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7) –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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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태풍이 물러가고 태양과 구름이 공존하던 날 고속도로의 휴게소에는 밤의 적막이 막 시작되던 참이다. 실재가 시뮬라크르에 시달리다 결국 함몰되는, 세상의 온갖 번잡과 혼란이 어둠속에 갇히는 그 순간에 늘 혼잡하던 휴게소 주유소마저 외딴 섬처럼 보인다.

문득, 애송이 젊은 시절 연애에 실패하고 돌아오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저런 풍경과 마주해야 했다. 결국 혼자만 남았다는 절망감에 울컥 쏟아지는 눈물, 오롯이 나 혼자만이 감내해야만 한다는 고독감에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가끔 그 날을 떠올리면 알 수 없는 향수를 느끼곤 하는데 대체 왜 이렇게 상반된 감정이 드는 걸까?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말을 빌어보면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자유로우며,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고독에 대항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즐기라는 말로 이해한다. 고독의 고통에 대해 단지 견뎌내야 한다는 소극적 대처가 아니라서 더욱 마음이 놓인다.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 일에 매달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잠깐의 틈이 생기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안도한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접속한다. 그러나 헛헛한 가슴을 채워줄 것 같았던 SNS의 세계에서 오히려 또 다른 고독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도무지 진정한 의미로서의 혼자만의 시간은 영영 가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은 ‘고독을 이기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 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형성된,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비자발적 고독’을 이기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원하지 않은 고독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바우만이 말하는 것은 모든 사회적, 개인적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색하는 시간, 즉 ‘자발적 고독’을 만들어 즐기라는 의미리라.

돌이켜보면 그 날 내가 고통을 느꼈던 이유는 도저히 나 혼자서는 감내하지 못할 것 같은 고독감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홀로 남겨졌다는 것, 혼자 괴로워해야 한다는 고독감이야말로 젊은 시절의 누구든 한번쯤은 경험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감정 아닌가.

그러면서도 그 때의 일이 향수로 느껴지는 건 단지 시간이 흘러서만은 아니리라.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독을 즐기는 방법이 터득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다 보니 혼자 걷고 혼자 밥을 먹고 책을 읽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말대로라면 어차피 삶이란 작은 고독의 상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오히려 고독이야말로 내가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안타깝지만 당시엔 미처 몰랐다.

고독을 즐긴다는 것은 ‘접속’하지 않고 ‘접촉’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이다. 관계의 소홀에 불안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 일이다.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을 바꾸지 않고 무관심해도 되는 일에 무관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을 숨기면서까지 과잉으로 친한 척 한다거나 관계하지 않는 것이다. 가까이 있어야 잘 보일 것 같지만 실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 들고 있는 책의 글자들이 그렇고 남산 타워가 그렇고 사람 관계가 특히 그렇다.

고독을 사랑하는 일은 혼자만의 숲을 갖고 오솔길을 갖는 일이다. 그 길을 홀로 걸으며 자신에 대한 고유함과 소중함을 찾아 사랑하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그런 것들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이제야 좀 알 것 같으니 모르고 지나친 과거의 시간들이 아깝긴 하다.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Keith Jarrett, ECM)은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수많은 앨범 중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듣는 음반이다. 키스 자렛은 언젠가 ‘만성피로증후근’이라는 질병을 얻어 연주를 잠시 중단하고 칩거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 자신의 집에서 오로지 아내만을 위한 연주를 했고 이 녹음은 휴식기 이후 세상에 나온 그의 첫 번째 앨범이 되었다. 그간의 화려하면서도 즉흥적이고 때로는 지나치리만큼 탐미적인 그의 연주 스타일에 비하면 이 앨범은 지극히 소박하다. 세간의 명성을 뒤로 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던 시기에 그는 어쩌면 고독을 즐기고 있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연주가 탄생할 수 있으랴. 오로지 사랑하는 아내만을 위해 누르는 타건(打鍵)은 담백함 속에서도 결코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커피가 밤을 길게 만들었거나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시간이 천천히 흐를 때 불면(不眠)이라도 들이닥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그럴 때마다 책 한 권을 들고 이 앨범을 꺼내 조용히 듣곤 한다. 그러면 까짓 불면의 고독쯤이야 이내 깊은 사유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내가 고독을 즐기는 방법이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7) – The Melody At Night,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