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4) – Chico & Rita (Calle54 Record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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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문학, 그리고 커피와 재즈가 살아있는 섬 쿠바.

 

폭염이자 휴가의 계절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모두가 한번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시원한 바람과 넘실대는 파도,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로맨스가 더해지고 음악이 곁들여진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다. 그중에서도 저 멀리 카리브 해의 작은 섬, 특히 쿠바 정도의 낯선 여행지라면 어떤가. 이 정도의 여행이라면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쿠바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비교적 많다. 체 게바라, 혁명과 전쟁, 헤밍웨이, 구식 건물들 사이를 누비는 올드카들의 행렬, 시가, 럼, 커다란 방파제 말레콘을 집어 삼킬 듯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 정열적인 살사. 그리고 커피다. 물론 쿠바를 생각하며 질 좋은 커피를 생각하는 건 쉽지 않다. 쿠바는 대표적인 열대성 기후 지역이다. 사탕수수, 담배 같은 작물뿐만 아니라 최고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기에도 적합한 토질과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만 생산량이 극히 미미하다. 게다가 긴 냉전 시대를 겪어오면서 공식적으로 미국으로의 수출 자체가 금지되었던 이유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커피 시장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201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입 금지 조치가 풀렸으니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쿠바 산 커피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가장 유명한 커피는 쿠바 크리스탈 마운틴이다. 체 게바라가 시가를 피우며 마셨고,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집필하면서 마셨을 커피다. 커피 밭에 쏟아지는 햇볕이 마치 수정처럼 찬란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적당한 산미, 뛰어난 밸런스, 깊고 풍부한 아로마, 완벽한 바디감을 자랑한다. 자메이카산 블루 마운틴과도 어깨를 견줄 만큼 풍미가 뛰어나나 중부 산악지대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그나마도 생산량의 90% 이상을 일본과 유럽에서 싹쓸이 하듯 수입하고 있어 더욱 희소성이 있다. 커피와 쿠바를 연관 지어 생각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다.

체 게바라는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안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했을 만큼 사후 50년이 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가 이토록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건 무엇보다도 안락한 지위를 버리고 택한 신념의 실천에 있다. 오로지 고통 속에서 억압 받는 가난한 민중을 해방시키고자 자신의 삶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혁명과 투쟁의 삶을 살면서도 시가와 커피를 사랑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시가를 입에 물고 있는 사진뿐만 아니라 조그만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시가와 커피는 현실 세계에서 혁명의 이상을 실현코자 했던 체 게바라의 유일한 유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담배와 커피는 생산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 농민의 땀과 눈물이 투여되는 대표적인 노동 집약 생산물이다. 그가 택한 혁명의 목적이 농민과 노동자의 정치 경제 사회적 해방이었던 것만큼 시가와 커피를 사랑했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 그가 즐겨 마셨던 커피가 바로 쿠바의 커피다.

헤밍웨이 역시 체 게바라만큼 쿠바 커피를 사랑했다. 쿠바가 배경인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도 당연히 커피가 등장한다, 청새치와의 사투로 지친 주인공 산티아고를 위해 그의 조수 마눌린이 카페에서 깡통에 담아 가져온 것이 바로 커피다. 그만큼 쿠바 커피를 사랑했던 작가다.

쿠바 사람들이 가정에서 마시는 커피 추출 방법은 조금 특이하다. 모카포트에 커피와 설탕을 한꺼번에 넣고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달콤한 설탕과 쓰디 쓴 커피를 섞어 동시에 만들어 내는 뜨거운 에스프레소라니… 이 역설적인 매력을 가진 커피는 모카포트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도해 볼 만 하다.

 

Chico & Rita (Calle54 Records, 2010)

쿠바에는 커피만큼이나 그 가치에 비해 대중에게 덜 알려진 것이 있다. 바로 아프로 쿠반 재즈다. 아프로 쿠반 재즈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의 토속 음악과 재즈가 합쳐져 탄생한 독특한 리듬의 음악이다. 소개하는 음반은 쿠바 재즈가 가득한 애니메이션 ‘Chico & Rita’의 OST 앨범이다. 다소 선정적이라고 느낄만한 장면들이 들어 있다며 성인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되는 점이 실소를 일으키나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평가한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특히 재즈의 황금기인 1940년대부터 1950년대 초를 배경으로 미국과 쿠바의 재즈를 감상하고 이해하기에 이만한 OST는 없다.

영화는 1948년 쿠바 아바나의 어느 클럽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가 ‘베사메 무초'(이 앨범의 3번 트랙)를 부르고 있는 여주인공 리타를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치코와 리타는 불꽃같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둘은 야망과 욕망, 질투가 불러온 오해와 갈등으로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다가 리타가 뉴욕으로 떠나게 되면서 헤어진다. 리타를 잊지 못하는 치코 또한 뉴욕으로 건너가 다행히 둘의 사랑은 이어진다. 그러나 리타의 상업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매니저의 농간으로 치코는 마약 소지 혐의를 받고 쿠바로 추방당한다. 이후 쿠바 혁명이 일어나면서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된다.

스토리를 짧은 지면에 다 소개할 수 없어 아쉬우나 영화는 줄곧 사랑과 이별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운명과 만남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언뜻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떠오른다. 그러나 둘 다 쿠바 재즈를 담은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다분히 쿠바의 음악을 담담히 조명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라면 치코와 리타는 한편의 로맨틱한 드라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만으로도 취할 수 있다. 삼바, 보사노바, 맘보, 차차차 등 라틴 음악은 물론 비밥을 비롯한 정통 재즈 또한 풍성하다. 거기에 냇 킹 콜, 벤 웹스터,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연주는 수준 높은 현역 연주자들이 대신해 주고 있다. 냇 킹 콜의 동생 프레디 콜, 베보 발데스의 아들 추초 발데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드러머로 유명한 아마디토 발데스와 그의 딸 이다니아 발데스 등이 그들이다.

특히 치코가 연주한 곡들은 모두 ‘베보 발데스(Bebo Valdes)’가 연주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베보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을 읽을 수 있듯이 쿠바의 전설적인 베보 발데스의 삶을 영화화 한 측면도 있다. 쿠바의 재즈 연주자들은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여러 사정에 의해 수십 년의 공백기를 갖는다. 베보 발데스 역시 1994년 컴백할 때까지 무려 34년의 긴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나 이후에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의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천재 피아니스트라 평가되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그러나 이 단순함이 수준 높은 음악 영화인 치코와 리타의 가치를 결코 떨어뜨리지 않는다. 사랑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복잡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얽히고설킨 실타래 마냥 점점 더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더욱이 사랑은 뜨겁다. 그 뜨거움을 무작정 혼자 안고 있을 수는 없다. 너무 뜨거워서 자칫 데이기 십상이다. 둘 사이에서 어떻게 주고받느냐에 따라 상처를 받을 수도, 줄 수도, 혹은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도 있다. 운명에 끌리듯 두 사람의 사랑은 당겨졌다 풀어졌다가 때로는 끊어졌다가도 다시 이어진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또다시 재회.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간격들을 재즈가 완벽하게 메워주고 있다.

연일 폭염의 ​뜨겁고 습한 열기에 지치는 계절이다. 쿠바로 떠나지는 못할지언정 아바나의 해변에 몰아치는 파도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잠깐이나마 낭만과 로맨스를 꿈꾸는 건 어떤가. 아울러 여기에 체 게바라의 혁명과 헤밍웨이의 문학이 더해지고, 커피와 함께 Chico & Rita의 재즈 리듬이 함께 한다면 아마도 덥고 지치는 여름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4) – Chico & Rita (Calle54 Records,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