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8) – Ghost in this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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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 in this house

I don’t pick up the mail

I don’t pick up the phone

I don’t answer the door

I’d just as soon be alone

I don’t keep this place up

I just keep the lights down

I don’t live in these rooms

I just rattle go around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I’m just shadow upon these walls

As quietly as a mouse I haunt these halls

I’m just whisper of smoke

I’m all that’s left of two hearts on fire

That once burned out of control

You took my body and soul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나는 편지도 안 받아요

나는 전화도 받지 받고 문도 열어주지 않고 그저 혼자 있기를 원해요.

나는 이곳을 돌보지도 않고 전등은 모두 꺼 놓고 있어요.

난 이 집에 사는 것이 아니고 그저 어슬렁거리기만 해요

나는 그저 이 집에 사는 유령이에요

나는 한 마리의 쥐처럼, 벽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조용히 살고 있어요

우린 한 때 둘 다 불처럼 타올랐지만 지금은 연기 같은 침묵만 남았어요

당신이 내 육체와 영혼을 모두 앗아가서 난 그저 이 집에서 유령처럼 살고 있어요

스웨덴 출신의 트로보니스트이자 보컬인 닐스 란드그렌(Nils Landgren)의 노래 ‘Ghost in this house’를 듣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실연(失戀)을 당하고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온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두문분출 했던 때가 생각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유령처럼 살고 있다니… 감당할 수 없는 실연의 상태를 이토록 절절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한 곡이 또 있을까?

이 노래를 부른 닐스 란드그렌은 트럼펫 대신 트롬본을 잡은 쳇 베이커(Chet Baker)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관악기를 부는 연주자이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만 같을 뿐 쳇 베이커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쳇 베이커가 그의 삶과 음악을 통해 어둡고 우울한 정서를 숨기지 못했다면 닐스 란드그렌은 정반대의 음악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이끌고 있는 밴드 ‘펑크 유닛(Funk Unit)’은 펑키한 리듬과 그루브로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그들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킨 그룹이다.

그런 그가 나긋나긋한 발라드 앨범을 내 놓다니… 1999년 첫 번째 발라드 앨범인 ‘Ballads (ACT)’를 내놓을 때만 해도 재즈계에서는 그가 펑키한 리듬에서 잠시 일탈을 시도했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첫 트랙 ‘You Stole My Heart’을 듣는 순간부터 아… 하고 탄성을 나올 만큼 좋다. 특히 로맨틱한 그의 목소리로 듣는 ‘Killing Me Softly’는 로버타 플렉(Roberta Flack)이 불렀던 원곡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그 후 한 번의 일탈로 끝날 것 같았던 발라드 앨범은 2002년 ‘Sentimental Journey – Ballads 2 (ACT)’로 이어졌고 전작 Ballads에 못지않은 히트를 기록한다. 그러나 역시 그의 음악적 본향이 펑크 재즈여서 그랬을까? 말랑말랑한 앨범은 이제 그만이라고 확인시키듯 이후로는 좀처럼 발표하지 않다가 2011년 세 번째 앨범으로 ‘The Moon The Stars And You (ACT’)를, 2014년엔 그의 네 번째 발라드 음반으로 ‘Eternal Beauty (ACT)’를 세상에 내놓았다.

통산 네 개의 발라드 앨범 중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앨범은 바로 2002년에 발매된 Sentimental Journey 이다. 그중에서도 베스트 트랙은 소개하는 노래 ‘Ghost In This House’ 이다. 가사를 음미할 때마다 ‘그래 맞아. 나도 그랬었지’ 하고 공감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단지 실연의 고통만을 생각하며 듣기엔 조금 아까운 곡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곡을 대할 때마다 거꾸로 사랑에 빠졌던 그 어떤 순간들에 대한, 설명하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으로 치환하여 듣는다. 누구한테나 그렇지 않은가. 사랑은 실연의 고통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지게 할 만큼 치명적인 패러독스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사랑을 일컬어 두 사람의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 했다. 이를테면 완전한 사랑이란 육체적 결합이 주는 만족감 같은 감정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와 상대방이 통일되었다는 의식, 즉 완벽한 ‘정신적 통일’까지를 의미한다.

그에 반해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사랑이란 둘이 온전한 존재로서의 둘이 되는 것이다. 즉 타자의 자유를 인정하고 상대방과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일시적 감정보다도 둘이 경험해 나가는 지속성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둘이 하나가 되는 헤겔의 사랑과 둘이 둘로서 존재하는 바디우의 사랑.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의 완성일까?

돌이켜 보건대 젊은 시절 실연 당시 Ghost In This House의 가사처럼 극도의 비탄, 무력감에 빠져 아무 일도 못했던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바로 헤겔이 정의하는 사랑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루어지지(일치하지) 못한 상태를 오직 파멸이라고만 생각했던 듯하다. 이후로 몇 번의 실연과 상처를 더 겪고 나서야 사랑을 대하는 방식에 여유가 생겼고 멘탈도 단단해졌다. 이제는 당연히 바디우의 사랑에 점점 더 마음이 가는 걸 느낀다.

아무리 물에 흠뻑 젖은 운동화라도 툭툭 털어 신고 다니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말라 있다. 삶을 살아내고 사랑을 경험해 내는 건 혹 그런 것이 아닐까?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비타민 한 알을 입에 툭 털어 넣고 이젠 괜찮아 지겠지 하면서 다시 힘을 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8) – Ghost in this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