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저널세상을봐

나에게 기형도란? ‘무력감’을 이겨낸 승자이다.

처음만난건..

21살인  5월에 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그 책이 바로 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집이다.

생일도 아니고 특별한 뭔가 이슈가 있는게 아닌데 같은과 언니가 뜬금없이 내 책상위에 올려주었다. 선물이라면서..

지금 그 언니를 생각해 보면 송곳같이 예리한 그 언니만의 화법이 있었다. 약간은 공격적이면서 너무 뚫어 보는거 같아서 술자리때마다 누군가와 언쟁을 했던거 같은..

감정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듯 표정으로는 기분을 알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랑 많은 대화를 하던 사이도 아니고 그냥 적당한 거리감을 갖고 있던 그 언니가 준 선물이다.

표지를 넘기니 내게 전한 메모가 있었다.

안아주고 싶은 아이? 내가? 그간 알고 있던 언니와 너무 다른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넘치는 메모에 가볍게 대답을 하기에는 먹먹함이 앞섰던거 같다.

1996년 그렇게 만난 ‘기형도’이다. 메모가 전해줬던 먹먹한 감정으로 이 책의 페이지를 열었을때 처음 만난건 ‘차례’ 앞페이지에 적혀있는 1988.11 詩作  메모이다.

기.형.도 이름 석자 보다도 시들이 전해주는 울림보다 난 이 메모에 한참을 꽂혀 있었다.

글로 읽히는게 아니라 한 문장문장, 다시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서 각각을 다시금 생각해보게하는 그래야 조금이나마 그 이해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금 내 생각의 깊이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없이 내가 작아지는거 같은 말들이었다.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 가장 위대한 잠언은 자연속에 있음을  / 믿음이 언제가 나를 부를 것이다. /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21살 그때는 분명 그랬다.

안되겠다. 이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을때 다시 눈에 들어온건.. 뒷표지. 또 시인이 전하는 詩作 메모(1988.11) 였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 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기형도, 詩作  메모(1988.11)>

 

극작을 전공하는 21살 학생인 나에게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라는 말이 눈에 꽂히는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시집을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말이기도 했다.

내 두손에 지금 이 책이 있다는건 그렇다면 어찌되었든 그 글울 쓰지 못하는 시간의 무력감을 이겨냈다는 증거이니까..

그 증거를 앞에 두고 다시 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연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 무력감이란?

 

기형도를 이해하고 싶어 ‘무력감’ 이란 단어를 하나씩 찾아가다보니

에리히 프롬의 인터뷰 끝맺음 글을 보면서 어쩜 내가 궁금한 답을 여기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 사회심리학자 [ Erich Fromm] 1900.3.23. ~ 1980.3.18

“스스로 완전히 타인이었던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저자 에리히 프롬 | 나무생각

여전히 놀라운 현실성과 예리한 통찰

국내에 미발표된 에리히 프롬의 책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는 에리히 프롬이 1930년대부터 쓴 강연록, 논문, 저서의 글을 모은 책이다. 심리적 역학에서 사회적 발전을 일찍부터 알아보았던 프롬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힘 있는 작품들을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조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라이너 풍크가 엮었다.

에리히 프롬은 이 글들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진짜 삶에 도전하라고 격려한다.

우리는 왜  무기력함을 느끼나?

이 책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왜 우리가 무기력함을 느끼는 그 근원을 찾는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우선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해 모른다’고 말한다.

무기력함은 꼭 축-쳐진 상태가 아닌 오히려 분주하게 생활하고 미래에 어떤 낙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발현될수도 있다.

현대교육은 그 전체가 아이에게 갈등의 경험을 덜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모든 것을 수월하게 해주고 아이를 정성껏 보살피지만 갈등은 해로운것이기에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오류다. 사실은 그 반대다. 갈등은 감탄의 원천이며 자신의 힘과 흔히 ‘성격’이라 부르는 것을 개발하는 원천이다.

에리히 프롬은 무기력함을 이겨낸다는건…

 

결국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 세상의 모든 것에 감탄하는 능력
  • 지금 현재 삶에 집중할 수 있는 힘
  •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는 자아 경험 능력
  • 마지막으로 갈등을 피하지않고 받아들이는 힘이라고 얘기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을 기형도는 어떻게 이겨 냈을까?

 

어느 순간 짠~하고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하루 단어 하나하나 채워가는 시간에 마음과 몸을 채우고 있던 많은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사이에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안개’ 당선의 기쁨을 맞으며 더 견고하게 글을 쓸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후 가족과 함께(1985) 출처: ⓒ문학과지성사

시 ‘안개’의 배경이 되었던 안양천변 방죽.388번 종점 근처에서 바라본 풍경. 출처: ⓒ문학과지성사

시 ‘안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2019년 다시 만나는 ‘기형도’는 오랜 시간을 사이에 둔 만큼 많은 다름으로 전해졌다.

책을 다시펼쳐보며 별책부록처럼 소환된 1996년의 21살의 나는 따뜻한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다.

그걸 나 스스로도  지금이 되서야 알겠는데 그 시기에 나를 읽어준 언니에게 고맙다.  

추유선나에게 기형도란? ‘무력감’을 이겨낸 승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