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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곳에 사람과 시간이 묻어 있었다-부천 인문路드의 발견

어느샌가 길을 걷다 보면 그곳은 그저 지나가는 곳, 또는 ‘저기가 예전엔 얼만데 요샌 얼마래’ 라고 무심히 툭 옆 사람과 얘기를 나누곤 했다.

 

나에게 길이란 내가 일을 보러 밟고 다니는 땅덩어리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어릴 적 라디오를 틀면 책 광고가 많이 나왔었다. 요새도 그런 지는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즈음에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들’ 이나 ‘천년의 사랑’ 을 쓴 양귀자의 소설이 중국무협소설 영웅문과 함께 그 당시 귀가 아프도록 반복되던 것들이었다.

 

나는 그 선전이 요란하기 전에 ‘원미동 사람들’ 이란 책과 ‘지구를 칠하는 페인트공’ 을 읽었었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바로 그 유명한 소설가가 썼던 배경에서 내가 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그것은 인문 로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주부이면서 지역신문에 만화를 그리는 나에게 인문 로드를 계획한 ‘카툰 캠퍼스’는 cartoon(만화)을 알려주는 학교인가? 라는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만 한 곳 이였는데 그곳에서 ‘부천 인문路드의 발견’이란 프로그램을 한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왜? 로드에서 ‘로’는 한자인가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길을 뜻하는’ road’ 나 ‘路’ 는 같은 발음에 뜻을 가지고 있었고 ‘겪는 일’ 이란 뜻 이 포함되어있는 路를 쓰신 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무작정 걸을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먼저 시작한 수업은 길이 가진 의미를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옛 지도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는 사진도 신기했다.

그리고 우선 책을 다시 읽어야만 했다. 하지만, 바쁜 시간을 배려해서인지 포인트가 될 만한 소설의 구간을 나눠서 넓게 읽는 것이 아닌, 짧지만 깊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에서 ‘양귀자’ 라는 소설가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겐 ‘양귀자’란 배은망덕(?)한 작가였고, 부천을 지나치게 가난하게 표현한 불편한 사람이었다.

 

“겨울바람이 세찼던 1981년 12월 22일,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첫 장면처럼 바리바리 짐을 챙겨 그곳으로 옮겨 왔어요. 그 이후 1990년 여름, 서울로 다시 이사를 오기까지 10년 가까이 원미동은 내게 작가로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주었고, 비로소 소설가의 길로 인도해 주었습니다”-양귀자

 

인문 로드를 하면서 그 당시 소설을 썼던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거나 길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서 그 장소와 소설의 대목들을 짚어주셨는데, 피난처라고만 생각했던 그곳 부천에서 작가는 사람들을 만났고 따뜻함을 찾았고 또 다른 길을 연결해준 곳 이었다 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인터뷰를 통해서 거듭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소설에서 표현된 그곳이 내가 살고 생활하고 있는 부천의 어느 곳에 지금도 여전히 있다는 것이 반갑고 참 좋았다. 과연 ‘발견’ 이었다.

[무궁화연립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옛 건물이 아직도 그곳엔 있다.]

먼저 걷기 전에 그곳의 의미를 예열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양귀자를 시작으로 부천의 길 그곳을 거치거나 의미를 둔 작가들의 흔적을 공부했다. 작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 부천에 의미를 뒀던 노래로도 유명한 ‘향수’의 시인

정지용과 주로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뿌리를 기억했던 부천의 옛 이름인 수주(樹州)를 호로 사용했던 ‘논개’의 변영로 시인의 시를 직접 낭송하거나 기록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길을 걷게 되었다.

그곳은 그냥 지나다니던 그 길이 아니었다. 부천만화진흥원의 수업을 듣기 위해 수없이 갔었던 원미 스튜디오 맞은편 분수대는 원미동 사람들의 주인공들을 기념하는 곳이었으며, 원미동 사람들의 주인공이 살던 대화 아파트의 그 길은 놀랍게도 많이 변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후미진 골목이 이야기로 생기가 돌고 보존된 근사한 장소로 변하는 마술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곳이었기에 숨죽이며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 마음이 뜨끈해지는 기쁨이 있었다.

친근한 시들이 군데군데 놓인 토끼굴을 지나 원미산을 넘어. 양귀자의 따뜻함을 뒤로하고 정지용의 흔적을 찾았다. 고즈넉한 성당과 소사역을 지나 그가 머물렀던 (비록 작고 낡은 현판만이 남은) 장소에서 뭔가 있을까 이야기를 또 듣고 더듬었다.

세종병원 앞의 작은 카페에서 변영로의 시들과 카툰이 어우러진 액자 앞에서 들떴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마무리로 모여서 아쉬운 점과 좀 더 이야기를 풍성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고 참여하는 데에 기쁨마저 생겼다.

 

오늘날 내가 사는 곳은 더는 사람이 사는 장소라기보다는 숫자로 계산되거나 또 그것을 근거로 차별의 상징이 된다.

그 옛날 서울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서 들어와 위안을 받았던 양귀자처럼, 무심히 지나는 그곳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를 나에게 길은 흔적과 시간이 있었던 곳이었노라고 말을 걸었다.

사람 사는 냄새는 지우고 차가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어버리곤 깔끔하고 살기 좋은 곳이니 돈으로 얼마로 받아야 할까 하는 세상에서 담벼락처럼 높이 막힌 빌딩 사이로 우리의 길은 숨겨지고 그늘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냄새를 기억하고 이야기가 있는 그 길들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냄새를 지우고 흔적을 지우고 그럴듯한 인공으로 칠하고 금액으로만 계산하는데 골몰하는 현재에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지켜줘야 할 사람 냄새를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부천 인문路드의 진정한 발견’ 이 아닐까 생각했다.

-끝-

-부천문화재단에 올린 글을 사진을 더 보태서 다시 올렸습니다~ *^^*

저에겐 개인적으로 2018년에 제일 뿌듯한 발견이었어요.

 

 

박 현숙내가 걷는 곳에 사람과 시간이 묻어 있었다-부천 인문路드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