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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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구례에 봄이 비껴가고 있었다. 꽃은 지고 섬진강변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 잎들이 길게 그늘을 만들었다. 여름과 겨울에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한데 맞닿은 이곳은 볼 곳도, 먹을 것도 푸지다. 흐르는 강물처럼 마음도 헐렁해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곰이 있는 절’이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들은 지리산에 반달곰이 살고 있는 줄은 알지만 절에 무슨 곰이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연을 모른다면 그럴 법도 하다.

오래전에 스님과 곰이 다정하게 노는 모습이 TV에 소개된 적이 있단다.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곰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했다. 어린 곰이 먹이를 찾아 내려왔다고도 하고, 신도가 스님에게 선물을 한 것이라고도 했다. 자란 곰을 산으로 돌려보냈다는 말도 들렸다. 우리도 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지난여름 그 이야기를 따라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백제시대에 지었다는 건물은 뒷전이고 혹여 곰이 있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정말 있었다. 구석진 곳에 네 마리의 곰이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 우리는 좁고 낡아보였다. 마당을 오가며 사람과 교감을 나눈다더니, 그러기엔 수도 많고 덩치도 너무 컸다.

가까이 다가가자 난간에 올라가 있던 녀석들이 계단을 밟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철창에 붙은 ‘위험’이라는 팻말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스님은 객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염불을 외시는지 혼자 중얼거리다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해가 뉘엿해질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 약수만 마시고 그곳을 떠났었다.
이번에는 그 사연을 꼭 듣고 싶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는개가 내렸다. 뜨끈한 구들장에 몸을 착 붙이고 한나절을 보내다 저녁 무렵에야 절을 찾았다. 구불구불한 산길에 비를 따라 내려온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다. 한여름 계곡에 왁자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나란히 늘어선 평상만 물가를 지키고 있다. 비까지 내려 산을 오르는 길이 적막하다.

입구에 들어서니 목조로 지은 요사체가 사라지고 대신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스님은 안에 계시는지 보이지 않고 경내에는 우리뿐이다. 바로 옆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범종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주를 하면 세 번 까지 종을 치며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일행 중 호기심 많은 사람이 종을 울렸다.

‘대애앵’
강한 울림은 조용한 산속을 뒤흔들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사방을 살폈다. 그때 어디선가 스님과 보살님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식사 중이었던지 입안에 음식을 채 삼키지도 못하고 놀라 쫓아나온 모양이다.아직기회가 두번이나 남았는데 본전도 못찾고 이대로 쫓겨날 판이다.

“아유, 어서 오세요. 차 한 잔 대접해 드릴 테니 마저 치시고 방으로 오세요.”
작년에 뵈었던 그분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절 분위기도 달라 보였다. 스님은 어금니가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다 늦은 시간에 웬 차 대접인가 싶으면서도 촉촉한 날씨에 귀가 솔깃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종을 치고 마주하고 있는 곰 우리로 갔다. 흩어져 있던 곰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먹이를 바라고 얌전히 기다렸다. 여전히 네 마리 그대로다. 곁에 있던 보살님이 사료대신 사과를 숭덩숭덩 썰어 우리에게 내밀었다. 과한 값을 지불하고 긴 관으로 먹이를 넣어주자 놓치지 않고 덥석 받아먹었다. 그사이 차를 준비 중인 스님이 재촉하듯 한 번 더 다녀갔다.

해넘이가 빠른 산속에서 차를 마시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다. 불가에서는 참선의 일환으로 다도​茶道​를 한다는데 마시다 날이 저무는 것은 아닐까 싶으면서도 무슨 차가 나올까 기대되었다. 스님의 극진한 안내를 받으며 좁은 방에 몸을 겹쳐 앉았다. 귀한 차를 대접받는데 이런 불편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자리 정리가 끝나자 스님은 “커피도 있고, 율무차도 있어요. 뭘로 하실까요?”라며 종이컵과 인스턴트 차를 앞으로 내밀었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문한 차를 휘휘 저으며 경쾌하게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 보살님은 무슨 띠신가요?”
“소띠인데요.”
“집에 얌전히 있을 사람이 아니구먼. 그런데 내년에 삼재가 끼겠어요. 그걸 막을 방책이
있지요. 이 초에 이름을 써 봐요. 그러면 만사가 형통할 거에요.”
작년에 요사체에 불이 나서 건축기금을 마련하는 중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띠를 물었다. 우리는 각자 보시금을 내고 초에 이름을 적었다.

그사이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들떴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우리는 남은 율무차를 홀짝이며 스님의 말씀을 흘려 들었다. 건너편 철제 난간에 올라앉은 곰이 꼼짝도 않고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2018. 6. 6

kdongbek

나는 동백입니다.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지요.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것들에 보내는 고백입니다. 누구든 매일이 꽃피는 날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강 향숙곰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