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이제 깐닥깐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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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

영화‘할머니의 먼 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손녀는 그날부터 할머니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찍은 이년 반 동안의 기록을 다큐로 만들었다.

“할머니 왜 죽을라 그랬어?”

“성가신께, 나이가 이렇게 많은 깨 죽어야재.”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들렸던 것은 순간적인 착각이었을 것이다. 보리를 베고 모내기가 한창인 때였다. 아버지는 귀가 좀 안 들리고 다리가 불편하셨을 뿐이다.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으셨다. 달려간 응급실에 산소 호흡기를 끼고 의식 없이 누워계셨다.

구십삼세 할머니에게 그날이 그날인 날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손길 줄 자식도 없고, 한번 집을 떠난 자식들은 어머니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져 가는 하루를 붙들 힘마저 없다. 불편한 걸음으로 옥상에 올라 바라보는 하늘은 멀기만 하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자식들을 도회지로 내보냈다. 그리고는 자주 서울을 오르내렸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나는 언니 오빠를 만나는 것보다 역 앞에 있는 자장면이랑 찻간에서 파는 찐 계란과 엿을 먹는 것이 더 신났다. 결국에는 넓은 세상으로 가야 한다며 막내인 나까지 냉정하게 떼어내셨다. 전학 가던 날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새 학교에 데려다 놓고 다시 따라가겠다며 우는 나를 외면하셨다. 평소에 아버지 같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살았던 손녀가 돌아왔다. 할머니가 세상의 전부였던 때처럼 이제는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말을 잃은 할머니의 입을 열게 만든다. 그 소리에 적막하던 집안의 모든 것들이 깨어난다.

“늙은 나 찍지 말고 저그 이삔 꽃이나 찍어.”

수시로 들이대는 카메라에 손사레를 치면서도 포즈를 잡으며 주름이 패이도록 웃는다.

나는 방학 때면 집으로 돌아왔다. 맘껏 어리광을 부리며 엄마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막둥아~”라며 하릴없이 나를 부르셨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내내 그랬다. 점점 집과 멀어져 갈 때도 아버지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방학을 기다렸다. 그것은 결혼을 하고도 이어졌다. 기다리다 지루해질 때면 언제 오느냐며 전화를 걸기도 하셨다. 올라올 쯤이면 “자식을 일곱이나 뒀어도 같이 살 자식하나 없다”고 한탄하듯 말씀하셨다.

생기를 찾아가던 할머니가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다시 자리에 눕고 만다.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링거로 겨우 지탱을 하면서도 정신은 총총하다. 자식들은 그런 할머니의 거취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는 할머니는 끝까지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을 준비한다.

아버지가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책 읽을 때 빼고는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던 분이다. 마을 일로, 들로 다니시느라 항상 분주했다. 집은 집대로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어찌나 구성지게 하시는지 나는 어른들 틈에 끼어 듣다 잠이 들곤 했다. 어머니는 학문이나 했으면 딱 좋을 양반이라 했다. 그런 분이 앞산을 바라보며 종일 마루에만 앉아 ‘사는 것이 참 허망하다’하셨다.

손녀의 정성 때문이었는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할머니가 기운을 차렸다. 바람이 산들 불고 햇빛 화사한 날 호숫가로 봄 소풍을 나갔다.

“징그랍게 좋다 참말로. 어디 먼디 온거맹이로 구경 잘 했다. 가자 이제 깐닥깐닥.”

할머니는 그렇게 당신의 길을 걷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셨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었다. 며칠 후 자식들 곁으로 모셔가기로 의논을 한 후였다. 조상들이 묻힌 선산을 두고 떠나는 일은 더욱 안 될 일이었다.

 “아부지, 죽으믄 나도 못본디 그래도 괜찮애?”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옅은 숨만 가쁘게 내쉬었다. 아버지 눈가에 흐른 눈물이 대답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스스로 당신의 길을 선택했다. 할머니도 그랬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힘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내일은 그렇게 떠나신 아버지의 열여섯 번째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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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ongbek

나는 동백입니다.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지요.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것들에 보내는 고백입니다. 누구든 매일이 꽃피는 날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강 향숙가자 이제 깐닥깐닥