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을 대표하는 문학인이 의외로 많다.

그 중에 일제 식민지하에서 단 한 줄의 친일문학도 남기지 않고

절조를 지켰던 작가가 부천에 있었다.

바로 수주 변영로 선생님이다.

부천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친일파 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남다른 애정이 가득갔다.

어디 한번 ‘수주 변영로’에 명정(만취)해 보리라.

그렇게 그의 수필집 ‘명정 40년’을 손에 끼고 산 것이 한달도 더 되었다.

처음에는 휘리릭 거의 90%를 읽었다. 나머지 10%를 남긴채, 다시 첫 장을 폈다.

좋으면서도, 재미도 있으면서도 너무 어려웠다. 알듯 모를듯 끌리면서도 어려운 책이었다.

먼저 ‘명정’이라는 말의 뜻부터 그러하다.

명정이란, 만취, 대취, 혹은 몸을 가눌 수 없도록 술에 몹시 취함이라는 뜻이다.

암흑한 시대에 절개를 지키며 살기위해서일까.

음주를 빌어서 자신에게, 세상에게 그는 무엇을 말하였을까?

민충환선생님이 주석이 없었다면 끝까지 읽기 위해 10년은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번의 정독으로는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를 두, 세번의 책속 여행을 통해 귀기울여보았고

그저 편안히 유쾌히 그러나 진중하게 들린 이야기들을 이 곳에 전해본다.

 

★★

명정 40년 책속의 변영로

 

어린 모험가의 첫 술

수주 변영로 5,6세에 등옹도주, 술독에 올라 술을 훔치기로 작정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명정에 있어서 영재가 맞다.

어린 모험가에게는 술독이 에베레스트 봉, 알프스 설봉 같았고, 오르다 쾅하며 쓰러져

현장을 온가족에게 들킨 것이다. 그러자 슬피 엉엉 울었고, 그의 어머니는 표주박에 가득

술을 건네었다.

부자대작(父子對酌)

변영로의 본명은 변영복이었다. 22세 <학지광> 20호에 ‘주아적 생활’이란 글을 발표할 때부터

‘변영로’라는 필명을 사용하였고 60세 때 정식 개명을 하였다.

시와 술을 사랑하시던 변영로의 아버지는 집에서 술을 마실 때면,

막내 변영복을 불러서 두서너 잔을 주시며,

“술은 먹어야 하는 것이고 과해서만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음주행각

술로 인하여 벌거벗고 추태를 부려 스스로 부끄러워 상경하기도 하고,

취중 남의 집 김치관에 방뇨를 하고,

15세 새신랑 첫날밤도 술에 만취하여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쓰러지고,

개천에 쓸려가다 살아나고,

술에 취해 옆사람이 평양간다고 하니 떡 하니 평양행 기차를 타고,

설중생매, 눈 속에 생매장 당할 뻔한 일은 수도 없이 많고,

술에 취해 언덕 아래 소나무 그루에 매어있는 소를 타고 큰 거리로 진출하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뻔했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보냈으며

기억해내지 못한 날들이 수없이 많았다.

변영로의 음주변(飮酒辯)

청명하니 한 잔,

날씨 궂으니 한 잔,

꽃이 피었으니 한 잔,

마음이 울적하니 한 잔,

기분이 창쾌하닌 또 한 잔 등등 이유보다도

그저 이유불문하고

변영로는 주주야야 술만 있으면 마신다.

 

아니 마시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변영로다.

영국의 희극 작가 셰리던의 ‘주덕송’에서

술병은 식탁위에 태양이라고 하였고,

변영로 또한 그러하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어느 권세에도 굴하지 않았던

독왕자지(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믿고 나아가 이름)한 변영로였다.

술, 술의 힘! 술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길이었으리라.

 

안녕, 명정 변영로

 

펠레그라!

과음하는 사람이 나는 병으로 과음으로 인한 비타민 영양소 부족으로 오는 병이다.

또한 치료중에는 음주가 금물이라니 변영로 40년의 명정에 마침표를 찍게 하였다.

 

 

★★★

 

하나, 내가 볼 때에

수주 변영로에게 술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이었다.

술을 마신 시간만큼은 하고 싶은 것을 주저하지 않고,

말하고 싶은 것, 가고싶은 것을 주저하지 않아도 되었다.

술에 취한 시간만큼은 시대의 논개가 될 수 있었다.

 

무엇인가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힘이 필요하다.

술처럼 무언가가 나를 붙잡아주고 희열을 주어야 한다.

비록 무엇가 잃어버리는 댓가도 치루게 되겠지만 말이다.

 

둘, 내가 볼 때에

수주 변영로, 그는 만취한 것이 아니라 만취한 척 한 것은 아닌지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빗속에 개천을 흘러가다가 걸려서 살아나고

일본 순사 머리에 방뇨를 하고는 바보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셋, 내가 볼 때에

요즘같은 복잡하고 살기 힘겨운 때라고 모두가 말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렇게 사는 것도 좋겠구나. 취한 척, 바보인 척, 모르는 척 말이다.

 

넷, 내가 볼 때에

처음 명정 40년을 읽었을 때는 천재작가의 피가 흐르는 수주 변영로에게 감동하였고

두번째 명정 40년을 읽었을 때는 재미있었고

세번째(精讀은 아니다) 명정 40년을 읽었을 때는 조금 화가 났다.

그 험한 시대에 심지의 지조를 지키기위해 만취한 채 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수주 변영로!

그의 수필속에서 나는, 함께 너털너털 웃어보았다.

웃을 일이 없나요? 당신도 읽어보세요.

그래도 웃음이 안난다면, 당신도 한 잔 술에 만취해 보시는거는 어때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