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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2) – 새로운 시작의 창조자 마일즈 데이비스

무심하게 찾곤 하는 단골 카페가 하나 있다. 가끔 뭔가 끄적거릴 일이 있다거나 읽어야 할 책이 있을 때 종종 들른다. 그러니까 특별히 커피가 맛있다거나 들려주는 음악이 좋다거나 혹은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분히 습관처럼 들어가는 곳이다. 늘 비슷한 맛의 커피, 음악, 변함없는 인테리어.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낯설지 않음이 좋아서랄까?

이 카페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건 몇 년 전이다. 커피집으로는 결코 좋은 입지라 할 수 없는, 대로변에서도 한참 비껴난 주택가 골목 허름한 건물 일층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들어섰다.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적인 느낌의 분위기가 왠지 마음에 들어 열렬한 단골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들러 주인장과 아는 체 정도는 하게 되었다. 익숙한 커피 맛, 다분히 주인의 취향이었을 공간과 음악은 늘 한결 같았고 나는 어쩌면 그 익숙함 때문에 단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역시 평소 그랬던 것처럼 주인과의 인사치레를 마치고 늘 같은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잔 주문한다. 흘러나오는 음악 또한 평소와 다르지 않은 곡들이다. 그러나 곧 들어올 땐 미처 감지하지 못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아. 그럼 그렇지. 벽면 한구석에 있던 조그만 커피 원두 사진 액자 대신 이름 모를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액자 하나를 교체한 것뿐인데 전혀 다른 공간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이윽고 주문한 커피가 내 앞에 놓인다. 평소처럼 특별이 맛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오늘은 유난히 향이 짙고 풍미가 좋다. 혹시 바리스타가 새로 들어왔나? 아니면 원두의 종류가 달라졌을까? 그것도 아니면 추출 방법에 변화를 주었을까? 물어보았지만 어느 하나 바뀐 것이 없단다. 주인장의 얼굴을 다시 본다. 이곳의 ‘익숙함’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가 ‘낯섦’을 경험한 것은 여기에 처음 들어왔던 그 날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희한한 일이다. 단지 액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커피 맛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단골 카페의 그저 그런 커피가 달라졌던 이유는 작은 변화가 이루어낸 낯섦이다. 이를테면 카페 주인장은 조그만 액자 하나를 바꾼 최소한의 비용으로 커피 맛까지 끌어올린 경영의 고수가 된 셈이다. 그러니 자주 가는 카페의 커피 맛이 달라졌다면 우선 주위를 둘러보라. 뭔가 낯설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낯섦이란 철학적 사유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긴장이다. 기존의 모든 것들을 의심할 수 있는 에너지이며 세상을 탐구하고픈 욕구다. 모두 익숙함을 뒤로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때 비로소 시작된다.

재즈계에서 익숙함 보다는 새로운 낯섦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단연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위상은 대단하다. 메인스트림으로 이룩한 업적도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창조해 낸 위업이 더 높게 평가되는 뮤지션이다. 일찍부터 그는 줄리어드 음대의 정규 음악 교육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뒷거리 연주자들과의 교류를 더 즐겼다. 그는 40년대부터 80년까지 단 한 순간도 같은 스타일을 고수한 적이 없다. 비밥, 하드밥, 쿨, 모달, 재즈락, 퓨전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쿨’ 재즈의 시조가 되었고 재즈가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기에는 ‘재즈락’을 창시하여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말하자면 결코 익숙함에 함몰되지 않고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발자국 앞서가는 새로움을 추구했던 아티스트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레이블 캐피탈 시절에 머물던 당시 1940년대 후반은 비밥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이었다. 마일즈 자신 비밥에 천착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비밥의 열기를 식히는 앨범 하나 발표한다. 유명한 ‘Birth Of The Cool’이다. 비록 ‘Cool’이라는 이름이 레코드사가 임의로 지은 것이긴 하나 단어의 의미처럼 빠르고 열정적이었던 당시 비밥의 열기를 식히고자 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동안 찰리 파커라는 걸출한 레전드 밑에 있던 마일즈 데이비스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Birth Of The Cool’은 최초로 시도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혁신이 된다. 비록 상업적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낡은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은 음악적 삶의 확실한 시초가 되었다.

한편, 1950년대 후반 그가 머물렀던 레이블은 프리스티지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었고 급기야 그는 컬럼비아 레이블로 이적을 감행한다. 그러나 프리스티지와의 계약상 미처 채우지 못한 4장 분량의 앨범이 남아 있었기에 부득이 이틀에 걸쳐 녹음을 하게 되는데 이로서 탄생한 앨범이 그 유명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ing’ 시리즈다. 그러니까 네 장의 앨범 ‘Working’, ‘Steaming’, ‘Cooking’, Relaxing’은 놀랍게도 단 이틀에 걸쳐 녹음된 음반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네 장분의 앨범을 연주하고 녹음했다는 건 아마도 전무후무한 사건일 것이다. 급속히 만들어진 앨범이나 그렇다고 연주의 질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존 콜트레인, 폴 챔버스와 같은 멤버들 역시 화려하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마일즈 데이비스의 여타 무수한 디스크 그래피 중에서 대단히 높은 판매 수위를 달리는 앨범들이다. 그만큼 명반이라는 이야기다. 가히 마일스 데이비스 전성기 시절의 명작이라 할만하다.

그렇다면 그토록 단기간에 연주하고 녹음된 음반이 이렇게 높은 퀄리티를 가지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재즈에서 일회성, 즉흥성을 중요시 여긴다 하더라도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마일즈 데이비스는 늘 변화를 추구한 아티스트였다. 아마도 그에게 익숙함만큼 따분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늘 주도적이었고 환경의 변화를 이끄는 리더였다. 질시와 조롱에 휘둘리지도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 자체가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운명이나 소명 같은 일이었는지 모른다. 푸대접 때문에 프리스티지 레이블을 떠나기로 결정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레이블에서 펼쳐야 할 구상에 더욱 갈급했을 것이다. 그런 갈급함이 오히려 재즈의 즉흥성에 영감을 불어 넣은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곳에서 마음껏 펼칠 미래에 대한 들뜸은 오히려 기존의 스타일을 완벽한 형태로 마무리하게 되는 조건이 된 셈이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혁신적인 앨범 중에서도 1969년 녹음되고 1970년에 발매되어 재즈락의 효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락과 펑크 뮤지션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Bitches Brew’는 더욱 특별하다. 향후 락(Rock)음악의 우세를 점친 마일즈는 재즈에 과감히 락을 도입하는데 Bitches Brew는 그 최초의 앨범이다. 재즈락 혹은 퓨전 재즈의 기념비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실험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전통적인 스타일과는 완전 동떨어진 혁신적 스타일로 인해 발매 초기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평소 마일즈 데이비스가 선호했던 방식처럼 각 연주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되어 리어설이 없이 즉석에서 녹음된 앨범으로 유명하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트럼펫 연주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건 절대 아니다. 그가 재즈계에서 레전드라 불리며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는 평생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려 추구했던 끊임없는 혁신과 열정에 있다. 익숙함을 절대 거부했던, 살아서 펄떡이는, 그래서 낯섦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정신에 있는 것이다.

낯섦은 때로 불안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낯섦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이 있다. 설렘이 주는 기대는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원천이다. 익숙함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서 삶의 경이로움을 매순간 경험할 수 있는 희열을 갖기 위해서는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이다. 훗날 비참한 후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2) – 새로운 시작의 창조자 마일즈 데이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