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사자 갈기 형상의 매우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밴드 리더. 칼라 블레이(Carla Bley)를 소개할 때 늘 따라 붙는 수식어다. 굳이 그의 카리스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풍기는 외모에서부터 이미 강하게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이정도로 재즈계에 영향을 미치며 주도하는 여류 아티스트가 또 있었던가. 알다시피 재즈계에서 활동했던 여성 아티스트들은 주로 보컬이 메인 분야였기 때문이다.

칼라 블레이는 1936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놀랍게도 유아 시절 교회 합창단 지휘자이자 피아노를 가르쳤던 아버지에게 음악 교육을 받은 이후로는 정규 음악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그는 17세에 무작정 뉴욕으로 상경한다. 당시 유명 재즈 클럽이었던 버드랜드에서 담배 파는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틈틈이 작곡을 연습하던 중 첫 남편 폴 블레이를 만난다. 이를 계기로 1957년 둘은 결혼, 칼라 블레이는 정식 작곡가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고 1964년 두 번째 남편인 트럼페터 마이클 맨틀러를 만나 재즈 컴포저스 오케스트라를 결성하게 된다.

 

아방가르드적 성격을 지닌 그의 밴드는 단지 재즈만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프리 재즈, 클래식, 오페라, 록, 가스펠, 인도 음악 등을 아우르며 젊은 뮤지션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 찰리 헤이든의 실험적 밴드였던 LMO(Liberation Music Orchestra)를 위해 많은 곡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후 1968년 3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대작 오페라인 <Escalator Over The Hill>을 작곡 했고 1972년 구겐하임 펠로우쉽 작곡 부문과 1973년 프랑스 재즈디스크 오스카를 수상한다.

72년에는 자신만의 독립 레이블인 <WATT>를 설립, 그의 대표적 밴드인 칼라 블레이 빅밴드를 결성하여 완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빅밴드 활동 보다는 소규모 밴드에 매진하다가 1986년 드디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역사적인 앨범이 된 <Sextet>을 발표하게 된다. 물론 <Sextet> 이후 현재까지도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과시하고 있다.

<Sextet>는 지금 들어도 전혀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는 세련된 사운드의 퓨전 재즈를 구현했다. 이전 그가 선호했던 관악기를 빼고 칼라 블레이 자신이 오르간을, 그의 연인이자 음악적 동지인 스티브 스왈로우가 베이스를,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하이럼 블록이 기타를 맡았다. 특이한 건 제작 레이블은 WATT이나 배급은 ECM에 맡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앨범의 수준이 ECM 정규 앨범에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칼라 블레이는 단지 재즈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음악들을 받아들였다. 또한 자신의 음악을 굳이 재즈로 한정하여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다. 이런 유연성이야말로 그가 가진 천재성과는 별개로 정식 교육이 아닌 독학에 의한 작업 방식과 함께 그만의 음악적 특징이 되었을 것이다.

첫 번째 트랙 More Brahms부터 마지막 트랙 Healing Power까지 어느 트랙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퓨전 재즈의 정수이나 이 앨범의 베스트는 역시 다섯 번째 트랙 Lawns. 래리 윌리스가 들려주는 세련된 절제미의 피아노, 하이럼 블록의 나른한 기타, 배음으로 깔리는 오르간과 베이스는 또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운가. 그 느낌을 단지 제목 Lawns에 한정하는 것은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이른 봄 보드랍게 올라오는 공원의 잔디를 생각해도 될 것이고 한 겨울 쌓인 눈밭을 생각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가끔은 하나 둘씩 낙하하는 낙엽의 궤적을 생각하는 것도 근사하다. 나는 종종 무더운 여름 소나기가 들녘에 흩뿌려지는 상상을 한다.

Lawns가 베스트 트랙이라면 히든 트랙은 마지막 Healing Power. 겉으로는 결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트랙 전체를 리드하는 오르간, 거기에 드럼과 베이스는 시종일관 정교함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비타민 같이 톡톡 생기를 주는 퍼커션. 피아노는 또 어떤가. 폭풍 같은 기타 솔로에 이은 중간 부분의 피아노 솔로를 듣고 있자면 오르간이 있으면서도 굳이 왜 피아노가 함께 해야만 했을까 라는 의문이 말끔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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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트랙은 하이럼 블록의 파워풀한 기타가 진짜 주인공이다. 말이 필요 없다. 지금 우울하거나 뭔가 에너지가 필요한가? 그럼 당장 이 트랙을 플레잉하면 된다. 6분 22초의 러닝 타임이면 축 처진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