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재즈를 들어왔더니 종종 지인들로부터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이게 좀 난감한 일이다. 대개는 날씨와 기온, 그리고 계절이 가지는 일반적인 분위기에 부합하는 음악을 기대하는 눈치지만 솔직히 내 음악 감상 취향과는 동떨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식상한 대답일지는 몰라도) 뜨거운 태양 아래 파라솔이 펴진 남국의 해변에서 왠지 칵테일을 한 잔 들고 들어야만 할 것 같은 보사노바(Bossa nova)를 이 뜨거운 여름 한 철에 추천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해변과 태양의 산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름과 관계가 깊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보사노바는 아프리카의 각 지역에서 흘러 들어온 흑인 노예 출신의 주민들이 간직했던 리듬에다 포르투갈의 멜로디, 그리고 원주민인 인디오의 민요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삼바(Samba)가 기본 장르다. 여기에 쿨 재즈(Cool Jazz)가 적극 도입되고 적용되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와 루이스 봉파(Luiz Bonfa) 등에 의해 탄생되었다.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흔히 스탄 게츠와 찰리 버드의 ‘Jazz Samba’, 스탄 게츠와 질베르토 부부 등과 함께 한 ‘Getz & Gilberto’등을 들 수 있으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루이스 봉파가 음악을 맡은 영화 ‘흑인 올페’(Black Orpheus)의 OST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작곡을 분담한 조빔과 봉파 두 사람 모두 보사노바의 선구자이며 이 앨범의 히트 이후 보사노바가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영화 ‘흑인 올페’는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희곡으로 1959년 프랑스의 마르셀 카뮈에 의해 삼바 카니발을 배경으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제작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두 청춘 남녀의 사랑이 중심이지만 애틋하면서도 비극적이다. 죽음의 사신을 피해 사촌의 집으로 찾아온 유리디스는 전차 운전수 올페의 노래에 반하게 된다. 올페에겐 이미 약혼녀가 있지만 둘은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뜨거운 열기가 넘치는 삼바 카니발에서 죽음의 가면을 쓴 자에게 유리디스는 죽게 되고 올페가 유리디스의 시신을 안고 돌아오지만 올페의 약혼녀 미라는 욕설을 하며 돌을 던진다. 돌에 맞은 올페는 결국 유리디스를 안은 채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원본 신화에서는 아내 님프 에우리디케가 독사에게 발목을 물려 죽게 되자 오르페우스는 저승까지 내려가 저승의 신 하데스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 그녀를 구하게 된다. 하지만 지상에 거의 올라올 무렵 약속을 잊고 뒤를 돌아보게 되어 결국 에우리디케는 영영 저승으로 떨어지게 되고 오르페우스는 주신인 바커스에게 끌려간다.

당시엔 생소했던 브라질 영화로서 같은 해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최초로 흑인 배우만을 기용한 예술 영화로 브라질의 삼바 카니발을 세계에 알린 영화로도 유명하다. 흑인들이 카니발에서 추는 정열적인 춤과 음악으로 가득 차 있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빛나게 해 주는 건 무엇보다도 루이스 봉파가 작곡한 주제곡 ‘Manha De Carnaval’(카니발의 아침)이다. 보사노바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Manha De Carnavl을 한번이라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보사노바의 원조인 만큼 수많은 사람이 Manha De Carnaval을 노래하고 연주했지만 엘리제테 카르도주(Elieth Cardoso)의 애절한 목소리에 루이스 봉파의 기타가 돋보인 OST 앨범만큼은 절대 놓칠 수 없다.

나는 하늘의 태양에 노래해요.

나는 태양이 높이 떠오를 때까지 노래해요.

카니발의 시기가 왔어요.

금년의 마법의 시기, 꿈에 마음이 춤추는 때가 가까웠어요.

나는 기타를 치며 노래해요.

나는 저편에서부터의 꿈에 매달려요.

이 카니발의 날에 그리운 분이 찾아와요.

그리고 내 마음에 머물러요.

이 카니발의 날에 참된 연인이 찾아와요.

아니면 꿈을 안고 외톨이가 되는 걸까?

안토니오 마리오가 쓴 가사는 사뭇 낭만적이면서도 희망적인 것 같지만 마지막 부분의 ‘이 카니발의 날에 참된 연인이 찾아와요. 아니면 꿈을 안고 외톨이가 되는 걸까?’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줄리언 반스가 말한 대로 예감은 왜 그렇게 틀리지 않는 걸까? 카니발의 아침에 사랑은 이루어졌지만 비극은 결코 한나절도 비켜가지 않는다. 엘리제테 카르도주의 목소리가 그토록 애절하게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