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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연애 제 7화, 여성의 매력은 외모가 아니다! 고종과 민비, 그리고 엄상궁의 사랑이야기.

고종은 커피를 좋아해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

커피 애호가로 유명한 고종황제이지만 그에 얽힌 많은 설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조선 최초로 커피를 마신 인물이라거나 아관파천 때 처음 커피를 접했다는 설은 잘못된 정보라네요~


-커피(coffee)-
고종 황제가 마신 커피를 흔히 노서아(露西亞) 가비(加比)라고 부르는데, 노서아(露西亞)는 러시아의
한자 음역입니다. ‘가비(加比)’는 커피(Coffee)의 영어 발음을 따서 부른 고어(古語)로 조선 시대에는
‘가비차’ 또는 ‘양탕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명성황후의 사진이 무엇이냐고 의견이 분분했으나…(저는 어릴적에 오른쪽의 사진이라고 배웠습니다. 순한 인상때문에 비참한 죽음에 더 가슴이 아팠던~~ ) 

 하지만, 독일인이 찍은 사진이 나중에 발견되고 흥선대원군과 고종과 순종의 사진이 찍힌 배경과 똑같은 사진속의 여인이…
 그렇습니다. 정말로 미간을 찌푸린 저 예쁘지만 인상 드러븐 분이 명성황후라 불린’민비’이신 것입니다. 나중에 드러난 후궁들에게 한 행동들만 봐도 이 사진이 딱 맞는듯 합니다~^^;

하지만, 뛰는 민비 위에 날아다녔던 것은 그 당시에도 키작고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평가받았던 엄상궁이었습니다.  나중에 ‘순헌황귀비’ 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러시아 공관- 
1896년 2월 11일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데(아관파천)


고종을 러시아공관으로 피신시키는데 엄상궁의 활약이 있었다고 합니다. 엄상궁은 정말 여걸이었습니다. 배짱과 지략이 있어보였지만 장기적으론 별로 좋은 결과를 보여주진 못 합니다. 

                                                                                                                         
[아관파천은 고종이 일본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착각했겠지만 러시아에게 조선을 갖다 바친 격이었다. 고종은 일본과 러시아 어느 한편을 의지하겠다는 생각을 버렸어야 했다. 아관파천은 당시 조선의 외교에 대한 무지와 무능을 단적으로 보여주었고 고종은 왕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출처: http://oldconan.tistory.com/36494 [올드코난 (Old Conan) 세상사는 이야기]
엄마 엄상궁을 많이 닮은 영친왕 (이은) 

이토 히로부미에 의하여 황태자 은(垠)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갔습니다.조선황태자를 제국주의화 시킬 목적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키고 일본인 마사코와 정략결혼을 추진해 내선일체를 정당화했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불행한 역사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성교육이 전무하던 시절 여성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하며 교육의 새 지평을 연 것이다. 계몽적 입장에서 여성이 깨어야 사회의 근본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그녀는 1906년 51세 되던 해 당시 자주 만나던 정경부인 이정숙(숙대 초대교장)을 비롯한 몇몇 고관 부인들과 여학교 창립 의견 나누며 1905년 양정의숙(현 양정고등학교), 1906년 명신여학교(현 숙명여자대학교)와 진명여학교(현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차례로 세운다.- 소피의 블로그 출처.

고종은 심약했고, 아마도 자신을 붙잡아줄 여인들에게 의지했나봅니다. 그래서 조선의 미래는 더 암울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인들의 관심은 고종의 관심과는 달리, 자신들의 후사에만 집중한 것 같았거든요. 그나마 엄상궁은 민비와 달리 나라일에도 관심은 있었나봐요. 여자의 매력은 외모만이 아니라는 걸 다시한번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인 영친왕을 일본에 뺏기고 그 스트레스를 못이겨 58세에 죽고 말았으니 좀더 나라를 위해 멀리 바라봤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도 그렇게 대한민국의 왕이 정치를 주도하는 입헌군주제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박 현숙그들의 연애 제 7화, 여성의 매력은 외모가 아니다! 고종과 민비, 그리고 엄상궁의 사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