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2) – Lady in Sa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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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방안에는 Sidney Bechet의 Si Tu Ma Mere가 흐느끼듯 흐르고 있다. 곡의 제목이 조금은 낯설어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 Midnight in Paris에서 두 남녀가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파리의 거리를 천천히 걷는 마지막 장면 뒤로 흐르던 연주곡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 속 계절이 무엇이었는지는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왠지 가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만큼 가을이 주는 감정의 너울과 영화 속 장면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다르지 않아서일 테고 더욱이 흐르는 곡이 재즈이니만큼 더더욱 그러하리라.

벌써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누군가는 공허한 가슴을 견디기 어려운 계절일 테고 또 누군가는 선명한 가을 하늘빛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질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가을이 아름다움만으로 충만한 계절이라 느끼는 사람에겐 말할 필요도 없이 오직 낭만의 계절이다. 선명한 대지의 빛깔과 맑은 대기 속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지 즐거울 수밖에 없다. 떨어지는 낙엽이 살짝 닿기만 해도 간지러운 듯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가을이란 단지 건조하고 쓸쓸한 계절일 뿐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괜히 가슴이 텅 빈 듯하다. 그래서 가을을 탄다는 말 속에는 왠지 모를 공허함만이 가득 차 있다.

어떤 경우든 이맘때의 가을이면 습관처럼 당기는 음악들이 있다. 예컨대 Billie Holiday가 온몸을 일그러뜨리듯 부르는 I’m A Fool To Want You 라든가 Autumn in New York, 또는 Chet Baker의 My Funny Valentine, 혹은 Julie London가 부르는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같은 노래들이다.

아마도 지금부터 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하루에 한두 번씩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단골 선곡 메뉴들이다. 열거한 곡들은 이른바 재즈 스탠다드라 부르는 것들이라 수많은 보컬들이 불러왔고 앞으로도 부를 노래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마치 각 곡마다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My Funny Valentine은 Chet Baker가 불러야 제 맛이고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는 금발의 미녀 싱어 Julie London이 불러야만 원곡의 정서가 살아난다.

마찬가지로 I’m A Fool To Want You는 단연코 Billie Holiday가 불러야 제 맛이다. 다른 가수 버전으로는 딱히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Billie Holiday 노래로서의 지위가 굳건하다. 그녀의 생전에 발표된 마지막 앨범 Lady in Satin에 들어있고 마약과 알코올에 찌든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부른 노래인 만큼 그녀의 삶 속에 녹아든 슬픔과 애환이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느껴진다.

이 곡은 특히 우리나라 모 구두회사의 CF 음악으로 깊게 각인되어버렸기에 들을 때마다 매번 CF 장면이 떠오른다. 가죽 구두에서 느껴지는 감촉과 Billie Holiday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콜라보 되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가을 이맘때쯤 어울리는 보컬이라면 단연 Billie Holiday가 으뜸이다.


I’m a fool to want youTo want a love that can’t be trueA love that’s there for others too

I’m a fool to hold youSuch a fool to hold youTo seek a kiss not mine aloneTo share a kiss that Devil has known…

궁금한 건 Billie Holiday 자신은 ‘당신을 원하는 나는 바보’라는 가사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노래했을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음반을 발표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했기에 허망하게 끝날 것 같은 삶에 대한 깊은 회한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가을이란 원래 그렇다. 가을이란 겨울이 미처 다가오기도 전에 미리 차가움을 알아버리는 계절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쩌겠나. 반복해서 돌아오는 계절이니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이렇게 노래 몇 곡으로라도 빈 가슴을 메울 수밖에. 그리고 다음 계절을 또 기다리는 수밖에. 어리석은 바보처럼 삶과 사랑을 원한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2) – Lady in Sat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