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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인을 생각하며 나는 쓰네

오는 3월 7일이면 기형도 시인이 우리와 이 세상으로부터 작별한지 30년이 된다.

내가 그를 시로써 만난 지도 얼추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유럽여행 중 (1987) 출처: ⓒ문학과지성사

 

어느날 문구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코팅 책받침 속 시, ‘입속의 검은 잎’이 주었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아직도 손끝에 느껴지던 책받침의 촉감이 생생하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의 사진이 들어간 매끈한 코팅을 기대하며 뒤적이다 뜬금없이 마주쳤기 때문일까. ‘악착같이 매달린 입속의 검은 잎이 두렵다’는 마지막 구절에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등뼈를 타고 흐르던 알 수 없는 공포와 불편한 기분. 그것이 첫 인상이었다. 그때는 군사정권을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박종철과 이한열같은 이름이 회자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주친 시가 서점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동명의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을 만났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빨개지며, 또 암울함에 답답한 가슴을 달래며 읽고 또 읽었다. 온통 사로잡혀 빠져들게 한 시들이었지만 언어는 밝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출처: ⓒ문학과지성사

나중에서야 우연히 영화를 보러 들른 극장이 그의 죽음을 목격한 장소였음을 알게됐다. 시인을 알기 전에는 하나의 극장일 뿐이었지만 안타까움과 슬픈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그곳에 다시는 갈 수 없었다. 그토록 기형도 시인의 갑작스런 부고는 더 아프게 다가왔다.

시인은 무슨 생각을 하며 슬픔과 공포, 상실감과 애잔함과 고통이 가득한 그 시들을 썼을까. 그때는 그랬다. 나만이 아니었구나. 이 사람도 두려웠고 외로웠구나.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시집속에서 넘어오는 감정들이 지나치게 선연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엄마가 열무 삼십단 이고 나가지는 않았지만 텅 빈 집에 ‘찬밥’처럼 남겨져 공포를 느낀 기억이 생생하다. 또, 가족 또는 가까운 지인의 죽음과 와병 앞에서 절망과 슬픔을 느낀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감하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위로를 전했다. 그러니 놀라울 수 밖에. 어둡고 암울하지만 나 홀로가 아님을 알게 하는 것이 그의 시가 가진 힘이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집 한 권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잠식돼 있던 나의 이십대 초중반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그의 시들은 현대시 중에서도 아직까지 그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제각각이라 하나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음이 그의 시가 영속성을 가지고 살아 숨쉬는 이유가 아닐까. 1989년이나 30년이 흐른 지금이나 가난, 가족의 죽음과 같은 삶의 불행은 변함없이 힘들고 괴롭다.  나이들어가며 무르익어 흘러나오는 시들을 읽고 싶건만, 그는 영원한 29세 청춘으로 남았다. 아주 먼 옛날같이 느껴지는 30년 전,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이 살아있음을 더 생생히 느끼게 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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