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1) – A passion for John Donne

No comments

니콜라스 홀트와 휴 그랜트가 주연했던 영화 <어바웃 어 보이, 2002>는 인간은 ‘섬’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는 한 남자와 인간은 결코 ‘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할 것 없고 책임질 가족도 없는 부유한 독신남 윌(휴 그랜트 분)은 도대체 왜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삶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 믿기 때문이다.

반면에 또 다른 주인공 마커스(니콜라스 홀트 분)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싱글맘과 함께 살면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왕따 소년이다. 둘은 윌이 가벼운 사랑의 상대를 만나기 위해 찾은 싱글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점차 갈등을 이겨내고 서로의 삶과 성격, 가치관에 영향을 주면서 따뜻한 결말로 막을 내리는 영화다. 특히 마지막 엔딩 장면이 인상적이다. 마커스의 나레이션으로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끝이 난다.

이 대사의 원작자는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이다. 그는 진작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로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노래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존 던)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만일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게 될지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만일에 모래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며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이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한 시는 여태 보지 못했다. 당연히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맞잡을 수밖에 없는 필연의 존재라는 뜻이리라.

라이프니츠는 인간이란 원래 창이 없는 고독한 단자(모나드)라고 하면서도 서로 부딪치지 않고 원만하게 운행할 수 있는 것은 신이 이미 그러한 힘을 단자 안에 예정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예정된 힘은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끊임없이 시도되는 대화와 의사소통에 의해 더욱 자극받으리라 믿는다.

타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고 한 레비나스의 말이나 억만 개의 구슬로 꿰어지고 이어진 화엄의 세계 ‘인드라망’을 빌려 얘기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커다란 그물로 되어있고 그물 마디마디에는 수억만 개의 구슬이 꿰어져 있어 그물 반대편의 작은 구슬로 인해 울리는 미세한 진동은 결국 나에게로까지 전달된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존 던의 시를 빌어 말하면 우리는 결코 ‘섬’이 아니다. 하나의 커다란 대륙으로 이어진 존재들이다.

존 던의 시를 읽은 김에 그의 시를 노래한 음반을 하나 찾아서 듣는다. ‘A passion for John Donne’은 존 던의 시들에 영감을 받은 노르웨이의 피아니스트 케틸 뵈른스타드(Ketil Bjørnstad)가 곡을 붙여 만든 앨범이다. 역시 케틸 뵈른스타드 음악의 본질이 재즈에 앞서 정통 클래식이라는 걸 일깨워주듯 퍼커션과 색소폰만 없다면 정통 클래식 칸타타의 작품집이라 불러도 별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케틸의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테너 색소폰, 퍼커션과 어우러지는 오슬로 챔버 콰이어의 합창은 종교적 숭고함 마저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나 같은(凡人)의 말과 글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가 없는 음악이다. 이럴 땐 그저 별 수 없이 듣는 수밖에 없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1) – A passion for John Don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