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희의 작가산책] 시인 허영자의 ‘가슴엔 듯 눈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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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靑紅)실
따라서 가면
가슴 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世事 煩惱)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내올 듯

머언
극락 정토(極樂淨土) 가는 길도
보일 상 싶다.

– 허영자 시 ‘자수’ 전문

70이 훨씬 넘으셨지만 선생님은 그의 시만큼이나 정갈하고 아름다우셨습니다. 말씀도 얼마나 단아하시 던지요.
“문학은 그 사람의 인격이고 인품이며, 쓰는 사람의 인격이고 인품 그대로 드러내는 그 무엇이라”라고 하는 선생님은 그야말로 문학소녀 그대로였습니다.
1938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숙명여대에서 김남조 시인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성신여자대학교 국문과교수를 지내셨지요. 신달자 시인과는 선후배 지간이라 하셨습니다. 같은 대학에서 김남조 시인의 가르침을 받고 똑같이 박목월 선생님의 추천으로 등단하셨다고요.
‘친전’,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들판을 걸어가면’, ‘조용한 슬픔’ 등 많은 시집을 내셨지요.
“시 앞에서 나의 재능은 회의하는 어린 나무이고, 시 앞에서 만은 한 없이 겸손하며, 획 한 점을 아껴가며 엄격하게 시를 쓰는 일만이 제가 할 일이다.”라고 하시던, 한없이 겸손하신 선생님을 뵈며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산책] 시인 허영자의 ‘가슴엔 듯 눈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