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계단 

                                전 미 란

 

  서울 한남동 거리에 있는 의류매장에서 독특한 계단을 만났다. 장롱, 화장대, 문갑에서 서랍 앞면을 떼 내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정면마다에 차례대로 붙여 놓았다. 아래쪽에서 계단을 올려다보니 마치 서랍장을 포개 놓은 것 같았다. 낡고 칠이 벗겨진 구닥다리 가구를 재활용하여 만들어 놓은 계단을 밟고 오르는데 문득, 한 때의 기억이 서랍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언니와 함께 신당동 산동네에 세 들어 살았다. 전철역이 있는 큰길에서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면 계단길이 시작된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낮은 지붕들이 이마받이하듯 맞붙어 있었다. 쌀집도 슈퍼도 이발소도 계단옆구리를 따라 들어서 있었다. 층계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닥다닥 따개비처럼 붙은 집들이 비탈져 흘러내렸다. 노인들은 계단길을 한숨과 함께 무릎을 짚으며 오르고 하굣길 아이들은 삼삼오오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올라가곤 했다. 밤에 남산타워 쪽을 바라보면 수많은 불빛이 이어져있었다. 건물들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고 빛만 보이는 세상이었다. 불빛 하나하나 누군가의 소중한 빛으로 보였고 나의 단칸방 불빛도 비록 희미하지만 수많은 빛 중 하나로 반짝이기를 꿈꾸었다.

 

 

  대학 졸업 후, 지방에서 광고일러스트 일을 하다 회사가 문을 닫자 서울로 상경했다. 여기 저기 이력서를 냈지만 반응이 없었다. 무료한 날엔 무작정 걸어 다녔다. 을지로를 지나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까지 걸었다. 서점에서 다리를 쉬며 책을 읽다가 걷거나 버스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봉제골목을 지나 급하게 휘어지는 계단길이 두 번 연달아 나오고 나면 작은 부엌이 딸린 자취방이 나왔다. 방과 부엌사이에는 문이 없는 대신 베니어판으로 네모난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언니와 나는 그 구멍으로 팔을 뻗어 반찬과 밥을 주고받았다. 겨울이면 보일러 물통이 끓어 넘쳐 연탄불이 꺼지기 일쑤였다.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물이 났고 연탄가스는 독을 품은 뱀처럼 수시로 기어들어왔다.

  아침이면 주인아주머니의 악다구니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주인여자는 일어나자마자  연탄 개수부터 확인했다. 자취방은 연탄창고와 붙어있었기에 우리 자매는 늘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는 주인여자의 의심보다 더 거북스러운 것은 방문 밖 고무 통이었다. 커다란 고무 통에는 늘 짐승의 내장이 핏물에 흥건히 잠겨있었다.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도축 일을 하는 주인집에 사람들이 내장, 선지, 잡뼈를 사러 수시로 들락거렸다. 벌집 같은 위장과 창자를 들추어 낼 때마다 비린내가 진동했다. 나는 냄새에 잠이 들고 냄새에 잠이 깼다. 물만 마셔도 비위가 상했지만 월세가 저렴해서 오래 머물렀다.

  하고 싶은 광고 일은 좀처럼 직업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여기 있어야 할지, 단념하고 내려가야 할지. 같은 길인데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계단과 아래에서 올려다본 계단은 다르게 보였다. 한쪽 끝은 바닥에 닿아있지만 또 다른 쪽은 오를 수 없는 허공으로 보였다. 어떻게든 상황을 벗어나보려고 취직을 했다. 구인 광고지를 보고 찾아간 곳은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상가에 납품하는 곳이었다. 나는 방산시장에서 라벨을 주문해 백화점 상표를 붙이는 일과 판매도 겸했다. 헐값의 물건이 브랜드상표를 붙이는 순간 값이 몇 계단 뛰어올랐다. 직업으로 여기기엔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른 아침이면 사람들이 계단 밑으로 우르르 내려갔다. 허름한 차림의 가장들이 내려가고 나면 젖은 머리의 아가씨들이 바삐 내려갔다. 계단길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는지 꺾임과 갈래가 불규칙하게 휘어진 계단이 많았다. 나는 버스정거장까지 줄달음치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출근길에 살얼음 낀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다 고꾸라졌다. 무릎이 크게 깨졌다. 깨진 것은 무릎뿐이 아니었다. 치료 때문에 한동안 쉬어야했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 땐 사장이 돈을 챙겨 달아난 후였다. 몇 달치 밀린 월급마저도 받지 못했다. 언니는 시골집으로 내려가라고 채근했다. 고향집에서도 이제 내려오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층계를 오를 때 가장 힘든 곳은 딱 중간에 와 있을 때였다. 더 오르자니 힘들고 내려가자니 이제껏 올라온 시간이 아까웠다. 나를 넘어뜨린 계단에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한 발 한 발 정해진 보폭만을 필요로 하는 계단 앞에서 몸을 낮추며 다시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조관제 _ “식구를 위하여” 중에서>     

 

  얼마 못 가 끊기고 갑자기 꺾이는 계단길처럼 시간제 일자리만 옮겨 다녔다. 상경한지 삼년이 넘도록 딛고 싶은 평지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시골에 있을 때, 내가 모르는 서울이라는 곳에는 대단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의 수많은 불빛 중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한 군데 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깃들 곳이 없다는 것을 계단처럼 자꾸만 꺾이는 반복 후에 알게 되었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시간의 층계로부터 얼마나 올라왔나 잠시 뒤돌아본다. 한 때 시골뜨기 나와 세상을 이어주던 계단은 살면서 거쳐야 하는 단계였을 뿐이다. 생의 주름살 같은 계단은 나보다 앞서간 누군가가 밟고 간 길이지 않았을까. 우연히 만난 서랍계단 앞에서 오래전 기억을 여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