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으로 경험하는 영성 – 어슬렁 강릉 뮤지엄산 <제임스 터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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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으로 경험하는 영성

어슬렁 강릉 뮤지엄산 제임스 터렐전

 

사진출처 : 뮤지엄산 홈페이지

원주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어슬렁 강릉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한 뮤지엄산은 사실상 또다른 일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도 뮤지엄산을 방문하기 전 나는 제임스 터렐에 대해 터럭만큼도 아는 것이 없었다. 콘트리트 외벽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대한 기대만 가득했다.

공유의 맥심광고 속 뮤지엄 산

원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폭 파묻혀 있는 뮤지엄산을 감상하면서 그다지 큰 기대 없이 제임스 터렐의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아…

수많은 말들이 떠오르는 순간 가라앉았다.

모든 것은 빛과 어둠 그리고 공간이 만들어내는 마법으로 가득했다.

일생동안 거쳐왔던 수많은 사원들과 종교 건물들 그리고 명상을 위한 미로와 같은 장소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단언컨대 제임스 터렐이 만들어낸 이 공간과 같은 곳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이러한 공간을 창조한 이가 누군지 절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찾아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궁금증을 해소하려 찾아 본 제임스 터렐은 누구인가. 그는 1943년 엄격한 퀘이커 부모 아래 태어났다. 아버지는 비행기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의사였다. 터렐은 16세에 항공기 조종 라이센스를 취득했고 대학에서 지각 심리학을 전공했다. 빛으로 그리는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고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로든 크레이터 프로젝트이다. 하늘 위를 나는 조종사로서의 경험과 심리학도와 미술학도로서의 경험이 묻어 있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앵글에서 감상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가장 대표작인 로든 크레이터 프로젝트(Roden Crater Project)이다. 그가 1979년 애리조나 주 북부에 위치한 페인티드 사막 가장자리의 사화산 분화구를 직접 사들여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채 진행중이란다. 버킷 리스트에 올리고 언젠가는 방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문에서 만난 원주 뮤지엄산의 제임스 터렐전은 총 다섯 개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스페이스 디비전은 일정 시간대와 우천시에만 운영한다. 우리 일행은 시간대도 맞지 않고 비가 오지 않아 감상이 무산돼 아쉬움이 남은 프로그램이다. 비오는 날 방문하는 이에게 뜻밖의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사진출처 : 뮤지엄산 홈페이지

첫 전시공간인 ‘스카이스페이스’는 로마 판테온 신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고 설명돼 있다. 열린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과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바쁜 일상을 잠시 잊게 한다. 주위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을 마주한다는 도슨트의 설명이 절실히 와닿다.

‘웨지워크’는 빛이 거의 차단되다시피 한 어두운 통로를 지나서 만나는 공간이다. 빛이 암전된 공간과 고요한 공간을 손으로 붙잡은 가드레일에 의지해 더듬더듬 걸으며 긴장하기도 했다. 밤눈이 심하게 어두워 동행한 이의 발을 밟는 실수를 하는 등 당황과 혼란속에 어둠의 공간을 지나고 나서 만나는 약한 빛이라니! 빛의 환영을 이용한 시각 효과가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 장소 또한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겠다. 그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내가 보는 대로만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을 경험한 곳이다.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로 알려진 간츠펠트 공간은 다양한 색으로 변화하는 스크린을 감상하고 스크린 뒤에서 숨겨진 반전을 만나는 곳이다. 진실의 의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시각적 기억이 얼마나 왜곡돼 있고 부정확한지 다양한 실험 결과들이 있다. 이곳 또한 시각 자체가 주는 감각이 현실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하는 곳 이다. 마치 마술쇼를 보는 듯한 놀라움마저 주는 작품이었다.

호라이즌 룸은 가장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볼때 갖는 무대효과와 더불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각의 입구를 향해 걸어 올라갈때의 기대감과 간절함이라니. 아.. 다만 더 좋은 공간이었을 수 있었음에도 현대 자본주의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망친 아쉬움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공간이었다.

뮤지엄산은 건축 거장 안도 타다오의 작품으로만 알고 가볍게 방문해서 머리로 망치를 맞은 듯한 강렬한 경험을 선물받고 나온 곳이다. 처음에는 알지 못하는 곳을 그냥 방문한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해보니 무지한 상태로 만났기 때문에 더 큰 감동을 만난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비오는 날 꼭 이곳에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당신이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언젠가 그 믿음에 배반당할 수 있다는 진실을 만나는 이 공간을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bearlady

만화와 IT 소식 읽기를 즐기고 글쓰기와 피겨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라 라 랜드 거주자. 만화저널 세상을 봐에 제2의 둥지를 틀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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