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저널세상을봐

내 동생 형도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서점에서 시집으로 나는 그 시인을 처음 만났다. 크고 동그란 우수에 젖은 눈, 그 눈이 날 사로잡았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그 때 그 날이 생각난다. 뭐라 말하지 않아도, 시인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어도, 그의 눈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시인의 글들을 보면, 자신의 소설, 편지, 여행기 등 삶의 숨결이 고스란히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우울한 내용이라 싫어하는 사람도 여럿 있지만,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펐던 그의 생애가 진솔하게 담겨져 있어서 나는 좋았다. 다른 작가들에 비하여 꾸밈과 과장이 없이 감성과 추억들로 그 시대를 책을 통해 알 수 있었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저릴 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흘렀어도 그의 글을 찾아 읽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문학관 곳곳에는 시인을 사랑한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꾸며져 있었다. 시인의 시 중에 ‘엄마걱정’이라는 시가 있는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이다. 그 속에는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펐던 어린 시절의 자아가 나타나는데, 직접 문학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는 그 시에 담겨있는 그의 생각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빈집’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었는데, 실제로 문학관에 들어가면 빈집이라는 이름의 빈 공간이 있었다.

다음은 시인의 궁금한 점에 대한 누나와의 문답이다.

 

문학관 전시관을 통해 본 시인의 성격은?

어린 시절부터 시를 썼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겸손하고 다정다감했으며 정이 많았던 사람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가족 한명 한명을 위해 과자를 사오던 그런 다정한 사람이었지요. 세심하고 치밀하기까지 했던 그의 성격은 문학관에 있는 전시물들을 보면 유추해 볼 수 있을거에요.

문학관에는 공책, 글씨체, 만든 지도공작, 축구팀을 그린 그림 등 시인이 보관해 두었던 물품들이 전시 되어 있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직장에서 집에 와서는 어머니가 계신 곳을 확인하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책을 좋아해서 항상 정리해서 책을 꽂는 습관이 있었고, 친구들이나 조카들에게 위로하는 방법이 또한 남달랐어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아들에게 특별히 야단칠 것이 없었다고 하십니다. 착하고 말 잘 듣고 초등학교 때 일기를 보면 그날그날 반성해야 할 것 들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들도 빼곡히 적어 놓을 정도였어요. 그래서일까. 어릴 때부터 시인은 메모하는 좋은 습관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생선국이나 고깃국을 끓여 식사를 할 때면 본인의 국그릇에 있는 고기를 건져 엄마 국그릇에 옮겨 놓곤 하던 다정스런 효자인 아들이었지만 학교에서 상을 타오는 날에는 “엄마는 내가 공부 잘해서 상을 타 왔는데도 눈깔사탕 하나 사 주지 않는다.” 는 말도 했다고 하십니다.

누구나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었던 것처럼 시인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누나가 기억하는 동생은?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걱정해야했던 저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정답게 제 마음을 표현 못했지만 늘 동생이 사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웠어요. 무엇보다 동생은 참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아주 겸손하고 다정다감했으며 정도 많았고 부모님께 속 한 번 썩힌 적이 없었지요.

동네에서도 동생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어떤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형편에 가정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던 때라 동생에게 용돈을 많이 주지 못해서, 줄 때면 좀 더 주지 못했던 점이 가슴 아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가 마음을 나누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시간들이 아쉽고 안타깝지요. 동생이 막내아들로 엄마에게 아들 노릇할 때, 그리고 돼지를 함께 돌보던 일들이 기억 납니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시인은?

다정다감했던 동생은 친구들과의 모든 일에서 화목하게 어울렸다고 합니다. 그가 시에서 말한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가족에게도 그랬듯이, 보이던 보이지 않던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작가가 살아있다면 시를 쓰는 것 외에 무엇을 하면 살고 있을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생전에 어머니는 동생에게 글 쓰는 사람은 가난하다며 걱정하셨지요. 그럴 때면 시인은 어머니에게 “나는 글 쓰는 것 말고도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노래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아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어떤 모임에서 만날 때면 자연스럽게 그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합니다. 노래 뿐 만 아니라 어렸을 때에는 그림과 만화를 그려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시인은 정말로 팔방미인이었던 것 같다.

누나로 동생을 생각하면 유고시집이 발간된 것은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생각되고 동생이 살다 간 자리인 광명시에 문학관이 세워진 것은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광명시민들과 기형도의 문학세계와 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 문학관을 건립해 주신 것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이지요.

2019년 기형도시인 30주기를 맞이하여 30주기 기념시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문학과 지성사, 3월 발간 예정)’, 추모 콘서트, 낭독의 밤, 추모제, 일러스트 전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추모 콘서트는 3월 5일(화요일) 광명시민회관에서 저녁 7시 열리며 콘서트 제목은, ‘정거장에서의 충고’다. 시집을 준비하던 기형도시인은 ‘정거장에서 충고’,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올해 30주기를 맞아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기회가 된다면 많은 분들이 기형도 문학관 관람 및 30주기 추모 행사도 참여하고 이번에 새로 출간되는 기념시집도 접해보길 권하고 싶다.


3월 출간  문학과지성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출처 알라딘

 

 

정 정숙내 동생 형도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