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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호 시인의 당신을 위한 시한편 –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

진한 남도사투리의 편지 사연에 푹 빠져 읽어가노라면 그 정서가 덩어리째 스며든다. 따로 사투리 해석이 없어도 오 난독의 염려가 별로 없지 싶으나 몇 가지 시인이 알려주는 대로 풀이하자면, 비민하것냐만→ 어련히 알아 하겠냐만, 징허긴 징헌갑다→ 심하긴 심한가보다, 너할코→ 너마저, 제금 나고→ 결혼해서 떠나고를 뜻한다. 그리고 이 시의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어 마저 소개한다.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 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어머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린 넋두리로 씌어진 이 작품은 어머니 혼자서 빈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농촌생활의 피폐함과 쓸쓸함, 그리고 수녀가 되겠다는 딸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를 일시에 반전시키는 마지막의 처리가 인상적이다. 농촌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아랑곳없이 ‘복사꽃 저리 환하게’ 피었기 때문이다. 즉 인간사와는 상관없이 자연은 어김없이 그 질서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는 구절 속에는 보고 싶은 딸과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그리움은 보고픈 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때의 묵힌 정서 상황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그리움이 별밭에 일렁이는 은하수라면 고향에 계시는 부모들의 도회로 나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은 차라리 겨울 비탈에 선 애절한 나목이다. 부모 둥지 떠난 자식들의 고향 찾는 횟수가 고작해야 일 년에 두어 번. 아니면 그조차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너나없이 승용차가 있고 씽씽 KTX가 달린다한들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힘들게 고향을 찾아와서도 재깍 내빼고 튈 궁리만 앞선다. 처음부터 복귀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사람 같다. 그래야 잘 나가는 자식의 유세처럼 보인다. 더구나 올해는 추석을 끼고 3일간 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준다니 웬만큼 산다 싶은 이도 얼씨구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 시방 고속도로는 북새통이다.

우리 ‘엄니’들이 일찌감치 명절날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그리움을 예약하시는 마음에 비해 추석 한나절부터 서두르는 귀경행렬을 보면 도회 사는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참 야속하고 사무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해남 출신 이지엽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이 노모는 홀로지만 참으로 꿋꿋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을 혼자 보기 아깝다면서 짐짓 자식들에게 유혹의 추파를 보내지만 먹혀들지 않으리란 것도 잘 안다. 마침내 대한민국은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홀로 가구는 늘고만 있다. 수녀가 되어 종신서원 받은 딸자식과 엄마의 특수한 관계와 사정은 별개로 치고, 지금 우리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모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장차는 그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어머니 떠나시고서 지난 설에 이어 두 번째 맞는 명절이다. 어머니 안 계시는 추석을 지내고보니 어머니가 드리웠던 사랑의 그늘이 얼마나 넓은지를 새삼 깨달았다. 남 보기엔 무심한척 해도 혼자 있을 때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은 어찌할 수 없다. 일반화시켜 말할 건 아니지만 우리 자식들이 부모를 받들어줄 것이란 기대는 거의 무망하다. 노후의 경제적 안정 못지않게 정서적 안정과 자립이 필요한 때다. 도리 없다, 자식에 대한 기대는 팍팍 줄이고 그리움 또한 탈탈 털어내는 수밖에는.

박 수호박수호 시인의 당신을 위한 시한편 –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