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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6) – 자크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의 ‘Vivaldi, The Four Seasons (Telarc)

겨울은 쌩하게 추워야 제 맛이라고들 하지만 요사이는 도무지 겨울이 겨울답지가 않다. 눈을 본 지가 언제였는지 모르겠고 봄에만 잠깐 날아오던 황사와 미세먼지는 겨우내 우리를 괴롭혔다. 깜빡 한 눈을 팔다간 꼼짝없이 외투를 벗어야 할 판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봄노래를 흥얼거리며 꽃 소식을 기다리는 게 낫겠다 싶다.

봄이 되면 주변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여러 음악들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와 더불어 이번에 소개할 비발디의 ‘사계 역시 그 중 하나다. 사실 사계는 비단 봄뿐만 아니라 계절에 상관없이 듣게 되는 곡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식상한 음악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본래 비발디의 사계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서 사계절을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세밀하고도 풍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더욱이 악보의 중간 중간 들어 있는 지은이 미상 시(소네트)로 인해 표제 음악으로서의 기능에도 충실한 곡이다. 이 작품을 연주한 음반이야말로 셀 수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음반으로는 아무래도 이탈리아 챔버 앙상블 ‘이 무지치’와 바이올리니스트 펠릭스 아요의 협연 음반을 들 수 있다. 이밖에 파비오 비온디와 유로파 갈란테의 앨범 그리고 막스 리히터의 독특한 편곡으로 연주되는 앨범도 들을 만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애청하고 있는 앨범은 ‘자크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의 ‘Vivaldi, The Four Seasons (Telarc)이다. 자크 루시에와 그의 트리오는 바흐 스페셜리스트로서 바흐의 작품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지평은 바흐를 넘는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헨델과 비발디의 앨범에서도 타 연주자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과 예술성을 과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슈만과 쇼팽을 연주하고 여기에 인상주의의 작곡가인 라벨과 드뷔시, 사티 앨범까지 연이어 발표했다. 그러므로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 아티스트를 얘기할 때 이들을 빼놓고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재즈와 클래식은 매우 이질적인 장르처럼 보이지만 사실 재즈의 탄생 초기 클래식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래서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이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메인 스트림에 가려져 있기는 하나 오래전부터 많은 연주자들이 클래식을 재즈로 해석하여 연주해 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할 때에는 특히 원곡의 분위기와 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재즈를 재즈답게 만드는 리듬, 즉 ‘swing’을 어떻게 구현하는지가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크 루시에는 가히 비교할 수 없는 매력과 능력을 가진 연주자임에 틀림없다. 앨범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스윙감이 ‘Vivaldi, The Four Seasons’이 재즈 앨범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일깨워 준다.

 

음반을 데크에 올려놓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피아노 소리보다는 먼저 뱅샹 샤르보니에의 베이스와 앙드레 아르피노의 드러밍 소리에 귀를 쫑긋하게 된다. 곧이어 터지듯 들려오는 자크 루시에의 경쾌한 피아노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이 음악이 그토록 식상하게 들어왔던 비발디의 사계라니! 오 세상에나!!!

정통 클래식 연주에서는 맨 먼저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봄바람을 연상시키는 가벼운 현들의 울림이 귀에 들어오겠지만 이 앨범에서는 마치 봄에 움 트는 생명들의 경쾌한 움직임이 터져 나오는 듯하다. 전체 곡의 흐름 중에서도 특히 이 봄 부분이 가장 인상 깊은데 이는 오로지 자크 루시에의 창조적인 편곡과 연주 능력 때문이다. 비발디의 사계가 가지고 있는 익숙함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신선하게 다가온다.

봄에서는 생명력이 가득 찬 1번 트랙 알레그로, 여름에서는 강렬한 폭풍우 소리가 들리는 6번 트랙 프레스토, 가을에서는 늦가을 느낌 그 자체인 8번 트랙 아다지오 몰토, 겨울에서는 눈 덮인 쓸쓸함을 느끼게 해 주는 11번 트랙 라르고가 특히나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여기에 각 계절에 붙어있는 소네트와 함께 즐긴다면 여태까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들어온 사계에 대한 진부한 선입견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다.

한창 추위에 떨어야 하는 계절의 한복판임에도 연일 봄기운이다. 성급하지만 마음은 이미 봄이다. 자크 루시에의 스윙 넘치는 사계를 들으니 더욱 그렇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6) – 자크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의 ‘Vivaldi, The Four Seasons (Tela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