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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5) – 재즈의 시대

“오히려 유럽으로 수입된 흑인음악과 춤이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음악은 유럽의 문화 인구 전체를 정말 열광이라 할 정도로 완전히 끌어들였어요. 흑인들이 자신들의 물신들 주위를 돌며 춤을 출 때와 같은 몸짓의 끊임없는 반복이나 재즈 밴드들의 절분 된 리듬의 계속되는 소리가 아무런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수백만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단히 광범위한 현상이에요. (중략) 나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더 이상 재즈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으며 앞으로 그는 자신의 핏속에 있는 흑인의 색소를 잡아내기 위해 거울 안에 있는 자신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 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 (안토니오 그람시, 민음사 168p)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사람이자 파시즘에 대항한 영혼의 승리자이며 위험한 지식이라고도 일컫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1928년 2월 20일 밀라노의 감옥에서 자신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 주었던 처형 타니아에게 보낸 편지 내용 일부다.

1891년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서 태어난 그람시는 어린 시절 사고로 등이 굽는 장애를 얻었고 성년이 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병치레를 겪으며 결국 토리노 대학을 중퇴하게 된다. 그럼에도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하고 1926년 1월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었으나 그해 11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체포되어 20년의 형을 받고 수감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그람시에게 내려진 판결은 ‘20년 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형기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1937년 생애를 마치게 되지만 감옥에서 보낸 10년 동안 노트 30여권에 이르는 많은 글을 남긴다. 그 중 <옥중 수고>와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그가 남긴 최고의 지적 결과물이다.

<옥중 수고>에는 마르크스 사상의 계보를 잇는 그람시답게 ‘헤게모니’와 ‘진지전’과 같은 정치적 개념과 철학, 역사, 문화에 걸친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반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과 감옥 내에서의 개인적인 고통, 가족들에 대한 염려와 불안 등이 주 내용이다. 그람시의 개인적 면모를 알 수 있는 저작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문학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아름답고 명료한 문체로도 유명하다.

그람시는 편지에서 행상인이 파는 중국풍의 장신구를 이단시하여 유럽이 아시아화(化)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한 복음주의자를 조롱한다. 아시아화(불교에 의한 우상숭배 신앙)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재즈(커피를 포함하여)의 급속한 전파로 인한 흑인화(최소한 혼혈아 단계)는 간과하고 있다며 놀리는 것이다. 커피는 이미 대중화 된지 오래되어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으나 재즈에 관한 언급은 의외다. 더욱이 그람시는 ‘춤을 출 때와 같은 몸짓의 끊임없는 반복’이나 ‘절분 된 리듬의 계속되는 소리’등으로 재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재즈의 ‘블루스’적인 요소와 ‘스윙’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평생 자본주의를 경계하여 그 반대편에 서 있었던 그람시에게 조차 재즈와 커피는 우려의 대상이 아닌 민중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가치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그람시가 들었던 재즈는 과연 어떤 형태였을까?

1900년대 초에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에서 탄생한 재즈는 1920년 중반부터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 ‘재즈의 시대’라고도 일컫는 시카고 시대를 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콧 피츠제랄드(F. Scott Fitzgerald)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시대다. 그람시가 감옥에서 편지를 쓴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놀랍게도 재즈가 본토인 미국과 유럽의 변방 이탈리아에서 거의 동시에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재즈 아티스트는 단연코 루이 암스트롱이다. 그는 재즈의 대중화 작업에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솔로 연주와 보컬의 스타일을 정형화 시킨 인물이다. 재즈의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쓰지 않고는 단 한 줄도 이어나갈 수 없다. 한마디로 그의 생애가 바로 재즈의 역사 그 자체다.

197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발표한 수많은 연주와 앨범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좋다. 그 중에서도 나는 1920년대 후반의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수감되어 편지를 쓰던 바로 그 시기다. 비록 소수의 애호가들만 즐기는 초기 재즈지만 루이 암스트롱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던 풋풋했던 시절의 연주답다. 블루스의 깊은 감성과 스윙의 경쾌함을 모두 품고 있다. 가장 순수한 모습의 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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