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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1) – Ojos Negros

언젠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커피가 주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어쩌면 직업적으로 커피를 다루는 나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커피를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본 물음일 수도 있다.

나는 ‘커피란 쓰고 검은 어떤 것’이라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커피 맛을 발현하는 최근 추세가 산미를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방식이라서 ‘쓰다’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커피는 원래 쓴 맛이 본연의 맛이다.

이에 비해 커피의 색이 검은색이라는 말에는 별 이의가 없다. 로스팅된 원두가 대체로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건 커피 생산지의 확대 과정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한 식민지 착취라는 검은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소개하는 앨범 <Ojos Negros> (Dino Saluzzi & Anja Lechner, ECM)는 커피와 매우 잘 어울리는 앨범이다. 살루치와 레흐너가 들려주는 우수에 젖은 탱고의 리듬이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거니와 타이틀인 Ojos Negros (검은 눈동자)가 주는 어두운 이미지 또한 한 몫을 한다.

2007년에 발매된 앨범 Ojos Negros는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연주자 디노 살루치(Dino Saluzzi)와 독일의 첼리스트 안야 레흐너(Anja Lechner)의 듀오 앨범이다. 디노 살루치가 연주하는 반도네온이야말로 탱고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악기이므로 당연히 탱고를 중심으로 한 음악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앨범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리듬의 탱고 음악이 아니다.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상을 위한 탱고라고나 할까? 탱고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클래식의 영역에까지도 도달하고 있는 아름다운 앨범이다.

디노 살루치는 피아졸라의 뒤를 잇는 반도네온 연주자다.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 능력도 뛰어난 그는 고국이자 탱고의 발상지인 아르헨티나를 벗어나 유럽으로 진출한 이후 더욱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음악 인생에서 획기적인 터닝 포인트가 된 지점은 무엇보다도 레이블 ECM의 오너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어(Manfred Eicher)를 만난 일이다.

디노 살루치의 음악에 영감을 받은 만프레드 아이어의 제안으로 1982년 ECM 데뷔작이 발매되었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ECM의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한 음반들을 세상에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앨범의 또 다른 주인공 첼리스트 안야 레흐너 또한 클래식계에서 활약을 하면서도 탱고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온 연주자다. 이 둘의 만남은 안야 레흐너가 뮌헨의 어느 극장에서 살루치의 연주를 듣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둘은 서로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고 공동으로 작업을 해 왔으며 앨범 Ojos Negros는 두 연주자의 만남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이다.

앨범의 타이틀 곡 Ojos Negros는 Black Eyes, 즉 스페인어로 ‘검은 눈동자’라는 뜻이다. 이 곡만이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의 탱고 작곡가 비센테 그레코(Vincente Greco)의 곡이며 나머지는 모두 디노 살루치의 곡이다. 물론 타이틀곡이 이 앨범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해 주고 있기는 하나 다른 트랙들 역시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곡들이다. 전체적으로는 탱고를 근간으로 한 음악들이지만 그렇다고 탱고에만 머물러 있는 곡들은 아니다. 클래식과 탱고, 거기에 재즈의 즉흥성까지 가미된, 굳이 말하자면 레이블 ECM이 추구하는 음악에 가장 근접하는 앨범이라고나 할까?

첫 트랙 Tango a mi padre는 살루치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반도네온과 첼로의 인터플레이가 마치 유년의 살루치와 아버지가 대화하는 듯 애틋하다. 내가 알고 있는 반도네온과 첼로의 협연 중에 이만큼 유기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연주도 찾기 힘들다. Esquina, Duetto, Serenata 역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곡들이다. 들을 때마다 뭔가 설명하지 못 할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느낀다. 눈물이 나도록 따뜻하다.

타이틀곡인 5번 트랙 Ojos Negros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검은 눈동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앨범 전체에는 검은 색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진지함과 따뜻함, 듣는 이로 하여금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분위기가 관통하고 있다. 탱고가 과거의 리듬을 간직한 음악이이 지나간 시간을 조용히 발굴하여 현실에서 충분히 재현하기 때문이다. 살루치와 레흐너의 반도네온과 첼로가 이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장르를 망라하고 내가 늘 추천하는 음반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무엇이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당연히 음악이든 커피든 밝고 유쾌한 것들이 어울리겠지만 이럴 때 오히려 반도네온과 첼로가 만들어 내는, 우수가 깊게 담긴 탱고 음악을 들어보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여기에 깊고 진하게 내려진 커피 한 잔을 더해 마셔보는 것은 금상첨화다. 연말을 즐기는, 조금은 특별한 방법이 될 것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1) – Ojos Negr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