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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9) – 크레올의 자존심 시드니 베세

어떤 책들은 평소에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팍팍한 삶이 주는 어떤 문제들에 맞닥뜨려 손을 놓고 침잠할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 그런 류의 책이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남아메리카의 우편비행사업에 참여하여 수많은 비행 임무를 수행한 뛰어난 직업 조종사였다. 문학 작품을 남긴 작가로서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 하겠다. 1936년 비행 중 사고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 했다가 극적으로 살아 귀환했던 경험은 후일 <어린왕자>로서 빛을 발하게 된다. 1944년 정찰 비행을 위해 이륙한 생텍쥐페리는 다시 한 번 실종되었고 결국은 돌아오지 못했다.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 정확한 실종 원인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야간 비행>은 조종사 파비앵이 지상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영원한 비행의 세계로 떠난 것처럼 마치 생텍쥐페리의 회고록처럼 남았다.

 

 

<야간 비행>의 시대적 배경은 항공기의 야간 비행이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던 시절이다. 어느 날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각각 우편물을 싣고 이륙한 세 항공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착륙하기 위해 날아오고, 이들의 우편물을 인계받아 즉각 유럽으로 향할 비행기는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의 항공기들은 항속거리가 매우 짧았다. 그러므로 장거리로 운송해야했던 국제 우편의 경우 항공기에서 항공기로 이어지는 릴레이식 운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칠레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무사히 안착했으나 파타고니아발 비행기의 조종사인 파비앵은 뜻하지 않게 사나운 태풍을 만나 추락하게 된다. 사태에 대해 동요하는 지상 직원들과는 달리 항공 우편국 책임자인 리비에르는 무심할 정도로 냉철하다. 결국 파라과이에서 출발한 세 번째 비행기가 도착하면 우편물을 옮겨 싣고 곧바로 이륙할 수 있도록 유럽행 비행기를 대기시키라고 명령하면서 소설을 끝이 난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내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리비에르란 인물에 대한 의문이다. 동료의 비극을 뒤로하고 비행기의 이륙을 지시하는 리비에르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리비에르에 대한 평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의 암운이 짙게 깔려있던 1930년대의 이른바 행동주의 문학을 추구했던 생텍쥐페리를 생각해 봐야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실존주의 철학과도 맥이 통하는 행동주의 문학은 주어진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 개개인의 내면적 투쟁이 행동 자체로 이어질 때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셍텍쥐페리가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파비앵이 안전하게 귀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리비에르가 내린 다음 비행기의 이륙 명령에 대한 당위성이다. 목표의 완성 여부를 떠나 인간의 멈추지 않는 행동과 실천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한 가지 의구심은 셍텍쥐페리가 말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가 혹시 리비에르가 유럽행 비행기의 이륙 명령을 내리기까지의 고뇌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개인이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루어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질문이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 1시쯤 되면 그녀는 남편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이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고 있겠지……’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그를 위해 식사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했다.」 (야간 비행 p84, 펭귄클래식)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오고 있는 파비앵이 안데스 산맥 인근에서 한창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시각, 남편의 안착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 시몬 파비앵이 여느 때처럼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평소처럼 비행을 마치고 귀가한 파비앵이 대하게 될 따뜻한 정경일 것이다. 고단한 비행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하는 식사와 따뜻한 커피. 파비앵이 감행하는 위험천만한 야간 비행의 대가가 고작 이런 거야? 라고 폄하할 수도 있을 만큼 소박하고 조촐하다. 언급은 없지만 재즈 역시 흘러나오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재즈의 모습은 어땠을까?

<야간비행>은 1931년 발표된 작품이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이 1935년에 끝이 나며 빅밴드에 의한 ‘스윙 재즈’가 시작되었으니 아직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한 초기 재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15 Dec 1931, Manhattan, New York, New York, USA — The view of 1931 Manhattan from the 27th floor of the River House. — Image by © CORBIS[/caption]

당시의 대표적인 재즈 뮤지션이라면 단연코 루이 암스트롱이다. 하지만 그의 그늘에 살짝 가린 면이 있으나 색소포니스트 ‘시드니 베세’(Sidney Bechet) 역시 위대한 천재 예술가의 반열에 올린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괴팍하고 까다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예법과 도회적인 취향을 동시에 지닌 이색적인 인물이었다.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그는 프랑스 혈통의 흑인, 즉 크레올이다. 그래서일까? 1925년까지 유럽으로 건너가 1931년 귀국할 때까지 유럽에서 활동을 한 것 외에도 1949년에는 아예 프랑스로 이주하여 59년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고작 영화 Midnight In Paris의 OST에 삽입된 Si Tu Vois Ma Mere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가 부는 색소폰의 풍부한 음색은 늘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래서 비행사 남편을 위해 따뜻한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던 아내가 내내 듣던 음악이었을 것만 같다. 커피는 식사와 함께하는 것이니 진하게 내린 커피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충분히 부어 만든 카페 오레였을 것이다.

 

겉으로 읽혀지는 이 대목의 풍경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그러나 비행사 남편 파비앵의 소식이 들려오기 직전의 폭풍전야와도 같은 불길한 평화로움이다. 비극적 결말이 미리 예정되어 있어서 그럴까? 이 부조화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난 <어린 왕자>를 이성으로 읽고 <야간비행>은 가슴으로 읽는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9) – 크레올의 자존심 시드니 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