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강 향 숙

                         

  봄이면 좁은 논둑길에 꽃들이 피어났다. 좁쌀냉이, 꽃다지, 곰보배추, 제비쑥…들풀 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봄을 맞았다. 마을에서 읍내로 나가는 길목인 그곳은 서울 간 언니가 돌아오는 길이기도 했다. 나는 봄바람이 불면 일 없이 근방을 서성였다.

  긴 생머리에 검은 투피스를 입은 언니는 아주 가끔 그 길을 걸어왔다. 사람들 눈을 피해 밤에 오곤 했는데  하얀 얼굴에 서울말을 쓰는 언니가 다른 세상사람 같았다. 나는 물어오는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숨기에 바빴다. 들고 온 커다란 가방에는 내 옷과 학용품 그리고 처음 보는 과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학교에 입학 할 때는 언니가 소포로 부쳐온 멜빵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나는 언니의 다섯째 동생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번듯한 농토가 없던 집에 어머니의 재봉질은 생계수단이 되었다. 부엌살림과 동생들 돌보는 일은 자연히 큰딸 몫이었다. 책보를 메고 학교에 가고 싶은 언니의 소망은 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 무너졌다. 내가 ‘응애’하고 울 때마다 언니는 가자미 눈을 하고 흘겨 보았다고 했다. 미운 생각에 포대기에 누운 아기를 발로 밀쳐내 보기도 했지만 그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른 동생들보다 유독 자기를 쏙 빼닮아 새록새록 정이 솟아났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에는 포플린 천을 끊어다 원피스며 잠바 스커트를 만들어 입혔다. 동생이 예쁘다는 사람들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다. 내가 쑥쑥 자라는 사이 언니의 꽃다운 나이는 덧없이 흘러갔다.

 

 

  냇가에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스무 살 무렵, 언니 가슴에도 봄이 찾아왔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남자가 홀연히 나타났다.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는 스치듯 언니를 본 후 사촌누이에게 다리를 놔 달라 사정 했다. 언니도 근방에 칭찬이 자자하던 옆 마을 남자가 싫지 않았다. 남자는 주말이면 언니를 만나러 어김없이 달려왔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속 깊고 자상한 남자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은밀한 사랑이 무르익어갈 무렵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동네방네 소문이 퍼져 나갔다. 집안에 연애는 금기였다. 아버지의 쌍둥이 형제인 큰 집 언니 연애사건은 아버지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 드렸다. 순종적인 언니는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혼담이 들어와 그곳으로 시집이라도 보내면 어쩌나 불안하던 차였다. 언니는 말도 못하고 애를 태우다 지레 겁을 먹고 집을 떠나버렸다. 부모님은 몇날 며칠 근방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곡기를 끊고 자리에 누웠다. 우연히 어느 절에서 보았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가 함께 집으로 돌아온 것은 한참만의 일이었다. 부모들이 서로 탐내는 혼처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애간장을 태우고 나서야 둘은 혼인을 했다. 누가 봐도 천생배필인 두 사람은 사주도 더없이 좋다 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신행新行을 마치고 남자는 직장이 있는 도시로 돌아갔다. 언니는 외아들인 그를 따라 부모님을 두고 떠날 수 없는 처지였다. 남자가 떠나던 날 어른들이 어려워 제대로 배웅도 못하고 돌아섰다. 주말이면 신작로를 따라 걸어올 남자를 기다릴 터였다.

  남자가 떠나고 이틀 후 전보가 날아들었다. 남자의 이름 옆에 ‘사고사’라고 적힌 글씨를 보며 들고 있던 빨래통을 놓쳤던가. 손을 흔들며 떠나던 남자의 웃는 얼굴이 어지럽게 겹쳐졌다. 이 또한 꿈인가 싶었다. 남자가 주검으로 돌아온 날 아내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싸늘하게 식은 남자 곁에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난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사랑의 밀어들이 허망하게 떠돌았다. 백년을 해로 하자던 깨진 맹세에 눈물로 얼룩진 편지는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다.

  언니는 매일 남자가 묻힌 곳을 찾았다. 산소는 우리 집에서 건너다보이는 비탈진 밭에 있었다. 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산을 오르는 딸을 지켜보며 통곡했다.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반송장이 되어가는 자식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남자의 집을 찾았다. 그 집에서도 며느리를 순순히 돌려보냈다. 모든 일이 자기 탓인것만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던 언니는 그 길로 오빠가 있는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가곤 했다. 언니의 방에는 비단 천에 연필로 그린 그림들이 쌓여 있었다. 언니는 종일 수틀을 끌어안고 남편과 함께 걷지 못한 길에 발자국을 새기 듯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다. 수틀에서는 분홍 매화랑 붉은 목단, 보랏빛 난초 등 갖가지 꽃들이 곱게 피어났다. 병풍 속에는 봄이 한창이었다.

 

  언니는 어쩌다 고향에 내려온 날 밤이면 어김없이 논둑길을 걸어 옆 마을에 갔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언니의 치마 자락을 바라보며 뒤를 따랐다. 논배미의 보리도 사그락 사그락 일렁였다. 들판 끝에 마을이 나타나면 골목을 들어서 오른쪽으로 꺾인 곳에 남자의 집이 있었다. 가만가만 마당을 지나 문 앞에 서서 “어머니”하고 부르면 노모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박차고 나왔다. 끝까지 며느리가 될 수 없었던 언니 손을 부여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속울음을 삼켰다. 주름진 눈꼬리로 자작자작 눈물이 번졌다. 언니는 고개를 숙이고 노모의 깊은 한숨을 받아냈다.

  돌아오는 길에 언니는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바람에 언니의 치맛자락이 흔들리고 내 마음도 흔들렸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때 슬픔에도 무게가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서늘한 달과 소쩍새 소리가 우리를 따라왔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더 그 길을 오갔다. 온기 없는 집은 괴괴한 적막이 흐르고 노모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갔다. 언니는 돌아올 때마다 ‘봄날은 간다’를 웅얼거렸다. 나는 배운 적도 없는 곡조를 어느 결에 따라 불렀다. 동무들과 논둑길을 달릴 때면 자꾸만 언니와 걷던 밤이 떠올랐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언니처럼 가슴 저리는 아픔은 아니지만 나를 스쳐간 봄날도 모두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봄이다 싶을 때 눈이 내리기도하고 한속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시간들을 보내며 언니를 따라 부르던 노래는 내 노래가 되었다. 남자의 무덤 앞에서 아픈 기억을 그리움처럼 토해내던 언니는 지금도 그 봄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오늘도 지는 꽃잎처럼 봄은 무심히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