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 – People Time (Stan Getz & Kenny Barron, Emarcy, 1992)

No comments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가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상태에서 남긴 마지막 앨범이다. 암투병중이었던 그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인 19913월 코펜하겐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진 이 연주에는 평생 음악적 동료였던 피아니스트 케니 배런(Kenny Barron)이 같이 했다. 그래서일까? 중간 중간 스탄 게츠의 프레이징 속에는 힘겨운 호흡이 느껴지고 그 불안함을 케니 배런이 배려해 주듯 다소 길게 연주되는 피아노 솔로가 두 개의 CD를 메우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혼신을 다하는 스탄 게츠의 색소폰은 어찌나 깊은 슬픔을 자아내는지 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담은 앨범 자켓 사진에 대해 일종의 형용모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무지 저 평화로운 풍경과 색소폰의 흐느낌이야말로 절대로 어울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공연 당시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진 스탄 게츠가 회상하고 있었던 건 바로 사진 속 풍경과 같은 미처 삶의 질곡을 알아버리기 전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욱 역설적이다.

 

 

이 앨범을 집어 들면 늘 두 번째 CD부터 듣게 되는데 아마도 ‘First Song(For Ruth)’ 때문일 것이다. 찰리 헤이든이 그의 아내 Ruth를 위해 작곡한 곡으로 무수히 많은 연주자들의 버전이 존재하지만 나는 이 앨범의 트랙을 단연코 최고로 꼽는다. 마치 흐느끼는 듯 비장미 가득한 스탄 게츠의 색소폰과 절제된 배음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케니 배런의 피아노가 가슴 깊숙이 절절하게 박혀 들어오기 때문이다. 듣고 있노라면 956초의 긴 러닝 타임 내내 내가 지니고 있는 본질로서의 슬픔을 조금의 군더더기 없이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게다가 연주곡의 제목이 ‘First Song’이라니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를 공연에서 연주된 곡 치고는 무척 아이러니한 곡명이다.

 

케니 배런한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이 앨범은 온전히 스탄 게츠를 위한 앨범이다. 케니 배런 역시 스탄 게츠의 마지막 여정을 회상하며 남긴 북클릿의 글에서 밝혔듯이 처음부터 스탄 게츠를 위한 연주로 생각했을 것이다. 소쉬르식으로 말하면 여타 연주자들의 색소폰은 랑그이고 이 앨범 속 색소폰은 스탄 게츠만의 파롤이다. 그만큼 어느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스탄 게츠만의 색소폰 소리라는 뜻이다

 

2018년 여름. 단지 맹렬한 폭서로만 기억될 것 같았는데 그보다는 어떤 한 사람을 기억해야 할 여름이 되고 말았다. 늘 좋은 세상을 꿈꾸었던 그는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뚜벅뚜벅 걸어 먼 길을 떠났다. 그는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스탄 게츠가 마지막 즈음에 꿈꾸었을 ‘People Time’의 앨범 자켓 사진 속 모습은 아니었을까? 그저 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 노는 평온한 세상, 그 모습을 관조하듯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세상 말이다. 그것은 바로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가 말한 다중‘(Multitude)이 이루어 낼 세상일 수도 있겠다. 네그리는 세계화와 독점 자본, 부조리, 절대 권력, 불평등, 비민주적 제도 등에 맞설 수 있는 건 오로지 세계 곳곳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다중의 연대뿐이라고 했다. 네그리가 말하는 다중은 흔히들 말하는 민중과 대중을 뛰어넘는다. ‘제국에 반하며 스스로의 개성을 지닌, 이질적이면서도 일정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줄 아는 창조적인 주체들이다. 말하자면 촛불을 경험한 우리들 자신이다.

 

STAN GETZ : The Last Recording 1990

생전의 그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남지만 이젠 다 부질없게 되었다. 그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람이야말로 언제나 내편이었고 진정으로 우리편이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더 슬픈 여름이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 – People Time (Stan Getz & Kenny Barron, Emarcy,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