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파를 주도적으로 이끈 김영랑 시인, 그리고 김현구 시인의 고향 강진에는 아홉 명의 시문학파 시인들을 기리는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김영랑, 김현구 시인의 고향이며 박용철 시인의 고향 광주와도 멀지 않아 강진은 시문학파 기념관이 들어서기 적절한 좋은 위치라 하겠다.

물 좋고 산 좋고 경치 좋으며 시인들을 품어낸 고장 강진이 유명해진 또다른 계기가 있었다.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첫머리에서 남도 답사 일번지로 꼽았기 때문이다. 고려청자 도요지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유명했던 강진은 2012년 개관한 시문학파 기념관으로 또 하나의 문화유산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강진행 역시 시문학파 시인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남도 답사도 겸한 발걸음이었다. 강진 곳곳에 자리한 시인들의 흔적과 뜻깊은 현장을 눈으로 보고 발로 딛는 그 느낌이 비할 데가 없었다. 적어도 감격스런 마음으로 돌아와 부천이 배출한 시문학파 시인 변영로 시인의 묘소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강진의 여운을 안고 찾은 부천시 고강동 변영로의 묘소. 목도한 것은 단순한 안타까움만이 아니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갔지만 역시나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찾아가기 어려운 불친절한 길안내, 기념비와 그 옆에 함께한 음식물쓰레기 수거용기, 김포 공항이 지척이어 땅에 붙을 듯 끊임없이 시끄럽게 지나가는 비행기와 같은 주위 환경들은 시인의 영원한 안식과 거리가 멀어보였다.

수주가 누군가. 부천은 또  어떠한 곳인가. 부천은 시인의 원적지이며 또다른 시문학파의 거장 정지용 시인도 3년 간 거주했던 곳이다. 변영로 시인은 더군다나 단순히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넘어서는 인물이다. 끝까지 일제에 고개 숙이지 않은 자랑스런 시인으로서 우리 민족 문학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수주 전문가인 민영환 교수는 일제 강점기 40년대 변절하지 않고 절개를 지켜 국내 문학을 친일 문학으로부터 지켜낸 유일한 두 시인으로 윤동주와 수주를 꼽았다. 윤동주 시인도 활동했지만 한국 문인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기개를 보여준 인물이 바로 변영로 시인인 것이다.

감사와 존경을 담아 기억해야 할 시인의 안식처는 우리가 지금까지 덮고 외면했던 몰상식과 무관심, 역사의식의 부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진에서 경험한 것들을 떠올릴 수록 더 부끄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부천 이곳저곳에 수주 변영로의 시비와 동상이 있다. 나름대로 시인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강진에서 목도한 진정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똑같이 자랑스러운 시인들을 두고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강진 시문학파 기념관 김선기 관장을 생각하니 그 답이 바로 나왔다.

김선기 관장을 보며 떠올린 유명한 논어 구절이 있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구절이다. 좋아함을 넘어서 즐기는 덕후를 즐기는 마음이 없는 일반인들이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김 관장은 한마디로 시문학파의 진성 덕후였다. 그는 시문학파 시인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강진 곳곳에 방치돼 있었던 김영랑 시인과 김현구 시인의 흔적들을 김선기 관장은 피와 땀과 눈물로 추모와 기념의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김현구 시인의 안내 동판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설명했을 때 부천의 삼변 묘역을 자동적으로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정지용 시인 거주지에 붙어 있는 현판 하나가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수주는 논개라는 시 한 편 외에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과 삶을 들여다보면 볼 수록 그는 단순하게 살지 않은 사람이다.

언어의 천재였고 함께 했던 문인들이 하나하나 변절했지만 끝까지 붓으로 민족을 배반하지 않았으며 늘 놀라운 기상으로 한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그의 두 형들 또한 대한민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인들임을 생각할 때 현재 아직 기념관 공사가 진행중인 부천의 현실이 더 안타까울 수 밖에. 부천은 강진에 대비해 인구수와 시의 규모 자체면에서 얼마나 큰 도시인가.

이미지 출처 부천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블로그

문인들의 기념관을 둘러볼 때마다 기념관을 세울 때의 노력과 그 마음이 절로 다가온다. 강진 시문학파 기념관과 같은 마음으로 변영로 문학관이 들어서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부천시 고강동의 삼변 묘역은 위대한 시인을 기림에 있어 부천시와 시민들에게 아직도 남겨진 과제가 많음을 보여 준다. 그 과제가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는 또한 또다른 과제일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는 긴장의 연속이다. 이러한 때 수주를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부천의 시인에게 마땅히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그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답답한 마음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부천에서 그의 자취를 돌아볼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