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향숙의 마음풍경] 담장을 넘다

2 comments

그녀는 내가 알고 지내는 주변 사람들과 달랐다. 첫 대면이 특히 그랬다. 한번이라도 웃어본 적이 있을까싶게 굳은 얼굴로 나를 샅샅이 훑고는 인사할 짬도 없이 시선을 거두었다. 길게 붙인 속눈썹에 까무잡잡한 피부, 거기다 새빨갛게 바른 입술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말할 때마다 내는 콧소리는 거래처 사장님이라는 남자가 오면 더 심해졌다.

요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병실은 비좁기도 하고 차 소리가 종일 왕왕거렸다. 이곳에서 적응하느라 부대끼느니 차라리 병원을 옮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지나친 편견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낯선 분위기에 머무를 작정을 하고서도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첫 밤을 맞았다.

두 사람에게서 피어나는 묘한 분위기에 나는 불청객이다. 여자가 까르르 웃기도 하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나는 교통사고로 부딪힌 머리의 통증보다 그녀와 병실에서 밤을 새우고 가는 남자의 관계를 가늠하느라 머릿속이 더 욱신댔다.

다음날, 통성명도 없이 그녀가 다가왔다. 날선 눈초리가 풀려있다. 주사기를 꽂고 누워있는 내 곁에서 말없이 시중을 들었다. 살짝 짓는 미소와 에두르지 않은 직설적인 표현법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문상을 가다 사고가 났어요. 차요? 제 차를 거래처 사장님이 운전했어요. 처음 며칠은 허리가 아파 다니지도 못했다니까요. 사고가 났다는 걸 깜빡하고 집에서 견디다 뒤늦게 병원에 왔어요. 제가 그렇게 둔해요.

보험사에는 이렇게 말했지만 실은 같이 사는 사람이에요. 오빠와는 거래처 사장님으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어요. 나이도 열두 살이나 차이 나거든요.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지요. 전 남편 앞으로 나오는 연금이 있어 혼인신고를 못했어요. 살림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아요.

남편이 하루아침에 변을 당해 곁에서 사라져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슬프고 암담했어요.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꿈에서 깨기를 바랐어요. 수면제를 매일 먹어가면서요.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뼈만 남았어요. 보세요, 이게 옛날 제 모습이에요. 지금하고는 완전 다르지요. 키가 큰 이 사람이 제 남편이구요. 생전 큰소리 한 번 안내던 사람이에요.

귀신같은 몰골을 하고 뭐든 배우러 다녔어요. 아이들하고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땐 제 몸에 종일 발전기를 켜놓은 것처럼 종종거리며 살았어요. 그렇게 따놓은 자격증이 열댓 개는 될거에요. 덕분에 별의별 일을 다 해봤어요. 이제 먹고 살 걱정은 없는데 습관이 몸에 배었나봐요. 요즘은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하고 있어요.

오빠는 오래전에 이혼했어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어찌나 유머스러운지 입만 열면 웃음이 난다니까요. 또 얼마나 점잖다구요, 무엇보다 저를 아껴줘요. 동안이라 저랑 별 차이도 안나 보이지요? 오빠는 잔소리 하는 것을 싫어하고 저는 큰소리 내는 것이 무서워요. 서로 싫어하는 것은 안하고 살려고요.

우리는 아들만 넷이에요. 여느 부부처럼 살지만 살림을 합치지는 않았어요. 상대방 아들들에게 마음 써주는 것으로 대신해요. 요즘 들어 오빠가 자꾸 합치자고 하네요. 갈수록 혼자 있기가 싫은가 봐요. 나도 그러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나만의 시간과 공간도 필요하잖아요.

떠난 남편을 어떻게 잊겠어요. 행복한데도 그 자리는 항상 비어있어요. 아들 둘을 낳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요. 생전에 함께 했던 흔적들을 지우지 못하고 이렇게 들여다보곤 해요.

여자는 결혼하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박혀있는 나로서는 딴 세상 얘기 같다. 기껏 항변한다는 것이 엄마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지만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집 귀신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비밀을 털어놓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했다. 그것이 하소연이었는지, 자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비밀을 나눈 동지처럼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병실은 더 이상 좁고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이라도 온 듯 그녀 곁에서 모처럼 느긋한 시간을 한껏 즐겼다.

2016. 5

 

 

 

 

kdongbek

나는 동백입니다.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지요.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것들에 보내는 고백입니다. 누구든 매일이 꽃피는 날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강 향숙[강향숙의 마음풍경] 담장을 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