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5) – ‘Things'(Paolo Fresu & Uri Caine, 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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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른바 ‘무의지적 기억’의 특별함을 말한다. 주인공인 화자에게 마들렌은 단순히 버터와 설탕, 밀가루로 반죽되어 구워진 달콤한 과자로서만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다.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본 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즉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과거의 어떤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들렌은 일정한 물성을 지닌 단순한 사물로서가 아니라 화자의 의지 외부에 있었던(혹은 잊고 있었던) 어떤 일들을 회상시켜 주기 위한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간혹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나 늘 그자리을 지키고 있던 사물이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프루스트에게 따뜻한 차에 적신 마들렌이 그렇듯이 개인적으로는 특별할 것 없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아메리카노는 가장 흔하게 마시는 커피다. 아마도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 메뉴일 것이다. 아메리카노의 정확한 명칭은 ‘카페 아메리카노’(Caffe Americano)다. 즉, 굳이 번역하자면 ‘미국인이 마시는 커피’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왜 하필 아메리카노(Americno)일까?

여기에는 커피에 관한 작은 역사가 하나 숨어 있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차 값의 상승으로 대체재인 커피 소비가 급증했고 이전처럼 유럽스타일로 마시던 진한 커피 대신 홍차와 비슷한 농도의 연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부터는 에스프레소 한잔에 적당량의 물을 섞어 마시는 지금의 아메리카노가 정식으로 탄생했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볼 때 다분히 미국인을 비하(?)하는 의미로도 비쳐질 수 있다.

아메리카노의 베이스로 사용되는 커피는 에스프레소다. 이탈리아어 ‘Espresso’는 영어의 Express와 어원을 같이 한다. 즉 빨리 추출한다는 의미이다. 에스프레소의 정식 메뉴 명칭인 카페 에스프레소(Caffe espresso)는 말 그대로 빠르게 추출한 진한 커피를 의미한다.

한국에 아메리카노라는 메뉴가 정식으로 판매된 기원은 1999년 스타벅스가 들어온 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정평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노 뿐만 아니라 에스프레소, 라떼, 카푸치노, 마끼아또 등과 같은 생소한 이탈리아어 메뉴 이름에 당황했던 걸로 안다. 주저하다가 결국 맨 위에 적혀있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쓰고 진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때 획득된 학습효과 때문일까? 카페의 자상한 바리스타들은 지금도 종종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나이 지긋한 고객에게 쓰고 진한 커피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내가 에스프레소를 처음 접한 건 원조 이탈리아에서가 아니라 90년대 초 회사 업무 출장으로 처음 밟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카페에서다. 당시 얼떨결에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고 생애 첫 한 모금을 입에 댄 순간 당황한 나머지 진땀까지 흘렸던 기억이 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후 뜨거운 물 한잔을 부탁했고 거기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마시고 나서야 안도의 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주변 풍경이 찬찬히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우연하게 즉석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 마시게 된 아메리카노(젊은 독일 바리스타 눈에는 ‘코리아노’라고 보였겠지만 ㅎㅎ)는 어찌 그리 특별한 맛이던지, 이후로 지금까지 그런 느낌의 아메리카노는 마셔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대할 때면 가끔 그날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차가운 아침 공기, 바리스타들의 절제된 움직임, 카페 문을 나섰을 때 발바닥으로 전해지던 보도블록의 거친 감각, 독일어의 딱딱한 발음만큼이나 차가웠던 그들의 표정 같은 것들이다. 이들 모두가 이방인으로 낯선 세계에 혼자 들어와 있다는 불안과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혼재된 감정이다.

커피 분야에서 이탈리아와 미국이 만나 카페 아메리카를 만들어 낸 것처럼 재즈에서도 비슷한 조합이 있다. 미국의 피아니스트 유리 케인(Uri Caine)과 이탈리아의 트럼페터 파올로 프레수(Paolo Fresu)가 함께한 앨범 ‘Things'(Paolo Fresu & Uri Caine, Blue Note)다. ‘Things’가 타이틀인 만큼 앨범 자켓의 표지 역시 잡다한 일상의 사물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사진이다.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가 없지만 특히 7번 트랙 ‘Si Dolce È Il Tormento’는 이 앨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말로는 ‘달콤한 고통’이라고나 할까?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고통 역시 달콤하다고 하니 그 사랑의 정도를 쉽게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심연의 아픔 같은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올라와 늘 먹먹함을 느끼곤 한다.

원래 초기 바로크 작곡가이자 사제였던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가 사랑을 잃은 남자를 모티브로 작곡한 연가이니 당연히 그러고도 남는다. 몬테베르디 자신 역시 일찍 상처했다고 알려져 있으니 자연스레 음악을 만든 배경이 짐작된다.

Sì dolce è’l tormento, SV 332 Christina Pluhar. Philippe Jaroussky

파올로 프레수의 뮤트 트럼펫과 유리 케인의 펜더 로즈가 들려주는 인터플레이는 그저 가만히 듣는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처연하게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의 타이틀이 일상을 의미하는 ‘Things’인데 반해 ‘특별한 감정’을 노래하는 이 트랙은 매우 역설적인 존재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큼이나 중도에서 읽기를 포기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사소함 속에서 화자가 겪은 의식 밖의 특별한 기억을 찾는 과정이라면 <율리시즈>는 일상 그 자체가 소설의 근간이다. 그렇다면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즈>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지겨우리만큼 지난하고도 사소한 일상, 사물들 속에서 찾아야 하는 삶의 진정성이 아닐까? 평범한 일상 자체에서 위대함을 발견하고 인식하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고작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벌써 11월이다. 저무는 한 해를 생각하는 시기다. 올해는 어떤 일상을 살았고 남은 시간들은 또 어떤 것들로 채워질까 궁금하다. 그러나 설령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반복된다 할지라고 그저 묵묵히 사랑하기로 했다. 평범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있는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인식하지 않고 있었던 기억을 특별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 순간 더 많은 기억이 날 수 있도록 지금 내 주변을 둘러보며 귀로, 눈으로, 가슴으로 욕심껏 담는다. 사람들의 표정, 조용히 들려오는 음악,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들, 공간을 데워주고 있는 따뜻한 공기와 수많은 대화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주는 다정함과 익숙함 같은 감정까지도…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5) – ‘Things'(Paolo Fresu & Uri Caine, Blue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