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을 다녀왔다. VR수주 문학관 개설을 위한 답사 겸 워크숍을 강진 시문학파 기념관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방문은 2011년 아들이 첫 발령지였던 장흥에 갔다가 잠깐 들렀다. 다산 정약용 유배지만 생각나고 아무것도 볼 게 없었다. 두 번째 방문은 2012년 시문학파 기념관(2012. 3. 5. 개관)에서 부천대 민충환 교수님께 수주 변영로 시인에 대한 강의를 부탁해서다. 사모님과 6명의 제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인구 90만의 부천도 못 짓고 있는 기념관을 인구 3만 5천의 강진군이 건립했다니 호기심도 생겼다.

영랑생가 옆에 자리 잡은 기념관은 아담하니 예뻤다. 지형인 언덕을 활용해 1층과 2층을 구분지은 것도 좋았다. 1층엔 사무실과 강의실 있고, 밖에서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문학관이었다. 군데군데 자작나무를 세워놓아 마치 자작나무 숲에 들어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나무 사이로 시문학파 9분의 자료가 전시되어있다. 무엇보다 강진 출신의 영랑 김윤식 시인과 김현구 시인의 독자적인 문학관을 지어도 될 텐데 시문학파 기념관을 건립했는지 궁금했다. 당시 학예사로 있던 김선기 관장은

“유명 문인들의 고향이나 활동지역에 문학관은 많다. 김영랑은 유명한 시인이지만 영랑 한 분만 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도 끝자락 강진까지 오겠나. 영랑이 주축이 된 ‘시문학파’ 시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함으로 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시문학파 기념관을 건립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자료나 공관활용보다는 이런 작은 군에 시문학파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시인들의 후손을 만나며 자료 찾기에 고군분투한 학예사의 열정만 한아름 안고 왔다.

이번에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매의 눈을 장착했다. 우리가 보고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을 찾기 위해서다. 뭐든 목적이 있어야 자세히 보인다. 두 번째까지는 그냥 건성건성 둘러봤던 시문학파 동인에 관심이 갔다.

‘시문학파’는 1930년에 창간된 시 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시인들이다. 시문학 창간 동기는 당시 풍미했던 조선 프롤레타리아(KAPF)의 정치적 경향 시에 반발하여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기 위해서였다.

청록파 시인에 큰 영향을 미친 정지용은 김영랑·박용철 시인 등과 함께 순수시 운동을 주도한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활동했다. 1929년 ‘시문학’ 창간호에 실린 창립동인 기념 사진이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하윤·박용철·정지용·변영로·정인보·김영랑

[출처: 중앙일보] 지용·백석 … 한국 현대시의 기틀 닦은 두 천재영랑 김윤식과 용아 박용철, 정지용이 주축이 되었다. 위당 정인보, 연포 이하윤의 참여로 창간호가 발간되고 수주 변영로, 김현구가 2호에 참여하였다. 신석정, 허보는 3호에 동참했다.

기념관 한쪽에 자리한 시인의 전당에는 아홉 시인의 저서와 친필, 전용 원고지, 문화훈장, 일기장들이 전시되어 있다. 영랑 김윤식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용아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 수주 변영로의 논개, 정지용의 향수, 위당 정인보의 자 모 사, 연포 이하윤의 물레방아 등은 교과서에 실리거나 노래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애송시가 되었다.

수주 변영로와 위당 정인보, 생몰연대 미상인 허보를 제외한 6명의 시인은 1902~1907년 사이에 태어난 비슷한 또래들이고 시문학 창간의 핵심인물인 박용철, 김윤식, 정지용은 일본 유학파 출신으로 모두가 창씨개명 등, 친일을 하지 않은 시인들이다.

영랑은 기미독립선언문을 자신의 구두 안창에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가(강진 4.4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영랑

정지용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반일 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다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영어 교사로 교편을 잡았으나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의해 내려진 소개령으로 부천 소사로 내려와 글을 쓰지 않은 채 3년을 보내기도 했다. 수주 변영로 역시 술로 일상을 버텼고 위당 정인보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려고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해방 후, 광복절 노래뿐 아니라 3,1절, 개천절, 제헌절 노래 가사를 써 나라사랑을 실천했다. 시문학파 시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마음 깊이 저항하고 몸으로 실천하며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독립투사들이었다. 그중 정지용, 정인보는 6.25 때 납북되었고 영랑도 전쟁 중 부상을 입어 1950년 타계하였다.

정지용

정인보

시문학파 기념관을 둘러보며 일제의 문화통치 시기인 1930년 일제에 대한 저항과 사회주의식 문학운동을 벗어나 순수 민족문학을 지향했던 시문학파 시인들의 삶과 대표 시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분들이 계셨기에 이 땅에 순수문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으리라. 또한 지역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강진군과 김선기 관장의 열정에도 박수가 절로 나왔다. 강진군은 영랑생가와 다산 초당, 백련사, 하멜, 고려청자 박물관, 마량항 등, 인물, 역사, 유적 등을 개발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한편 부천을 대표하는 변영로, 목일신, 양귀자, 펄벅 등 많은 작가가 있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부천에서 문학관 하나 없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다행히 카툰캠퍼스에서 VR 수주 문학관을 개설해 조금이나마 명목이 서는 것 같다.

이제 부천도 ‘부천 인문路드 발견’처럼 지역마다 묻혀있는 자원을 찾아내고 발전시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에 걸맞은 부천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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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