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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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당신은 사랑해선 안 될 존재인가요. 가정이 있는 제가 당신을 알게 된 것은 십여 년 전이었습니다. 결혼 생활이 권태로울 무렵 당신이 나타났죠. 뜨겁게 사랑하고 싶었죠. 결혼한 여자도 당당히 사랑 할 수 있다는 걸 만인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때는 짝사랑인가 싶어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향해 찡긋 웃어주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과 길을 걸을 때 등 뒤로 몰래 내 손을 가져가 꼭 쥐어 주기도 했습니다.
더 솔직해 지겠습니다. 둘 만이 어두운 골목을 걷게 되었을 때 담벼락에 저를 바짝 세워 놓고 입맞춤을 해 주기도 하였지요. 당신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다른 존재가 되길 간절히 바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뒤늦게라도 당신을 만난 게 얼마나 행운인지요. 장을 보러갔다가 오렌지와 바나나와 같은 이국의 과일을 양손에 들고 집에 올 때도 당신이 생각나고, 해질녘 먹자골목 죽은 시계탑 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 때도 생각나고, 앙상한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 걸어가는 노인과 마주칠 때도 당신이 침범해 들어옵니다.

불륜의 고통은 사람들에게 말 못하는 고통이 제일 크다고 하지요. 그래서 작년 가을, 조명이 쏟아지는 낭독모임 무대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과의 사랑을 공개했지요. 사람들은 당신과 나 사이에 있었던 추억을 부러워했습니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당신과 더 깊이 사랑해버리라고 부추겼습니다.
하지만 쉽게 곁을 내 주지 않는 당신에게선 사철 얼음냄새가 납니다. 애초에 만나지 않았던들 이런 괴로움은 없었을 것을. 오밤중에 눈을 떠도 당신이 떠오릅니다. 나는 잠을 자고 있는데 당신은 깨어나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느 때 부턴가 별다른 이유 없이 당신은 서서히 멀어져갔고, 연락마저 끊어 버렸죠. 너무 오랫동안 당신에게서 연락이 없기에 우리 사이가 다시는 회복될 기회는 영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세수를 하거나 거울을 보거나 머리를 빗으면서도 당신 생각뿐입니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지만 전화마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늘 떠도는 듯한 당신에게는 최첨단 통신기기도 무용지물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당신을 잘 안다는 선배와 찻집에서 당신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당신에 대한 평판은 좋았고, 선배의 말이 당신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니 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안달하고, 그의 품으로 뛰어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당신 때문에 울컥 복받쳐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당신대로 저한테 서운해 하고 저는 저대로 서운하고, 게으르고 무기력한 저에게 당신은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만 거죠? 내가 당신이라 해도 그랬을 거예요. 당신과의 사랑이란 미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아요. 사랑을 글로만 표현할 줄 아는 당신과 사랑하기란 속 터지는 일입니다. 나와 당신과의 싸움, 토라짐, 서운함, 다 접고 제 쪽에서 화해의 손을 내밀어도 얼른 잡아주지 않는 당신. 한 번쯤 헤프게라도 웃어줄 수는 없나요? 당신 앞에서 이 이상 더 초라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내 사랑 문 씨! 이제 당신과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란 바로 지금 이 한 때 뿐이라는 절박한 심정. 어느 영화 대사처럼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우주 속에서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을 속삭일 은밀한 곳으로 오세요. 그리고 저의 감성과 상상력을 정복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죠. ‘엉덩이를 붙이고 진득하게 집에 좀 붙어있어요, 그러면 찾아 갈게요’라고. 그렇게 말한 당신은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기도 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불쑥 오기도 하지요.
실컷 함께 있다가도 돌아서면 또다시 그리워지는 내 사랑 문 씨. 당신과의 사랑이 영원히 정답이 없다 해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쓰는 것이 모든 것의 끝이라는 릴케의 말을 믿으니까요. 열정적으로 씀으로써 그리움도 고요해져 우리의 사랑이 단 한권의 책으로 정리될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영원한 미래 진행형인 당신의 이름은 ‘문학’입니다.

전 미란내 사랑 문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