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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즐겁게 걸었던 어슬렁 만저봐路드 (성북동, 청계천, 강릉, 부천)

즐겁게 걸었던 어슬렁 만저봐路드 (성북동, 청계천, 강릉, 부천)

시민만화기자단 수업을 받고 매주 수요일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1년은 로드맵도 정하지 못한 채 어설프게 지나가버렸습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마음만 앞섰지 눈에 확 잡히는 게 없어 무척 마음 졸였습니다. 그래도 참 열심히 모였지요. 웃고 떠들고 얼렁뚱땅 시간만 죽인 것 같았는데도 뭔가 틀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카툰 작가들을 초대해 작품을 전시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 만남들을 모아 ‘만저봐’ 창간호를 만들게 되고부터 한 달에 한 권씩 ‘만저봐’가 탄생했습니다. 열한권의 ‘만저봐’를 쭉 늘어놓고 바라봅니다. 참 감개무량합니다. 매 호마다 주제를 정해 그 주제에 맞게 열심히 집필하신 만저봐 기자님들의 열정적인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특히 이원영 이사님이 기획하신 ‘만저봐路드’ ‘어슬렁 성북동’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다’ 하~ 역시 기획의 천재셨습니다.

광화문에서 만나 경복궁, 청와대를 지나 북악산 동쪽 고갯마루 한양도성을 넘어 심우장, 북정마을, 수연산방, 길상사를 둘러보고 다시 안국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지요. 우리는 그 길에서 민비의 죽음과 조선 말기의 슬픈 역사를 바라보고 만해 한용운과 상허 이태준, 백석과 자야, 시인 정지용, 김광섭, 소설가 김유정 박태원 등 우리나라 근 현대사에서 불꽃처럼 살다 간 예술인들과 만났습니다. 어슬렁어슬렁, 알맞게 기분 좋은 정말 멋진 로드였습니다. 성북동의 성공에 힘입어 이사님은 이번엔 청계천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어슬렁 청계천은 왕십리에서 출발해 청계천을 통해 중명전까지 가는 코스입니다. 상왕십리에서 만나 청계천 박물관과 동대문 역사공원, 광장시장, 광통교, 배재학당에 중명전까지….

그날따라 날씨가 우리를 너무 반겨주었습니다. 햇빛 쨍쨍, 그늘도 없는 청계천변을 현기증이 날 만큼 많이 걸었지요. 청계천 박물관에서 50년대 청계천의 역사와 복원까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의 청계천 이야기까지요. 더위에 지쳐 있을 땐 뭐니 뭐니 해도 먹는 게 최고지요. 광장시장에 들러 육회와 낙지 탕탕이로 맛난 점심을 먹었습니다. 먹고 나니 힘이 나 광화문을 지나 덕수궁 뒤편에 있는 중명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어슬렁 청계천은 5-60년대 대한민국이 헤쳐 나온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세 번째 路드는 카페인 강릉입니다. 강릉은 카페 테라로사와 함께 커피로 유명해졌지요. 만저봐 강릉 지부장이신 카투니스트 이현정 작가가 계시는 곳이죠. 현정 작가가 보내오는 그림과 카페이야기에 푹 빠져 강릉 갈 날만 고대했습니다. 현정 작가의 카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서 전해지는 커피 향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아련한 카페들을 다 가보고 싶었습니다.

역시 현정작가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카페 <게락>에서 이제까지 맛보지 못했던 커피 최고의 풍미를 느꼈습니다. 밤에 잠을 못 자든 말든, 속이 쓰려 아프든 말든 종류별로 다 마셔봤습니다. 그리고 카페인에 취해 명주동 골목투어를 하고 청탑 다방과 봉봉 방앗간을 기분 좋게 둘러보았습니다. 오후엔 카페 <웨이브라운지>에서 경성현 선생님의 커피강의를 들으며 커피를 또 마셨지요. 밤새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거지만 그 시간만큼은 행복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린 원주 뮤지엄 산은 또 얼마나 신비롭고 아늑하던지요. 1박 2일이 꿈처럼 지나가버렸습니다.

인문 로드의 대미는 바로 ‘어슬렁 부천’입니다. 이 길을 위해 성북동과 청계천, 강릉을 다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고 보니 부천도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답게 구석구석 다녀볼 길이 많았습니다. 수주 변영로 시인과 양귀자 소설가, 정지용 시인, 펄벅, 아동문학가 목일신 등등….

이런 알짜들을 이원영 이사님과 카툰 식구들이 놓칠 리 없지요. 그분들이 살았던 곳과 걸었던 길을 몇 번이고 답사하며 로드맵과 매핑을 제작했습니다. 이제 그 일부 길을 따라가 봅니다. 오전 10시, 부천시청(현 원미구청)을 출발해 8년 여 동안 원미동에 거주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양귀자 소설가의 ‘원미동 사람들’ 배경지에 도착했습니다. 소설의 주 무대였던 원미동 23통의 옛 전경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아귀다툼을 하면서도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던 주민들의 따뜻한 정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듯 했습니다. 소설 속 밤무대 가수 은자가 불렀다는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을 들으면서 원미산 둘레길을 지나 정지용 시인이 3년 동안 살았던 소사동 집터까지 총 3구간을 걸었습니다. 걷는 중간중간 이벤트도 있었지요. 양귀자, 정지용의 시와 소설을 카툰으로 보여주고 시민이 직접 참여해 시와 소설 중 일부를 목소리로 담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음악과 이야기에 취해 지루할 틈이 없었지요.

2018년은 만저봐路드가 있어 정말 즐거웠던 한 해였습니다. 내년엔 또 다른 볼거리 더 풍성한 프로젝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기대되는 새해입니다.

한 성희2018년 즐겁게 걸었던 어슬렁 만저봐路드 (성북동, 청계천, 강릉, 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