편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혁신적이다. 이는 현대 철학의 주요 테제인 ‘해체’의 개념과도 연결되지만 유리 케인의 음악적 철학은 결코 관념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연주의 모든 실체 즉, 현장성까지 완벽하게 유지한다는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유리 케인이 레이블 Winter & Winter과 손을 잡은 건 매우 적절하다. 독일의 스테판 윈터(Stephan Winter)에 의해 설립된 Winter & Winter야말로 혁신, 진보와 함께 현장의 소음마저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담는 레이블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뮌헨이라는 동일 지역에서 태동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레이블 ECM이 음악과 음악 사이의 ‘침묵’에 천착한 사실과 비교해 보면 매우 대조적이면서도 재미있다.

과거 그리스인들은 거리와 대중 장소에서 예술과 철학이 시작된다고 했다. 니체는 그들의 비극을 다룬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예술 속에 아폴론적인 요소와 디오니소스적인 요소가 공존하며 통합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예술을 느끼는 시대가 아니라 겪는 이 시대에, 설사 삶이 혼란스럽거나 구차하더라도 예술과 결코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니리라. 그런 의미에서 청중의 웅성거림과 주변의 잡음, 게다가 미처 연주가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박수를 치는 청중들의 실수까지도 그대로 담은 앨범 <Wagner E Venezia>는 유리 케인과 Winter & Winter의 음악적 정체성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 트랙 탄호이저 서곡은 오페라 탄호이저의 모든 것을 압축하여 들려준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못해 터지게 만드는, 무엇인지 특정할 수는 없어도 그 무엇인가에 도전케 하는 용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후반부에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현들의 울림과 함께 등장하는 합창단의 장중한 허밍은 정말 압권 중에 압권이다. 그러면서도 요란한 박수소리가 끝난 후에 느낄 수 있는 안도감은 무겁고 장중한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계기도 된다.

트랙이 끝나면 10여분의 러닝 타임 내내 쿵쾅거렸던 심장이 한순간에 풀어진다. 종종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이 삶인지 구별하는 것이 번잡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특히 이 트랙을 들을 때가 그렇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뛰어 넘는다. 노을이 아름다운 베니스의 어느 카페, 미처 감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웅성거리는 청중들 속에 내가 있다. 그런 나를 지금 내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