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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0) – 재즈, 혁명을 노래하다.

겨우내 움츠려야 했던 몸을 기지개 펴듯 역동하게 만드는 봄이 시작됐다. 적어도 우리에게 봄은 혁명의 계절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3월을 3.1 만세 운동 기념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역사에서는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어떤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한 것이 아닌 민중 스스로 이루어 낸 민중 항거가 유독 봄에 주로 일어났다. 애써 의미를 확대하자면 2016년 가을에 시작한 촛불 혁명 역시 이듬해 봄인 2017년 4월에 완성 되었다. 올해는 특히 “3.1 독립 만세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봄을 대하는 마음이 사뭇 남다르다.Ego sum operarius studens (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

내가 좋아하는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이다. 나는 이 말이 학문을 연구하는 직업을 가진, 예컨대 교수나 학자를 일컫기 보다는 노동을 하고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일한 여가인 밤에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중에 노동계급 자료 보관서를 뒤지다 1830 ~ 1850년대 노동자들이 남긴 문서들을 발견한다. 애초에 랑시에르가 노동자들이 남긴 자료에서 예상했던 것은 ‘난폭한 저항’ 따위의 거친 표현들이었다. 하지만 실제 발견된 것들은 뜻밖에도 고된 노동을 끝낸 후 휴식을 뒤로 한 채 치열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철학을 공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사유하고 철학하는 행위는 지식인들만이 공유하는 형식이라는 것에 저항하던 ‘프롤레타리아의 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자란 ‘사유하지 않아도 별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운명’이라는 만연된 무력감과 보편적 정체성에 반기를 든 셈이다. 노동자란 그저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임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시간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유일한 휴식인 밤을 소환하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일 수 있다고 자각했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Ego sum operarius studens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로 그 공부하는 노동자들이다.

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발굴은 격동의 68혁명 당시 랑시에르가 혁명과 저항의 전선에서 전위(지식인)와 대중(노동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결별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랑시에르에 의해 역사의 수면위로 부상한 노동자 스스로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알튀세르는 인정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대중)는 노동에 전념하고 지식인(전위)은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기본 질서를 포기하지 않은 알튀세르를 랑시에르 역시 추종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전위와 대중의 ‘역할 분담’이라는 대전제가 뒤엎어지게 되었다.

내가 랑시에르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튀세르가 기본적으로 노동자 착취와 지배 구조에 대해 담론으로 접근했다. 반면에 랑시에르의 관심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포함한 문화 향유 욕구와 자격, 그리고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정체성의 문제에 있었다. 자격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능력도 있다는 것을 노동자와 대중이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해 대변되어지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아닌 노동자 스스로 발화하는 목소리가 존재하고 부당한 체제나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바로 노동자 자신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민중으로 변환한다 해도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3.1 만세 운동,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최근의 촛불 혁명이야말로 이를 완벽히 증명했고 실천한 민중 혁명이다.

‘AVANTI!’ (Giovanni Mirabassi, Sketch)는 앨범 자켓의 디자인이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솔로 앨범이다. 붉은 색 바탕에 검고 굵은 서체로 쓰여 있는 ‘Avanti’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전진’ 혹은 ‘진군’이라는 의미이다. 2001년 발표될 당시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이탈리아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지오바니 미라바시(Giovanni Miravassi)를 세계적인 연주자로 각인시켰다.

‘AVANTI!’는 세계 곳곳의 민중 투쟁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혁명과 저항 음악만을 담은 앨범이다. 서정적인 피아니즘으로 유명한 엔리코 피에라눈찌(Enrico Pieranunzi)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저항과 혁명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서정미 가득한 아름다움으로 재편하고 재해석했다.

첫 트랙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는 우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같은 저항 음악이다.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로 번역되는 이 노래는 1973년 피노체트에 의한 쿠테타에 맨몸으로 맞서 싸운 칠레 민중들이 거리에서 부르던 저항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실제 미라바시는 내한 공연 중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칠레의 투쟁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이 곡을 미라바시는 지극히 아름다운 서정미를 담아 연주한다. 이외에도 파리 꼬뮨의 상징 ‘Le Temps Des Cerises’, 체 게바라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Hasta Siempre, 백인으로서 남아공의 아파르트 헤이트에 저항했던 자니 클렉의 ‘A Si M’Bonanga’,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르티잔을 위한 ‘Bella Ciao’, 반전을 상징하는 존 레논의 ‘Imagine’과 자신의 자작곡 ‘Revolution’등이 수록되어 있다.

혁명의 계절이자 봄이 시작되는 3월, 혁명을 노래하는 앨범 ‘AVANTI!’만큼 의미 있는 재즈 앨범도 드물다. 거칠고 투박한 혁명의 목소리를 재즈 미학으로 다듬고 승화시켜 새로운 음악으로 만들어 낸 놀랍도록 아름다운 앨범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0) – 재즈, 혁명을 노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