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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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여니 생선 조리는 냄새가 진동 한다. 어제는 김치찌개로 유혹을 하더니, 아래층이 확실하다.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한참을 서서 냄새를 맡았다. 아저씨가 퇴직을 하면서부터 점심때가 되면 냄새가 올라왔다. 부부가 식탁에 마주앉아 얘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하며 문자를 보냈다.

‘때마다 구수한 내가 솔솔 나요. 맛나게 드세요.’
‘아무것도 안 해 먹는데? 아! 지하에서 경비아저씨가 끓여 드시나보더라.’

그러고 보니 냄새는 동굴처럼 어두운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다.
이곳에 이사 오면서 아파트 앞에 떡 버티고 있는 경비실이 부담스러웠다. 주택에선 대문을 열어 놓고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수시로 들고 나는데 그때마다 감시를 당하는 것 같아 영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저씨가 안보이면 허전했다. 아파트 한 동이 촌락이라면, 아저씨들은 마을 수문장인 셈이다. 그들은 고향마을 이웃처럼 친근했다.
아랫녘이 고향인 아저씨는 철따라 올라오는 농산물을 문 앞에 살짝 놓고 가곤 했다.

고향에서 온거니께 잡사보라며 가지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딸아이 놀이방이 있던 옆 동에는 오래된 아저씨가 계셨다. 지날 때마다 먹을 것을 준비해 두었다 쥐어주며 손주처럼 예뻐해 주셨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지금도 그분을 기억하고 있다. 책만 읽던 아저씨는 또 어땠던가. 어찌나 점잖으신지 종일 꼼짝 않고 앉아있어도 주민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지하창고는 그들의 휴게공간이다. 불을 켜지 않으면 온통 어둠뿐이다. 물건이 쌓여있는 한쪽으로 간단한 취사도구와 쉴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다.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새벽녘에야 얕은 잠을 청했다. 나는 식은 도시락에 목을 축일 수 있는 국물 종류를 들고 지하를 오르내렸다. 한때는 도시락을 싸오는 부인과 나란히 계단을 내려가는 이도 있었다. 그때만큼은 지하 계단이 환해보였다.

때마다 진한 음식 내가 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말수가 적고 얌전한 아저씨가 오신 후 부터다. 아랫집 아저씨 퇴직과 비슷한 시기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가끔 별식이랍시고 음식을 놓고 온 것이 부끄러웠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날이면 오히려 그 냄새로 배를 채웠다.
언제부턴가 오래된 아저씨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경비 체제가 용역으로 바뀌면서 일 년 단위로 계약을 한 때문이란다. “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라는 인사를 하고는 사라지는 일이 자주 생겼다. 일자리를 보장 받을 수 없는 아저씨들은 스스로를 ‘파리 목숨’이라 했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하겠다며 주민들 의견을 물었다. 경비절감을 위해 그동안 사람이 해오던 일을 막대기 하나 걸쳐 놓은 것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반대했다. 아이들을 손주 보듯 귀애해주고, 오가며 나누는 인사며 화단을 가꾸는 일을 기계가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동에 한 사람을 두는 것으로 인원을 줄였다. 하소연할 곳이 없는 아저씨들은 말없이 받아들였다. 관리실에 찾아가 따져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경비실이 비었다. 구수한 냄새도 더는 나지 않는다. 마을이 텅 빈 것 같다. 자식들에게 부담주고 싶지 않다던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저씨가 먹이를 주던 비둘기 두 마리만 주변을 맴돌고 있다.

카툰 by 조관제 화백

kdongbek

나는 동백입니다.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지요.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것들에 보내는 고백입니다. 누구든 매일이 꽃피는 날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강 향숙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