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4) – Autumn Leaves

10 comments

이즈음 가을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 하나만 고르라면? 쉽게 Autumn Leaves를 끄집어내는 사람이 많다. 특히나 어느 영화에선가 이브 몽땅이 불렀던 고엽(Les feuilles mortes)은 누가 들어도 가을 낭만의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떠올리게 한다.

원래 Autumn Leaves는 샹송의 대표곡이다. 1946년 영화 ‘밤의 문’에서 이브 몽땅이 처음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많은 샹송 가수들이 불렀고 특히 유명한 건 에디트 피아프가 부른 버전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Autumn Leaves는 빙 크로스비에 의해 불리다가 1956년에 마침내 영화 ‘Autumn Leaves’가 만들어지면서 냇 킹 콜이 부르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재즈로 듣는 Autumn Leaves는 어떨까? 재즈로서의 Autumn Leaves 위상 역시 대단하다.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연주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디에선가 연주되고 있을 대표적인 재즈 스탠다드가 되었다.

 

소개하는 음반은 Autumn Leaves가 수록된 두 개의 음반이다. 수많은 음반 중에서 단 두개를 고르는 작업이 얼핏 생각하면 무척 고역이겠다 싶겠지만 사실은 두 개의 음반이 워낙 출중한 음반이라서 단박에 고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첫 번째로 고른 음반은 ‘빌 에반스 트리오'(Bill Evans Trio)의 ‘Portrait In Jazz'(Riverside)다. 빌 에반스 자신의 트리오로 만든 첫 작품이자 최고의 트리오 시절 멤버였던 스코트 라파로, 폴 모티안과 함께 한 네 장의 앨범 중 하나이니 사실 무슨 언급이 필요할까?

 

피아노가 문학이라면 빌 에반스의 연주는 한편의 서정시다. 앨범 Portrait In Jazz에 들어있는 11곡은 말하자면 11편의 시다. 그러니 이 앨범은 당연히 한 권의 시집이라 불러야겠다. 1958년 발매 이후 이 앨범은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전형이 되었고 특히나 베이스 주자 스코트 라파로와의 인터플레이는 피아노 트리오를 넘어 재즈의 미학 자체로 논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연주라고 하겠다.

이 앨범의 대표곡이 바로 두 번째 트랙에 수록되어 있는 Autumn Leaves이다. 빌 에반스의 피아노음이 떨어지고 있는 낙엽 그 자체라면 스코트 라파로의 베이스는 지면에 살짝 닿는 낙엽의 안착이다. 그 잎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공간적, 시간적 여백 사이사이를 폴 모티안의 드러밍이 지나간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연주의 아름다움 앞에선 차라리 눈물도 번잡스러운 감정일 뿐이다.

두 번째로 고른 음반은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의 ‘Somethin’ Else'(Blue Note)이다. 1958년 당시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에서 활동 중이던 앨토 색소포니스트 캐논볼 애덜리가 리더 마일즈 데이비스의 도움을 받아 발표한 첫 솔로 앨범이다. 앨범의 전체적인 톤이 마일즈 데이비스 앨범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캐논볼 애덜리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받아주는 편안함이다. 그의 음악에는 혁명적인 반전도, 고도의 테크닉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속주도 별로 없다. 그저 사람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긴 호흡, 따뜻함이 담겨진 음악의 순수함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아마도 애덜리의 연주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첫 번재 트랙 Autumn Leaves에서도 그렇다. 애덜리는 자칫 마일즈의 차가운 트럼펫에 빼앗길 수도 있는 곡의 흐름을 호탕하면서도 풍성한 색소폰 음색으로 온화하고 따뜻하게 이끌어내고 있다. 조금 과하게 표현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이 앨범의 운명과 존재의 이유는 바로 Autumn Leaves에 있다. 그만큼 훌륭한 연주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우연히도 두 앨범 모두가 빌 에반스와 캐논볼 애덜리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앨범들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하나의 곡을 두 개의 숨 막히듯 아름다운 연주를 듣는다. 이 순간이야말로 가을의 절정이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4) – Autumn Le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