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전환[氣分轉換] 

동무야, 나의 사랑하는 동무야,

잊어라, 곱게 잊어라-

 

‘슬픔은 푸른 깊은 바다로서,

기쁨은 얕은 시냇물로서.’

라는 옛 노래를.

 

동무야, 나의 사랑하는 동무야,

새겨라, 가슴 깊이 새겨라-

‘울음은 낮게 달리운 구름으로서,

웃음은 높게 개인 하늘로서.’

라는 새 곡조를!

<조선의 마음>(1924)

기분전환[氣分悛換]의 원래 한자를 찾아보았다. 원래 기분전환의 전 자는 悛 ‘고칠 전’ 자로서 공손한 모양 순을 가리킨다. 또는 잇는다는 표현에도 쓰이는 한자이다. 언어 쪽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그가 오타로 ‘悛’ 을 ‘구를 전’轉’ 으로 바꾼 것은 아닐 것이다. 

 <조선의 마음>이라는 시집에 실린 시다.

「그때가 언제나 옵니까」·「논개(論介)」·「봄비」·「님이시여」·「생시에 못 뵈올 님을」 등 28편의 시와, 부록으로 「상징적으로 살자」·「간단한 영국문단의 이야기」 등 산문이 8편 수록되어 있다. 부록이 전체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또 내용도 산문인 까닭에, 엄밀히 말해서 순수 창작시집이라기보다는 문집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이 시집의 특징은 서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 정인보는 서문에서 변영로의 표표하고도 청량한 시심을 칭송하고 있다. 또한, 변영로의 자서를 보면, 변영로가 지향하고자 하였던 시세계는 참다운 ‘조선마음’의 탐구임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가 왜 기분전환의 전을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전[轉]으로 썼는지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그의 동무는 아마도 그 당시 조선이었을 거다.

1924년의 시대를 살펴보았다. 1924년은 대한민국임시정부 6년이 된 해로서,그 해 1월에 광주 농민 500여 명이 소작쟁의 문제로 경찰서를 습격하고 3월에는 김좌진, 김혁 등이 만주의 독립군을 규합해 ‘신민부’를 조직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총리로 김구 가 됐고, 친일 문학가 최남선이 ‘시대일보’를 창간했고.김동인,김소월,김억 등이’영대’를 창간했으며 ‘조선여성동우회’가 창립됐다. 또 만화 ‘멍텅구리’가 조선일보에 연재 시작된 때였다. 이렇듯 이 시대는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문화통치기’로 불리는 시대 (1919~1931)로서 일제가 잠시나마 강압적인 통치를 완화 했고 조선 사람의 경제활동을 풀어주고 친일세력을 지원하여 조선인이 뭉치는 것을 흩트려놓는 시기였다. 

그럴 때에 변영로 시인이 내놓은 이 문집 형식의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만화 멍텅구리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었다.(1926)

변영로는 1953년에 발간한 ‘명정사십년’의 악명(?)으로 민족 시인으로서의 위상이 많이 퇴색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변영로 시인의 시와 그 기행을 살펴볼 때는 그의 순수함이 자신의 발을 걸은 것 아닌가 싶다.

남들은 삼사십 년 동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대성질호(大聲疾號)하는 판에 자신은 “호리건곤(壺裏乾坤)에 부침(浮沈)한 것을 생각할 때 자괴자탄(自愧自嘆)을 금할 수 없다.”고 변영로는 「자서」에서 말하고 있다. 요컨대 자신의 반생은 비극성을 띤 희극일관으로 경쾌주탈(輕快酒脫)하게 저지른 범과가 기백기천으로 헤아릴 길 없다는 것이다.

변영로가 이렇게 술에 취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을 박종화는 “세상 됨됨이가 옥 같은 수주(樹州)로 하야금 술을 마시지 아니치 못하게 한 것이 우리 겨레의 운명이었으며, 난초 같은 자질이 그릇 시대를 만났으니 주정하는 난초가 되지 않고는 못 배겨내었던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제라도 그의 순수함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고,  논개 시에 나온 구절같이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르고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시인 변영로의 가치가 세상에 더 널리 알리게 되길 빌어본다.

만약 시인님을 만나게 된다면 “시인님은 그저 술을 좋아했을 뿐이지요. 당신의 순수한 마음은 잘 알게 됐습니다. 친일을 하면서 자신의 기행을 숨기고 젠체하는 다른 시인님들보다는 자신의 과오를 낱낱이 밝힌  자조[自嘲]를 알아요. 시인님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