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0) – Song for my father

No comments

한여름의 열기는 식은지 이미 오래되었고, 풀벌레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 지는 걸 보면 확실히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더욱이 추석 명절이 요 며칠 앞으로 다가왔으니 살짝 기분이 들뜨기도 하는 기간이다.

이맘때가 되면 놓치지 않고 듣는 음반들이 몇 개 있다.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의’Song for my father(Horace Silver Quintet, Blue Note)‘는 그 중에서도 특히 애청하는 앨범이다. 호레이스 실버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아버지를 위해 만든 헌정 앨범이기 때문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는 역시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0살 무렵부터 색소폰을 불며 음악적 재능을 발휘했다. 전문 연주자로 성장한 이후로는 아트 블레이키, 케니 도햄, 행크 모블리 등과 ‘재즈 메신저(The Jazz Messengers)’를 결성하여 당시 재즈 씬을 주도했던 비밥과 쿨 재즈의 열기를 뚫고 하드밥(hard bop)의 전성기를 열었던 연주자다.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곡 Song for my father의 기본 리듬은 보사노바다. 그러나 대표적인 보사노바 플레이어 스탄 게츠(Stan Getz)의 그것과는 어딘가 모르게 사뭇 다르다. 스탄 게츠의 보사노바가 일관되게 낭랑하고 도시적인 세련미를 풍기고 있다면, 호레이스 실버의 보사노바는 특유의 흥겨움과 더불어 블루지한 톤의 아련함 같은 감성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다. 이질적인 두 정서가 마치 종이의 앞뒷면처럼 맞닿아 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이다. 그래서 호레이스 실버의 재즈를 일컬어 펑키 재즈이면서도 소울 재즈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젠가 그의 에세이에서 타이틀 곡 Song for my father를 일컬어 ‘불가사의한 존재감을 지닌 곡’이라고 평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내가 느끼는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고 거꾸로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이 앨범을 듣는다. 비교적 일찍 세상을 등지셨던 아버지셨기에 재킷 속 노신사의 미소가 가슴에 와 닿는다.

아버지는 평소 무척 과묵하셨고, 동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아버지들처럼 당신을 위한 즐거움은 별로 누리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즐기고 싶어 하셨던 몇 가지는 가지고 계셨다. 그중 하나가 음악이었고 특히 유행가보다는 클래식과 재즈를 좋아하셨다. 고교 1~2학년 시절 요맘때쯤의 어느 날, 마당 평상에 앉아 담배가 가득 채워진 파이프에 불을 붙이시고는 가을엔 브람스를 듣거나 아니면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으라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호레이스 실버 하면 연상되는 ‘펑키 재즈’의 뉘앙스가 워낙 강해서일까? 아버지께서는 마일즈 데이비스만큼 좋아하셨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이 앨범을 집어 들 때마다 매번 아버지의 선하신 모습을 떠올린다. 굵은 시가를 입에 물고 옅은 미소를 짓는 앨범 자켓 속 호레이스 실버의 아버지 모습처럼 나의 아버지도 종종 파이프를 무시고는 저런 표정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엊그제 일요일 아버지 산소를 다녀와 버릇처럼 이 앨범을 들었다. 플레이 되자마자 둥둥대는 Song For My Father의 펑키한 리듬. 제 흥에 겨워 흥얼거리기만 하다가 여섯 번째 트랙 Lonely Woman를 듣고 나서야 겨우 아버지를 생각한다. 호레이스 실버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 만든 곡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생전의 아버지께서 Song for my father를 들으셨다면 펑키 재즈의 유쾌함으로 들으셨을까? 아니면 소울 재즈의 블루지함으로 들으셨을까? 하는 것이다.

가끔은 “아버지. 아버지도 펑키 재즈의 유쾌함을 좋아하셨나요?”라고 여쭤보고 싶고 만약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계신 곳에서 즐겨 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0) – Song for my fa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