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9) – In cerca di ci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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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기를…… , 그가 말하기를 제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진대요.”  

“그러고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어요.”

“그랬더니?”

“그랬더니 제 웃음에 대해 뭐라고 말했어요. 제 웃음이 한 떨기 장미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이래요. 홀연 일어나는 은빛 파도라고도 그랬고요”

칠레의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armeta)가 쓴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매력 중에 하나는 마리오가 구사하는 온갖 메타포를 한 줄 한 줄 읽는 재미다. 주인공 마리오가 연인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사용한 은유들은 그야말로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찬란하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시골 청년이 아름다운 처녀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방법이 또 있을까? 은유의 파도에 몸을 맡기듯 이야기 속에 파묻혀 읽다 보면 마리오가 소설 속에서 말한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는 걸 인식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메타포가 없는 삶이란 얼마나 삭막하고 건조한가. 마리오가 그렇게 되었듯이 메타포는 익숙한 주변의 세계와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해줌으로서 모두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물과 일상과 자연의 모습이 낯설게 보인다. 철학적 사유는 이처럼 주변의 세계를 ‘낯설게 봄’으로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포는 일종의 철학적 사색과 삶을 경험하게 만드는 매개체다. 지난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낯섦과 특별함으로 가득 찬 그것으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어 유명해진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지역적인 배경이 칠레에서 이탈리아로, 17세 소년 마리오에서 조금 나이 먹은 노총각 마리오로, 그리고 연인 베아트리스의 이름이 베아트리체로 바뀌는 몇 가지 작은 변화를 빼고는 대체적으로 소설의 이야기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무기력하게 일상을 보내던 청년 마리오는 우연한 기회에 고국 칠레에서 추방당해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은거하게 된 민중시인 네루다의 전임 우편배달부가 된다. 그리고는 시인과 교감을 나누면서 은유의 세계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된다. 은유를 익힘으로서 사랑하는 연인 베아트리체에게 자신을 새롭게 표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세계를 또 다른 인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결국 마리오는 가진 것 없고 무지한 시골 청년에서 자신을 자각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인식하는 의식 있는 인물로 거듭나 시위 현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한 가지 사족을 덧붙인다면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Massimo Troisi)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후 불과 12시간 만에 심장병으로 숨져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간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소설과 영화 못지않게 유명한 것은 바로 이 영화의 OST 음악이다. 이탈리아의 루이스 바칼로프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은 사실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에게 처음 의뢰되었다. 그러나 모리꼬네가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바람에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에게 재의뢰되어 제작되었다는 숨은 일화가 있다. 어쨌든 영화와 함께 유명해진 음악 덕분에 바칼로프는 일약 영화음악계에서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할 음반은 이 영화의 OST 앨범이 아니라 클라리넷의 지안루이지 트로베시(Gianluigi Trovesi)와 아코디언의 지아니 코스시아(Gianni Coscia)가 듀오로 연주한 In Cerca Di Cibo(1999, ECM)이다.

앨범 In Cerca Di Cibo는 클라리넷과 아코디언의 단출한 구성으로 연주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단순한 구성이야말로 소박하고 순수한 음악적 표현을 전달하는데 더 적절한 선택이 되었다. 베스트 트랙은 당연히 네 번째로 수록되어있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주제곡인 Il postino.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일곱 번째 트랙인 Django를 꼽기도 하나 개인적으로는 단연코 Il postino이다.

Il postino

Django

밤하늘의 별이 밤새 흐르듯 유유히 들려오는 트로베시의 클라리넷과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코스시아의 아코디언이 마치 영화 속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바라보는 잔잔한 파도의 움직임을 보는 듯하다. 역시 거장들의 연주답게 명불허전이다. 듀오의 넉넉한 주고받음은 연주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실제 관계도 왠지 마리오와 네루다처럼 메타포로 연결되어 시적인 교감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쓴 라이너 노트를 읽는 맛은 연주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이 앨범이 주는 색다른 감동이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9) – In cerca di ci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