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6) – If Grief Could W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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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Grief Could Wait (Giovanna Pessi, Susanna Wallumrod, ECM)

스위스 출신의 바로크 하프 연주자 지오바나 페시(Giovanna Pessi)와 노르웨이의 보컬 수산나 월룸뢰드(Susanna Wallumrod)의 앨범이다. 여기에 현대 비올라의 전신인 ‘비올라 다 감바’의 제인 아흐트만, 스웨덴의 전통 찰현(擦弦)악기 ‘니켈하르파’의 마르코 암브로시니가 합류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의 작품과 2016년에 타계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노래, 그리고 보컬 수산나 월룸뢰드의 자작곡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클래식과 재즈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아주 특별한 앨범이다. 바로크 하프와 비올라 다 감바 그리고 니켈하르파라는 낯선 고악기 소리는 물론이고 수산나 월룸뢰드의 목소리는 신비로움 그 자체다.

첫 번째 트랙인 퍼셀의 곡 ‘The Plaint’부터 굉장하다. 나는 이 곡을 2013년 국내에 개봉된 독일의 전설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Pina Bauch)의 춤과 삶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준 영화 ‘피나’에서 무용 작품 ‘카페 뮐러’의 주제곡으로 처음 들었다. 듣고 나서 얼마나 좋았던지 이 곡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레코드 가게로 달려갔다. 물론 미처 OST 음반이 출시되기 전이었고 곡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던 탓에 허탕만 쳤던 기억이 있다. 안타까워하기만 하다가 나중에야 어렵게 곡명을 알아내 여러 앨범을 뒤진 끝에 이 앨범 If Grief Could Wait 을 만나게 되었다. 영화에 삽입되었던 연주는 후에 발매된 OST 앨범에서 들을 수 있다. 또 스페인 출신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가 감독한 영화 ‘그녀에게(Hable Con Ella)’를 눈여겨봤다면 도입부에 피나의 무용작품 ‘카페 뮐러’가 나온다는걸 알 수 있고 이 곡 역시 당연히 들을 수 있다.

영화 ‘피나’

영화 ‘그녀에게(Hable Con Ella)’

두 번째 트랙 ‘Who By Fire’는 원래 유대교에서 속죄일에 행했던 기도의 내용을 음유시인이라 일컬어지는 레너드 코헨이 노래로 만든 곡이다. 그러나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이게 정말 코헨이 만들고 불렀던 곡인지 바로크 시대 퍼셀의 곡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특히 중반 1분여 동안 연주되는 간주는 조금은 낯선 고악기들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트랙에서 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로서도 백미에 해당할 만큼 아름답다.

시인이자 싱어송 라이터인 레너드 코헨을 설명하기에 단순히 묵직한 저음이 매력적이라는 단순한 수식어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만든 노래의 가사는 사랑과 고독 같은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인종 차별과 성차별, 종교, 빈부격차, 동성애, 계급 갈등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이 처한 모든 부조리한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흘려보낼 단순한 노래들이 아니다. 그런 만큼 Who By Fire 가사 역시 의미심장하다.

Who by Fire

And who by fire, Who by water, Who in the sunshine, Who in the night time…

누가 불의 심판을 받을까? 누가 물의 심판을 받을까?햇빛 속에 누가 있게 될까? 어둠 속에 누가 있게 될까?…

Who by Fire Live

가사의 내용처럼 누가 과연 심판을 받을까? 나 역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코헨과 똑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지금 이 땅의 온갖 불의와 부조리, 불평등을 야기한 자들이 과연 심판을 받게 될까? 특히나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더욱 그렇다.

아무튼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우리 살 길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자꾸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그 누군가가 신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소개하는 두 곡 이외에 나머지 모든 트랙이 다 훌륭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If Grief Could Wait는 앨범 전체가 보물이다. 이 정도로 음악적 미학이 뛰어난 음반이라면 재즈냐 클래식이냐 하는 식의 장르 구분은 부질없는 짓이다.

바라건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생각을 멈추고 잠깐이나마 이 앨범에 빠져보기 바란다. 지금 당장. 그렇지 않으면 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죄에 대해 분명히 심판받게 될 것이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6) – If Grief Could Wa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