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저널세상을봐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8)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② “Undercurrent (Bill Evans & Jim Hall, Blue Note) 와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

앨범 Undercurrent (Bill Evans &Jim Hall, Blue Note)는 1962에 발매된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역사적인 듀오 앨범이다. 당시로서는 다분히 희귀했던 피아노와 기타 듀오 구성의 연주임에도 이 앨범을 재즈 미학의 최 정점에 올려놓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두 연주자 모두 쿨 재즈의 대가들이므로 쿨 재즈를 언급할 때 빠트려서는 안 되는 앨범이다.

UNITED KINGDOM – MARCH 19: BBC 2 JAZZ 625 Photo of Bill EVANS and Bill EVANS (Piano) (Photo by David Redfern/Redferns)

UNITED KINGDOM – MARCH 19: BBC 2 JAZZ 625 Photo of Bill EVANS and Bill EVANS (Piano) (Photo by David Redfern/Redferns)

1962년이라면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해다. 최고의 파트너이자 친구였던 스콧 라바로의 죽음은 한동안 그에게 연주를 못할 정도의 큰 충격과 비통함을 주었다. 그렇기에 스콧 라바로 타계 이후 첫 녹음 앨범인 Undercurrent는 미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빌 에반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의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에서의 빌 에반스는 이전의 그와는 좀 다르다. 맑고 투명했던 그의 스윙은 뭔가 속마음을 애써 꾹꾹 누르듯 평소보다는 자제되어 있다. 스콧 라바로가 생전이라면 당연히 맡았을 리듬은 짐 홀의 기타가 적절히 감내하고 있다. 마치 스콧 라바로를 추억하는 듯하다.

이 앨범의 첫 번째 인상은 무엇보다도 강렬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켓 사진에서 비롯된다. 깊고 어두운 물위에 누워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음울함과 서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완전히 가라앉지도, 그렇다고 부유하듯 떠 있다고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깊은 물에 트라우마가 있어 타이틀 Undercurrent(암류)와 자켓 사진 그 자체가 압박감이다. 집어들 때마다 늘 주저하게 된다. 마치 Undercurrent가 주는 단어의 의미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안한 움직임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다. 음악적인 면을 별개로 하더라도 자켓 사진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앨범이다.

그러나 정작 담긴 음악은 이와는 다른 뉘앙스다. 자켓 이미지와는 정 반대다.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빌 에반스와 짐 홀 두 사람 모두 화려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연주자인 만큼 차분하고 조용하다.

앨범이 처음 발매된 당시 피아노와 기타 듀오는 상당히 실험적인 구성이다. 거기에 빌 에반스의 피아노와 짐 홀의 기타는 누가 들어도 구분이 될 만큼 독자적이고 개성이 뚜렷하다. 이 두 사람만으로 구성된 팀이었으니 서로의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정상적인 인터플레이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오랫동안 연주를 통해 우의를 다진 친구들처럼 서로의 음악을 인정해주고 있다.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면서도 자신의 빈자리를 메우러 들어오는 상대방을 결코 밀어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이 앨범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집어 들어 차분함과 따뜻함으로 듣다가 종래에는 슬픔으로 해석한다. 물론 강렬한 자켓 이미지 탓이 크겠지만 이런 양가감정은 어쩌면 드러내지 못하는 원천적 슬픔과 불안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종 즐겁고 신나야 할 일 앞에서도 그저 덤덤하니 무감해질 때가 있다. 오히려 가슴을 찔러대는 통증에 끙끙대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런 저런 사회적 문제의 본질이 결국 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하기도 한다. 더욱이 각자의 개인적인 빈곤과 차별, 낙오, 소외, 절망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슬픔은 대놓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SNS가 그 창구인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걸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눈치 채고 있다. 대체 불안과 슬픔이란 어떤 감정이기에 이렇듯 나를 지배하는 걸까?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코나투스(Conatus)’라는 개념을 역설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양태(사물)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취하고 자신에게 부적합하거나 위협적인 요소는 피하게 된다. 이는 본성이고 자기 보존 욕망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기 보존 욕망이 증대되는 상태가 기쁨이고, 반대로 자기 보존 욕망이 침해를 받아 내 존재의 힘이 억압받는 상태가 불안이고 슬픔이다. 그러므로 불안과 슬픔은 기쁨에 비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 기쁨으로 치환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인 셈이다. 스피노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스피노자에 따른다면 인간은 언제나 불안과 슬픔을 멀리하고 기쁨을 추구하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리라. 이것이 아마도 스피노자의 철학을 기쁨과 긍정의 철학이라 일컫는 이유일 것이다.

Undercurrent의 자켓 이미지와 연주가 서로 상충하는 이유를 혹 여기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함에도 빌 에반스와 짐 홀이 그렇듯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기꺼이 메워주는 것. 그런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불안과 슬픔을 조금씩이나마 이기는 방법이 아닐까?

앨범 Undercurrent의 자켓 사진은 불안과 슬픔의 이미지를 주는 것에 반해 실제 수록된 음악은 따뜻하고 다정한 음악인 것처럼 서로 상반된 이미지와 맛을 가진 커피가 있다. 과테말라의 커피가 그렇다. 과테말라 커피는 왠지 모르게 거칠고 강한 쓴맛의 이미지를 가졌으나 실은 밝고 따뜻한 풍미를 더욱 많이 가지고 있다.

과테말라는 국토의 대부분이 화산재 토양이다. 또한 일교차가 크고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특히 화산재 토양의 특성상 미네랄이 풍부하고 배수성이 우수해 커피 재배에 최적이다. 커피 수출액이 과테말라 전체 수출액의 거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커피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과테말라 안티구아 (Guatemala Antigua)라는 명칭은 과테말라 내에서도 대표적인 커피 재배지로 유명한 안티구아 지역 커피를 의미한다. 화산재 토양의 고지대에서 주로 생산되는 커피로서 강렬한 스모크(Smoke) 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산미 또한 엄청나게 풍부한 커피이기도 하다. 바디감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달콤함 마저 우수하다. 나무가 타들어갈 때 나는 훈제 향이 강하다는 인식 때문에 전통적으로 강하게 로스팅 하는 대표적인 품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간 혹은 약하게 로스팅 하는 추세가 늘어났다. 그래서 고유의 스모크한 향은 여전히 뛰어나면서도 상큼한 산미 역시 도드라진 과테말라안티구아를 많이 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스모크 향이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스트롱(Strong)한 향과 맛을 생각했다가 의외의 산미와 부드러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치 음울한 불안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밝고 따뜻하고 나른한 음악을 담은 앨범 Undercurrent 같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8)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② “Undercurrent (Bill Evans & Jim Hall, Blue Note) 와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