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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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영 편지

‘대한민국의 아들이라면 누구나 다 가는 군대~’ 라고 생각했다.

입영하는 날, 부대 강당에서 연병장으로 나타나는 순간까지도

십분만에 어떻게 된건지 군인처럼 걷고, 경례하고, 소리치는 씩씩한 모습에

기특하기만 했다.

그러나 잠시후 생활관 건물 뒤로 눈도 한번 못마주치고

앞만보며 군인처럼 걸으며 아들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나의 아들이 전쟁터에 나간 것마냥 어찌나 슬프고 안타깝던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날부터 매일 매 순간 아들생각을 했다.

눈물이 절로 났다.

생각속에서 ‘아..들..아~’에 ‘아’자만 불러도 철철 눈물이 고이고 줄줄 눈물이 났다.

 

크리스찬인 나는 매일 기도를 했다.

일단은 0주차인 일주일만에 옷상자가 와야지 사람이 오면 안된다는 주변 조언에 따라

아들이 잘 검사받고 잘 적응하도록 기도했다.

0주차가 끝나는 날 문자가 왔다.

5주후에 갈 자대가 정해졌다는 문자였다.

‘아니 벌써~ 정해졌구나’ 그리고 옷이 오겠구나.

일단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인터넷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좋은 소식에

더캠프 앱을 통하여 편지를 썼다.

 

폰 자판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눈물이 강물처럼 흘렀다.

‘보고싶구나,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잘 있니?’

마음에서 쓴 편지는 그 말만 100번 쓰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씩씩한 아들을 보낸 씩씩한 엄마로서 편지를 썼다.

 

‘잘하리라 믿는다 우리 아들~ 사랑한다.

다치지말고 아프지말고 훈련 잘 받고

14일 수료식날 만나자꾸나‘

 

 

 

 

 

드디어 옷상자가 왔다.

옷상자 안에 아들의 손편지가 있었다.

초등학교시절 어버이날 학교수업시간에 쓴 손편지나 카드이후

처음받는 아들의 손편지가 너무나 소중했다.

 

“제가 김치를 먹게될 줄 몰랐습니다…”라는 내용은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었다.

아들은 김치를 안먹는다. 김치냄새도 싫어한다.

막 무친 겉저리 말고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던 아들이

김치를 먹는단다.

“14일 수료식에 안오셔도 됩니다. 만약 오신다면 맛집은 알아두었습니다.”

라는 내용에 온 가족은 빵 터졌다.

적당한 유머와 진심이 담겨있었다.

 

 

입영한 아들의 손편지 한 장이 지난 며칠 간 꽉 막혔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나와 남편은 소중한 아들의 손편지를 읽고 읽고 또 읽고 하다보니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눈은 몹시 피곤했지만 마음은 보약을 먹은듯 쌩쌩했다.

 

온 가족은 아들의 손편지에 응답으로 각자 손편지를 썼다.

그리고 필요한 소소한 물건 몇 가지를 챙겨서 택배를 보내면서

택배상자 안에 손편지를 넣었다.

 

나는 남편과 딸이 그렇게 편지를 잘 쓰는지 몰랐다.

진심이 물씬 담긴 편지내용에 또 눈물이 났다.

아들이 손편지에 담긴 진심을 읽고 힘이 나기를 바랬다.

 

 

 

아들에게 손편지가 또 왔다.

‘훈련병’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 써있었다.

얼마나 고되고 서러운지를 알려주는 말이었다.

사회가 궁금하다고 써있었다.

일상적이었던 모든 것이 소중하고 궁금해진 것이다.

 

하늘에 별이 쏟아진다고, 너무나 아름답다고, 함께 그 별들을 보자고 써있었다.

별들이 위로와 힘을 주었구나 싶었다.

 

편지 첫 줄마다 있는 “저는 잘 있습니다.”라는 말은

잘 있다는데 왜그리 마음이 절절이 아프고 눈물을 부르는걸까?

 

입영한 아들과 주고받은 손편지, 인터넷편지 5주차를 보내고

훈련병수료식을 하였다.

입영한 아들과 함께 온가족은 손편지 속에 가득담긴 ‘마음편지’를 주고받은만큼

촉촉하고 따스한 눈길과 손길로 서로를 안았다.

 

이제부터 진짜 사나이가 되려고 내일부터는 자대로 갈 아들이다.

이 뜨거운 사랑과 손편지가 2년을 채우고도 남을 듯 하다.

 

입영하는 날, 생활관으로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순간 나라가 싫었다.

잘 키워 놓은 내 아들을 갑자기 데려가다니 원망스러웠다.

오늘 훈련병 수료식, 참 조석으로 변하는게 사람맘이라지만 나는 나라에 감사했다.

아들을 ‘진짜 사나이’로 만들어 주고, 가족들의 숨은 정을 곁으로 들어내주고

온 가족이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욱더 돈독해지는 기회를 주었으니 말이다.

부디 남은 기간도 더욱 그러하자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엄마인 나는 기도한다.

‘부디 다치지말고, 아프지말고, 좋은 사람들과 잘 지내게 해주세요!

건강하여 군인생활 잘 하고, 남은 인생에 힘이 되는 소중한 2년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수료식날 나는 평생의 소중한 보물이 하나 생겼다.

훈련기간 중 1회 PX를 이용할 수 있었던 아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산

‘한정판 카네이션브롯치’ 선물을 손수 달아주었다.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한정판 카네이션 브롯치’에 담겨져 있었다.

 

2018년  11월  14일

대한민국에 씩씩한 군인엄마가 된 오드리 기자

오드리

만화, 저널, 시민, 공익, 진실, 전통시장, 청년, 변화, 노인, 장애인, 커피, 가을, 비, 사람, 그리고 부천~ 을 좋아하는 평범한 부천시민 noahne@cartoonfello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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