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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4) – Together (Chet Baker & Paul Desmond, Epic – 472984 2)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의 연주 중 몇 개를 추려 담은 일종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컴필 앨범이라고 보기엔 그 무게감이 어마어마하다. 알다시피 트럼펫의 쳇 베이커와 알토 색소폰의 폴 데스몬드는 쿨 재즈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이기 때문이다.

쳇 베이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깊은 우수 어린 창백한 얼굴. 반항아적인 외모에 중성적인 목소리. 언뜻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제임스 딘과 많은 부분 비교되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절명한 제임스 딘이 삶이 비극이었던 것처럼 쳇 베이커 역시 네덜란드의 허름한 호텔 2층 창문에서 추락,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불행한 종말을 맞이한다. 연주 자체가 뛰어나다는 평은 듣지 못했으나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내면의 고독을 관조하는 듯한 연주와 보컬은 쿨 재즈의 대표적 뮤지션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비록 보편적 기준으로의 그의 삶은 비극 그 자체였지만 어쩌면 실존적 삶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그를 통해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삶과 연결시키든, 삶에서 떼어내든 그의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서 영원히 회자되고 들려질 것이다.

또 한명의 주인공 알토 섹소포니시트 폴 데스몬드는 우리에게 데이브 브루벡 퀄텟의 앨범 ‘Time Out’에서 가장 유명한 곡 ‘Take Five’를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상업적인 면이나 예술적인 면에서나 모두 성공한 이 앨범에 만약 폴 데스몬드가 없었다면 이처럼 뛰어난 결과는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폴 데스몬드의 영향은 대단하다. 그만큼 작곡과 연주 모두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다.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은 누가 들어도 단박에 알아 챌 수 있을 만큼 달콤한 음색을 가진다. 금관 악기임에도 마치 목관 악기인 클라리넷의 소리를 연상케 할 만큼 부드럽다.

이밖에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를 제외하고서라도 연주에 참여한 사이드맨들의 면면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론 카터, 스티브 갯, 토니 윌리암스, 밥 제임스, 롤랜드 한나, 케니 배론, 짐 홀… 이렇게 화려한 라인업이면 뭐 별 수없이 들어야 한다. 앨범에서 자주 언급되는 연주는 6번째 트랙 Autumn Leaves이나 이제야 막 봄이 시작된 이때 가을 낙엽을 생각하기엔 너무 섣부르다. 대신 추천하는 트랙은 2번 트랙 You Can’t Go Home Again.

오래전에 활약했던 중국계 가수 겸 배우 ‘진추아’가 부른 ‘Never Gonna Fall In Again’의 그 멜로디라고 하면 어쩌면 아하! 하면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언젠가 피켜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가 이 곡을 배경으로 우아한 동작을 펼치기도 했다.

이 곡은 원래 1917년 제정 러시아가 무너진 직후 미국으로 망명한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에 들어있는 유명한 주제다. 라흐마니노프가 베버리 힐즈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고국 러시아를 너무나도 그리워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나 사실 이 곡은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인 독일 드레스텐에 거주했을 당시 작곡한 곡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곡의 명성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곡 탄생에 관한 극적인 효과는 다소 덜하겠지만 말이다. 이는 순전히 망명을 미리 예감한 듯 이제는 더 이상 고향에 갈 수 없다는 상실감과 안타까움을 유려하고도 서정미 가득한 멜로디에 온전히 담아냈기 덕분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어찌나 쳇 베이커가 좋아한 곡이었는지 무수히 많은 앨범에서 그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마치 쳇 베이커를 위해 만들어진 곡처럼 말이다. 아, 그렇다고 이외의 곡들을 간과는 건 절대 아니다. 물 흘러 가는대로 몸을 맡기듯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한곡도 빠짐없이 천천히 들어보길 권한다. 트랙의 배치가 얼마나 절묘한지 앨범을 다 듣기까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앨범에서의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의 연주를 이러쿵저러쿵 논한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만큼 최고의 전성기 시절 연주들이기 때문이다. 컴필레이션 앨범의 특성상 각 트랙별 연주자들이 약간씩 다르나 이는 오히려 이 앨범의 매력이자 덤이다. 더구나 레이블 CTI가 만든 최고의 명반이자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짐 홀의 앨범 Concierto에 수록된 곡도 두 개나 들어 있으니 덤 치고는 무지 후한 덤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4) – Together (Chet Baker & Paul Desmond, Epic – 47298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