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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7)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① “Clifford Brown With Strings & 케냐산(産) 원두”

1956년 6월 26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카고로 향하던 한 대의 승용차가 도로를 달리던 중 5미터 높이의 제방 밑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당시의 필라델피아의 기상은 폭우가 쏟아지던 상태였다. 차를 타고 있던 세 명의 승객 모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처음엔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도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고는 곧 재즈사에 영원히 언급될 한 젊은 연주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비극이 되었다.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 그를 언급할 때마다 떠오르는 수식어가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신이 그의 재능을 질투한 바람에 너무나 빨리 세상을 등지게 된 천재. 26년의 짧은 생애. 레코딩 기간은 겨우 4년. 그리고는 신기루처럼 떠나버린 비운의 천재 트럼페터.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 남긴 음반들은 하나같이 역사적인 명반으로 남았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그가 만약 그렇게 일찍 절명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재즈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할까? 그의 음악은 끝까지 완벽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그가 남긴 흔적들이 강렬했기에 가능한 물음이고 가정이다.

사고 당일 그는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의 동생 리치 파월과 그의 부인 크리스와 함께 시카고의 클럽으로 연주하러 가던 길이었다. 불행하게도 자동차 주인인 리치 파웰은 미숙했던 그의 부인에게 운전을 맡겼고, 차는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어이없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당시 재즈계에도 엄청난 충격을 불러왔다. 술과 마약으로 취해있던 대부분의 연주자들과는 달리 그는 마약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깨끗한 사생활과 인성으로 주변의 평도 훌륭했다. 이튿날 사고 소식을 들은 디지 길레스피 악단의 멤버들은 공연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통곡하는 바람에 공연을 엉망으로 마쳤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에 깜짝등장하는 디지 길레스피악단

단명한 뮤지션으로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고 떠난 경우는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 정도가 있을까?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재즈 트럼페터는 당연히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클리포드 브라운이 계속 활동을 했더라면 어쩌면 마일즈는 오늘날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의 상당부분을 클리포드 브라운에게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1930년생인 클리포드 브라운은 여러 악기를 다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교 입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였고 대학 졸업 후인 1952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단지 4년 후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 짧은 시기 비교적 많은 앨범을 남겼다. 이 앨범들 모두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로 고고하게 빛나고 있으니 수혜를 받는 우리로서는 그저 다행할 뿐이다.

최초의 녹음은 1952년 5월 시카고에서 이루어졌으나 정식 앨범을 위해 작업한 것은 아니라서 그의 사후 기록을 뒤져 찾은 끝에 발매될 수 있었다. 결국 실질적인 데뷔 앨범으로 꼽는 것은 1953년 뉴욕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Memorial Album’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앨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그에 대한 추모 앨범 형식으로 사후에 발매되었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에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다는 건 당시만 해도 그가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53년에 입단한 라이오넬 햄프턴 밴드에서의 입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밴드의 유럽 순회공연 당시 개별 음악활동 금지라는 규칙을 어긴 일로 밴드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곧 아트 블래키에 발탁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클리포드 브라운으로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1954년 2월 2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뉴욕의 클럽 ‘버드랜드’에서 향후 재즈사에 남을 위대한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드 밥의 태동이 이날 이루어졌고 그 주인공은 단연 클리포드 브라운이다. 대중들이 그간 들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속주와 파워풀한 블로잉은 클리포드 브라운 자신은 물론 리더 아트 블래키와 그의 밴드 재즈 메신져스, 그리고 호레이스 실버의 등장을 알리게 된 엄청난 사건이 되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게 되어 드러머 맥스 로치와 더불어 ‘브라운 & 로치’라는 퀸텟을 만들게 된다. 두 리더를 제외한 멤버들의 교체로 구성에 다소 부침이 있었으나 워낙 클리포드 브라운과 맥스 로치의 역량이 뛰어났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특히 이 시기에 레이블 ‘엠아시’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And Max Roach’를 비롯한 다수의 앨범과 다이나 워싱턴, 헬렌 메릴, 사라 본 등 실력 있는 여성 보컬과 각각 협연한 앨범들은 모두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수작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 소개할 ‘Clifford Brown With Strings’는 특이하게도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다.

‘Clifford Brown With Strings’는 1955년 작품이다. 이전에 나온 여타 엠아시의 앨범들에 비해 한결 부드러우면서도 감성적인 클리포드 브라운의 브로잉이 배경음으로 퍼지는 현악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클래식컬 하면서도 결코 재즈의 주제 선율을 잃지 않고 있다. 수록곡들 모두 주옥같은 재즈 스탠더드 발라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들어도 만족할 만한 연주다. 절제된 맥스 로치의 드러밍 또한 놓쳐서는 안 될 명작이다.

이 아름다운 앨범 Clifford Brown With Strings에 어울릴만한 커피를 고른다면 제일 먼저 케냐산(産) 원두를 꼽는다.

19세기 후반 인접 국가인 에티오피아를 통해 도입된 케냐의 커피는 거의 해발 1,500미터 이상 고지대에서 재배되며 대부분 지역의 기온과 강우량, 토질, 일조량 등이 커피 재배 조건에 이상적이다. 전반적으로 품질이 균일하고 신뢰할 만하다. 재배와 가공, 선별, 판매 시스템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AA 등급의 원두를 흔히 접할 수 있어 일반적인 등급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AA 등급은 실제로 케냐 커피 중에서도 최고의 등급을 말한다. 그만큼 맛과 향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로스팅의 스펙트럼이 넓기로 유명하다. 즉, 약볶음부터 강볶음까지 어떤 포인트로 로스팅을 해도 저마다의 향미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현된다는 뜻이다. 깊고 묵직한 바디감과 향기로운 꽃향, 감귤류의 산미와 너트류의 고소함, 다크 초콜렛의 쓴 맛과 달콤함, 중후함과 산뜻함을 동시에 가진 최고의 밸런스를 자랑한다. 커피는 원래 호불호가 극명한 기호품이지만 케냐 커피만큼은 누가 마시든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원두다. 앨범 Clifford Brown With Strings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인 감성을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절정의 기량을 가진 상태에서 절명했기 때문에 클리포드 브라운이 더욱 위대한 이름으로 칭송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연주와 앨범을 만들어내고는 홀연히 사라져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전에 이미 전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오랜 기간 혁신과 창조를 우리에게 선사했다면 그 반대편엔 당대의 순간을 보석처럼 화려하게 빛나게 한 클리포드 브라운이 있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는 그야말로 온전히 클리포드 브라운의 시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고루한 말은 진정 클리포드 브라운 때문에 영원히 격언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7)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① “Clifford Brown With Strings & 케냐산(産) 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